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충수’ 한국 경제 재도약 기회 삼아야
  • 이장수 전 산업은행 여신팀장·경제학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0 10: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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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우위 불구 전략적 ‘역선택’…위기 극복 시 세계 10위권 이내 경제대국 도약

국내 경제는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고도성장을 해 왔다. 그럼에도 경제성장에 대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핵심 소재·부품의 수입과 주요 생산설비의 해외 의존 등 한국 경제의 취약점이 매년 문제로 지적됐다.

1980~90년대까지는 정부 및 금융기관의 지원으로 국산화가 진행됐다. 필자가 은행에 근무했을 당시 기술개발자금, 기계국산화자금, 에너지이용합리화자금 등 각종 정책금융을 취급했는데, 소재 및 부품의 국산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도입된 기술의 최초 기업화, 국내 신기술의 국산화, 도입 기술용역비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금융을 지원해 왔다. 그 외에 국산화 추진 업체에 대한 세제지원도 있었다. 자체적으로 국산화가 어려울 경우 해외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로열티를 지급하는 형태로 국산화를 추진했다.

8월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8·15 아베 규탄 촛불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8월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8·15 아베 규탄 촛불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日 핵심 부품 수입 습관화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국산화가 추진됐고, 일부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고도 기술이 필요한 제품이나 핵심 소재·부품의 경우 선진국의 기술이전 회피 등의 이유로 국산화가 진척되지 못했다. 일부 국산화가 됐다 해도 외국 업체의 가격 덤핑, 대기업의 외면,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기술 탈취 등으로 사장되기 마련이었다.

그나마 IMF 이후에는 정부 및 금융기관의 지원마저 끊겼다. 한국의 소재·부품 경쟁력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수입의 편리성, 국산화 외면 등으로 전략물자인 핵심 소재·부품을 일본 등에 의존하면서 한국의 기초산업이 크게 약해졌다.

만약 1990년대나 2000년대 초에 일본이 수출규제를 시행했다면 주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공장 가동을 중지하고, 한국은 막대한 경제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필자가 1980~90년대 공장 건설에 필요한 시설자금을 지원하면서 검토해 본 결과 대기업 및 중소기업 생산설비의 60~70%는 일본산이었고, 10~20%는 고가의 독일산이었다. 나머지 범용설비가 국산이었다. 소재·부품은 물론이고 관련 기술과 핵심 생산설비의 대부분이 일본산이었다. 한국은 이 기반하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기술을 축적했다.

우리나라의 기초산업인 소재·부품 산업이 현재 일본에 과도하게 편중되고 종속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대일본 무역 규모는 2018년 기준 수출 305억 달러, 수입 546억 달러로 약 241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 중 소재·부품 수입은 150억 달러로 전체 무역적자의 62.2%를 차지했다.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부품 조달도 일본에 의존하는 것이 습관화됐다. 최근 10년간 대일본 무역적자는 2605억 달러를 기록했다.

일본이 유독 소재 부문에서 강한 이유는 물리 및 화학 분야에서 무려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탄생시킨 영향이 크다. 1973년 도쿄대 에사카 레오나 교수는 반도체 터널효과의 실험적 발견으로 노벨상을 탔다. 이미 일본은 1973년부터 반도체 소재에 대한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일본 제품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워크맨과 소니 TV, VCR 등 독보적인 기술과 디자인으로 세계시장에서 독점적 우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혁신(Inovation)적인 무선기기를 취급하는 모토로라나 노키아 등의 출현으로 세계시장에서 일본 전자업체는 급속하게 도태되기 시작했다. 일본 업체를 무너트렸던 모토로라나 노키아는 다시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경쟁력을 잃었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면 경쟁력은 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준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규제 초기에는 많은 혼란과 피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간의 노력과 투자로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한다면 일본의 독점은 사라질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본 기업에 전가된다. 한국은 일본 소재산업의 가장 큰 고객이기 때문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이 국산화를 추진하지 못하게 유도해야 했다. 하지만 수출규제는 전략적인 역선택이 됐다. 장기적으로 첨단 소재·부품의 탈일본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의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가 가시화되면 일본의 영향력과 경제적 지위는 점차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경제력 3위의 근간을 받치고 있던 기술력과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것이다.

과거 미국도 일본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엔화 가치를 높이는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를 성사시켰다. 결과적으로 이 조치는 일본의 장기 불황을 유도하는 촉매제가 됐다. 최근 일본의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2018년 기준 약 12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1~5월까지 무역수지 적자는 약 148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에 대한 해법과 내부 단속 차원에서 경쟁국인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과거 플라자 합의 때와 반대가 됐다. 우량 거래처인 한국의 이탈로 일본 기업이 자랑하던 신뢰성이 크게 훼손됐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 기회를 잘 살릴 필요가 있다. 규제 위기를 극복하게 되면 한국의 취약점으로 지목됐던 소재·부품 산업의 경쟁력은 크게 강화될 것이다. 한국의 GDP 규모 역시 2018년 기준 세계 12위에서 10위 이내의 진정한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일본으로부터의 기술 자립은 물론이고,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높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국산화 추진, 장시간 노력과 자금 필요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간의 유기적인 소통과 노력이 절실하다. 단기, 중기, 장기 등으로 구분해 치밀한 계획과 지원이 필요하다. 국책은행을 통해서도 장기적이고 저리의 대규모 자금을 지원, 소재·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 국산화는 기술과 자본이 있다고 해서 바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이 필요하다. 국산화 추진이 어려우면 해외 기술 도입, 수입선 다변화 등을 통해 수출규제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캔맥주 뚜껑(오픈하는 부분)조차 국산화하지 못했다. 관련 기술이 없다 보니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당시 정부와 기업이 함께 머리를 맞댔고, 해외 기술을 들여와 국산화에 성공했다. 전체적인 사업은 민간에서 진행하고, 설비 도입이나 기술 도입에 필요한 자금을 국책은행에서 지원하면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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