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보수정치, 빅텐트 아닌 제2 천막 정신 필요”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8 10: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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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바른미래당 ‘변혁’ 주도하는 정병국 의원
“문 대통령, ‘친문·조국 대통령’ 되고 있다”

2003년 겨울,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미래연대 소속 소장파 10여 명은 한강 둔치에 천막을 쳤다. 지금도 곧잘 회자되는 ‘천막당사 신화’의 시작이다. 17대 총선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던 이듬해 3월,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는다.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은 여전했다. 천막 분위기는 초반만 해도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이 떠나갔다.

마지막까지 천막을 지킨 3명이 바로 ‘남·원·정’으로 불리는 남경필 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이다. 셋이 주축이 된 소장파는 박근혜 대표와 손잡으면서 뜻밖의 케미(Chemistry·조화)를 만들었다. 박근혜 대표는 3월24일 당사를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 부지(현 IFC 입주)로 옮기면서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섰고,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50석도 못 건질 것이란 당초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얻었다.

 

2004년 천막당사 신화 주역

수레바퀴처럼 역사는 돈다. 15년이 흐른 지금, 보수정치는 또다시 위기에 처해 있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진영은 사분오열돼 있다. 공멸의 위기감이 커진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다. 그렇기에 2004년 천막당사 정신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그런 면에서 당시의 주인공 정병국 의원을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남·원·정 3인방 중 유일하게 원내에 있는 정 의원(5선)은 추석 이후부터 ‘손학규(바른미래당 대표) 퇴진’의 선두에 섰다. 손 대표의 패권 정치가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에서다. 공언한 대로 9월 중 구체적인 실행도 감행했다.

당내 안철수계·유승민계로 분류되는 비당권파 의원들은 9월30일 당 지도부에 맞서 비상기구 격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이하 변혁)을 발족시켰다. 오전 9시에 있었던 변혁 출범 회의를 끝마치고 의원실로 돌아온 정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대표가 주재하는 어떤 자리에도 참석하지 않겠다”면서 “(변혁 출범은) 사실상 손 대표 체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변혁’ 발족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

“원내대표 주도의 의총에는 참석하겠지만, 최고위회의처럼 지도부가 주관하는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다. ‘손학규’라는 이름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다. 바른미래당의 정통성은 우리에게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독자 세력화를 위한 준비단계라고 봐야 하나.

“바른미래당을 바로 세우는 게 우선이다. 정치세력화를 생각했다면 바로 뛰쳐나갔지 이렇게 구차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바른미래당을 바로 세우는 게 가능한가.

“손 대표가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기다려줬는데 결과적으로 본인 스스로가 약속을 저버렸다.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그동안 언론에서 당권파·비당권파로 구분했는데 이제는 당권파 내에서조차 ‘손학규 체제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

당내 갈등이 이렇게까지 온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정치인이라면 모름지기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건 국민과의 약속이다. 약속을 저버리면서 누구를 비판하나. 그런 면에서 손 대표는 신뢰를 상실했다. 모두들 보지 않았나. 손 대표가 지난 1년간 당을 끌고 오면서 어떻게 했는지. 심지어 본인이 제안했던 혁신위원장조차 물리쳤다. 더 이상 뭘 기대하겠는가.”

일각에서는 손 대표가 ‘대안정치’ 쪽과 손잡을 거라고 본다.

“대안정치 쪽 입장과도 생각이 다르다고 들었다. 그걸 하겠다고 주도하던 호남계 의원들도 생각이 다르더라.”

손 대표가 물러나면 당의 생존이 가능할까.

“패권·패거리 싸움 정치에 신물이 났던 국민에게 희망의 가치중심 정당을 보여주고자 한 게 바로 바른미래당이다. 지금 집권여당이 죽을 쑤고 있는데도 자유한국당이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 패거리·패권 정치의 양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해서다. 바른미래당도 손 대표를 중심으로 패권이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 전반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것이다. 창당 정신을 기반으로 바른미래당이 재정립되면 떠나갔던 국민의 뜻을 받을 수 있다.”

유승민계와 안철수계는 애초부터 화학적 결합이 힘들었던 거 아닌가.

“결과적으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이) 실패한 건 맞다. 패거리·패권 정치를 놓지 못했기에 실패한 거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해서 변혁을 만든 거 아닌가.”

보수정치가 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이유는 국민은 안중에 없고 진영논리만 생각해서다. 단적으로 사법 개혁을 왜 조국 장관만이 할 수 있나. 오히려 ‘조국’이라는 반칙과 편법의 위선자에게 칼을 쥐여주는 건 사법 개혁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꼴이 될 수 있다.”

박근혜 정권 때와 비교하면 집권여당의 패권 정치 수준이 어떤가.

“문재인 정권의 패거리 정치는 굉장히 세련됐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지지층이 분열되지 않고 있다. 세련되지 못했던 박근혜 정권의 패거리 정치는 그래서 사분오열된 거다. 노골적인 것은 지금 정권이 더 심하다. 박 정권 때 패거리 정치는 투박했다.”

문재인 정권의 패거리 정치에도 분열 조짐이 보이나.

“전임 정권과 가는 길이 똑같다. 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대권주자들이 구속되거나 (검찰) 조사를 받는 건 패권 싸움의 전조였다. 민주당 내 비문(非文)들의 불만이 크다고 하지 않나. 박근혜 정부 때 최순실의 역할을 지금 조국 장관이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국민은 문재인 대통령을 뽑으면서 ‘우리 대통령’ ‘대한민국 대통령’이 돼 달라고 했는데, 정작 본인은 ‘민주당 대통령’도 부족해 ‘친문 대통령’ ‘조국 대통령’이 되고 있지 않나.”

한국당이 반문연대·보수 대통합을 원한다.

“한국당 중심의 보수 대통합을 누가 원할까. 아직도 그쪽(한국당)은 우리 쪽 8명(유승민계)의 성향을 잘 모르는 거 같다. 우린 패권 정치를 바꾸려고 기득권을 버리고 나왔다. 선거 앞두고 표만 생각하고 합치는 걸 국민이 바랄까.”

기득권을 버리고 제3지대에서 만나는 건 어떤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황교안 대표가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첫 번째다. 그래야 황 대표가 산다. 지금 보수정치에는 빅텐트가 아니라 제2의 천막당사 정신이 필요하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 안철수 전 대표가 할 말이 있을까. 이제 우리 정치는 어느 특정인 한 사람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아니다.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일단 힘부터 모은 뒤, 내부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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