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혁신리더] 고은설 “官 개입 ‘비무장지대’로 만들고 싶어요”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8 16: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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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在野) 문화기획자’ 전주 별의별 고은설 대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도시는 도시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그 안에서 또 분화하고 있다. 지역만의 차별화한 DNA를 갖추지 못하면 인근 지역으로 빨려들어가기 십상이다. 살아남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도시재생을 명목으로 여러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지만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의 경우 더욱 그렇다. 

위기에 처한 지방을 살리기 위해 청년들이 나서고 있다. 지역혁신가, 크리에이터들이다. 남다른 시각으로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지방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시사저널이 이들 젊은이들을 만났다. 

전북 전주의 대표적인 지역혁신가로 평가받는 고은설 아트클러스터 별의별 대표(40)를 9월24일 오후 중노송동 인봉집에서 만났다. 격식 없는 옷차림의 고 대표는 달변을 구사하진 않았지만, 솔직하고 논리적으로 정돈된 느낌을 풍겼다.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어느 날 얼떨결에 문화기획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며 웃었다. “극히 일상적이어서 사람들이 ‘이게 별거 있어’라고 가능성을 압축해 버린 곳에서 지속적으로 가능성을 찾아내 문화를 입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시사저널 정성환
ⓒ 시사저널 정성환

고 대표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고 있다고 인정받는 몇 안 되는 문화기획자다. 그가 지역 건축문화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도시커뮤니티 공공부문에서 입지를 탄탄하게 다져놓아서다. 옛 전북도청사 기록사진전, 별의별 하우스, 팔복동공장프로젝트, 중노송동커뮤니티사업 등이 그가 전북도와 전주시 등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대표적인 작업이다. 그렇지만 관가에선 그를 재야(在野) 문화기획자로 부른다. 인하대 건축학과 졸업 후 잠시 고문화건축회사에 근무했으나 상업적 건축현장에 염증을 느낀 데다, 선배들의 꽉 막힌 삶을 지켜보며 지난 2009년 무작정 전주로 낙향했다. 귀향 후에는 연극이 하고 싶어 남편과 함께 극단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구(舊)도청사 철거 소식은 그를 문화기획자로서의 삶으로 이끌었다. 

“막상 전주에 내려와 보니 너무 조용했어요. 관청에서 뭔가 하면 의견을 개진하는 단체나 사람들이 없었어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만 보조금을 받는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관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문화공급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관에는 진취적이고 날카로운 지역의 상대가 되고 싶었던 것이죠.”

그가 활동을 시작한 곳은 한적하고 낡은 빈 공간이 즐비한 중노송동이다. 시공간에 축적된 감성과 기억을 끄집어내 ‘빈 곳’을 문화로 채우겠다는 의지에서다. 중노송동은 한때 문화촌, 기자촌, 도지사 관사 등이 자리 잡으면서 전주의 부촌 대접을 받았지만 옛날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인근 한옥마을과는 달리 어쩌다 옛집과 골목을 그리워하는 내방객의 발길이나 닿는 전주의 섬이자 오지로 쇠락했다. 대단한 물적 토대 축적 없이 세월과 확장적 도시 발전전략에 밀린 탓이다. 

 

“혁신 현장에 행정 개입은 최소화해야”

그랬던 이곳이 요즘 들썩이고 있다. 삶의 무게를 ‘견디는’ 동네에서 ‘사람 사는’ 마을로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싹수’를 간파한 자본의 투자 제안도 몰리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입소문이 나면서 청년층의 유입이 대폭 늘어난 것이 성과라고 고 대표는 자평했다. ‘재생의 물레’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선순환구조를 더욱 굳건히 형성하는 것을 남은 과제로 꼽았다. 이를 위해 현재의 커뮤니티 조성에서 도시재생 비즈니스로의 이행을 꾀하고 있다. 고 대표는 “올해까지는 학습기이자 과도기로, 비영리에서 영리로 넘어가는 시간”이라며 “내년부터는 코어공간 운영에 집중하면서 동네 다른 공간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노력을 본격화하겠다”며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고 대표는 이 동네 도시재생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이곳 중노송동만큼은 관 개입의 ‘비무장지대(DMZ)’ 내지 ‘무풍지대’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보조금 등 관 지원이 사업 초기에는 마중물로서 필요하나 궁극적으로는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장에서 체득한 그의 생각이다. “경험이 있어야 상상도 하고, 그만큼 추진할 힘도 자랄 텐데 관에서 내려보낸 사업만 하다 보니 경험이 적어서 혁신적 사례를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혁신 현장에 행정 개입은 최소화해야 하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 길이 원칙’ 적용이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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