[지역혁신리더] 김화연 “장삿속으로 벽화 그리다 문화기획자 됐어요”
  • 부산경남취재본부 허동정 기자 (sisa511@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8 16: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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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문화기획자 김화연씨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도시는 도시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그 안에서 또 분화하고 있다. 지역만의 차별화한 DNA를 갖추지 못하면 인근 지역으로 빨려들어가기 십상이다. 살아남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도시재생을 명목으로 여러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지만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경우 더욱 그렇다. 

위기에 처한 지방을 살리기 위해 청년들이 나서고 있다. 지역혁신가, 크리에이터들이다. 남다른 시각으로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지방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시사저널이 이들 젊은이들을 만났다. 

“상품을 기획하고 브랜드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일이 미쳤는지, 사람이 미쳤는지 타향살이는 늘 고단했다. 대구에서 일주일, 부산에서 일주일, 서울 본사 회의차 상경, 출장에 이어 또 출장, 자정쯤 퇴근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7년을 그렇게 뛰었다. 임금 협상이 있었고, 출장 숙식 비용을 회사 부담으로 해 달라는 말을 했다. “네가 사치를 많이 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때 들은 말이 결정적 사직 이유가 됐다.

김화연씨(35)는 고향 남해로 내려왔다. 6개월을 놀고 지난해 1월 시작한 퓨전 레스토랑 ‘절믄나메’는 외국에서 요리사 생활을 한 남동생과 동업이었다. 타깃은 관광객, 점포는 살던 집, 집 옆은 KT 건물 300m 시멘트 담장이 교도소 울타리처럼 보이는 곳, 오가는 사람 거의 없는 그곳에서 그는 인생 2막을 개업했다.

마을을 브랜딩하자. 유명하게 만드는 거다. 사람이 올 거다. 가게는 자연스럽게 흥할 것이다. 레스토랑 영업 목적이 마을 가꾸기와 연관됐고, 관련 교육을 듣고 책을 읽으면서 그는 점점 예상하지 못한 길로 방향을 전환했다.

여기엔 사연 하나가 있다. 남해극장 간판 일을 하던 할아버지가 병중에 홀로 남겨질 할머니를 위해 벽화를 그렸단다. “예쁜 것만 보고 살아라”고 말했다는 할아버지 벽화는 집 근처 거무튀튀한 담장 한쪽에 있었다. 처음엔 장삿속이었지만, 군청을 찾아 “교도소 같은 300m 시멘트 벽을 바꿨음 해요”라고 했다. 우범지역, 흉물, 애물단지 등등 주민들이 먼저 제기했던 민원을 들먹이며, 흉물인 벽부터 바꿔보자고 요구했다. 남해군이 페인트 값을 댔고, 벽화 소식을 SNS로 알리자 주민과 학교, 관광객과 미술학원 학생 등 무려 300명 정도가 몰렸다. 벽화 작업 중 간식을 주는 할머니들, 호응하는 주민, 변하는 벽, 벤치를 놓자 쉴 곳을 찾은 노인들의 “고맙다”는 말, 타향살이에서 받지 못한 공감과 감사가 따라왔다. 할아버지 사랑으로 시작된 그림 벽 300m는 일약 포토존이자, 남해 명소가 됐다. 

그는 이후 골프장 등을 운영하는 남해 아난티와 조율해 플리마켓을 계획했다. 시작하고 보니 남해에 의외로 다양한 상품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분기별 이벤트 형식으로 진행하는 플리마켓은 지금 남해를 알리는 자산이 됐다. 어린이 그림대회, 핼러윈 축제 개최, 관광객을 위한 지도 ‘남해 보물섬 핫플 어디까지 가봤니’를 제작하고 무료 배포, 나메지앵이라는 빈티지 옷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한계도 있었다. 문화기획이란 일이 성취감은 있지만 이벤트나 자치단체의 단발성 프로젝트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먹고사는 것부터 문제가 됐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는 지금 남해대학에서 학교 행정 일을 하면서 생각을 다듬고 있다.

하지만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마늘농사 짓는 할머니 장화가 멋져 보인다. 장화 사진을 일단 SNS에 올리고 반응을 본다.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 댓글이 달린다. 신선하다. 어디서 찍었니? 반응이 좋다. 이런 걸 모아 잡지를 만들면 어떨까. 300m 벽화에는 300명이 참가해 호응하지 않았던가. 남해 커피숍, 펜션, 관광지에 이 잡지를 비치하는 거다. 이게 남해 브랜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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