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강한 피지컬‧수비능력 요구되는 ‘슛돌이’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0 15: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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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 신임 감독과 궁합 맞는 이강인, 다음 목표는 주전 올라서기

2019년 6월은 이강인이 자신의 축구 인생 궤도를 바꾼 중요한 시간이었다. 소속팀 발렌시아를 설득해 참가한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골든볼(MVP)을 수상했다. 2005년 리오넬 메시 이후 만 18세에 골든볼을 차지한 선수가 된 이강인은 유럽이 주목하는 특급 유망주임을 스스로 증명하며 가치를 크게 상승시켰다.

2019~20 새 시즌을 앞두고는 꾸준한 출전 기회를 얻으며 성장하기 위해 발렌시아를 떠나 임대 이적하는 것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20세 이하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본 빅리그 중하위권 팀과 네덜란드의 아약스, PSV에인트호번 등 경쟁력 있는 팀들이 임대를 넘어 완전 이적까지 원한다는 뜻을 보였다. 하지만 무수히 쏟아진 러브콜을 뒤로하고 이강인은 발렌시아에 잔류했다.

시즌 개막 후 두 달 가까이 흐른 현재 이강인의 팀 내 입지는 지난 시즌보단 나아졌다. 가장 큰 변화의 계기는 감독 교체다. 발렌시아를 지난 시즌 스페인 국왕컵 우승으로 이끈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감독이 9월11일 전격 경질됐다. 리빌딩을 책임지며 팀을 다시 상위권으로 끌어올렸지만, 구단주인 피터 림 회장을 비롯한 클럽 수뇌부와 의견 충돌이 잦았다. 특히 이강인, 페란 토레스 같은 발렌시아가 키운 특급 유망주의 기용에 소극적인 게 현지에서 본 경질의 결정적 원인이었다.

2014년 발렌시아를 인수한 싱가포르 출신의 피터 림 회장은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넓히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인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손흥민의 뒤를 이을 아시아의 차세대 스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마르셀리노 감독은 1군 계약을 한 이강인의 기용에 소극적이었고, 리그에 더 집중하라는 구단의 요청과는 다른 방향으로 선수단을 운영하자 구단주는 감독 경질 카드를 꺼냈다.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이는 스페인 국가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석코치를 맡았던 알베르트 셀라데스 감독이다. 셀라데스 감독은 지도자 경력의 절반가량을 스페인 각급 대표팀 감독으로 지냈다. 그의 선임은 구단주의 의지대로 젊은 선수들을 적극 기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것임을 의미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의 이강인 ⓒ Penta Press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의 이강인 ⓒ Penta Press

구단주·새 감독 신뢰 속 늘어난 출전시간

실제로 셀라데스 감독은 부임 후 이강인을 꾸준히 투입했다. 자신의 데뷔전이었던 바르셀로나전에 교체 투입한 것을 시작으로 4경기 연속 출전시켰다. 특히 지난 9월25일 헤타페와의 리그 6라운드에는 이강인에게 프로 첫 선발출전 기회를 안겼다.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출전한 이강인은 전반 39분 팀의 세 번째 골을 터트렸다. 공격수인 로드리고 모레노의 패스를 침투하며 잡아 주로 쓰는 왼발이 아닌 오른발로 깔끔하게 마감했다. 앞선 발렌시아의 두 골에도 각각 크로스와 침투 패스로 모두 관여한 이강인은 팀에서 두 번째로 높은 평점을 받기도 했다.

1919년 창단한 100년 역사의 발렌시아에서 아시아인 선수가 득점한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만 18세 219일에 득점을 올리며 발렌시아 역사상 최연소 외국인 득점자 기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2010년 10월30일 만 18세 114일의 나이로 분데스리가에서 데뷔골을 기록한 손흥민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유럽 5대 리그에서 득점한 한국 선수가 됐다.

셀라데스 감독은 바르셀로나전에서 2대5 대패를 당하며 출발했지만, 이후 4경기에서 2승2무를 기록 중이다. 특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첼시에 1대0 승리, 그리고 프리메라리가에서 가장 힘들다는 빌바오 원정에서도 1대0으로 이기며 팀 안팎에서 신뢰를 얻고 있다. 무엇보다 발렌시아의 미래인 2001년생 이강인과 2000년생 페란 토레스 등 젊은 선수 중심으로 기용 폭을 늘리며 호평받는 중이다. 마르셀리노 감독 시절과는 180도 바뀐 양상이 이강인에게 펼쳐지는 중이다.

하지만 이강인은 데뷔골을 기록하고 사흘 뒤 열린 빌바오 원정에서는 명단에만 이름을 올리고 투입되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발렌시아는 데니스 체리셰프의 결승골로 1대0 승리를 거뒀다. 국내에서는 이강인의 데뷔골로 화제를 모은 헤타페전이었지만, 이 경기에서 발렌시아는 3대1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며 2골을 더 내주고 비겨 수비 문제를 집중적으로 비판받았다. 지난 시즌의 발렌시아가 리그에서 두 번째로 적은 팀 실점을 기록할 정도로 단단한 수비로 성과를 냈던 만큼 신임 셀라데스 감독은 전임 마르셀리노 감독과 수비능력 면에서 계속 비교당했다.

9월26일 스페인 프로축구 발렌시아의 이강인이 메스타야 스타디움에서 열린 헤타페와의 2019~20 프리메라리가 6라운드 홈경기에 선발 출전해 2대1로 앞서가던 전반 39분 득점을 터트리고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9월26일 스페인 프로축구 발렌시아의 이강인이 메스타야 스타디움에서 열린 헤타페와의 2019~20 프리메라리가 6라운드 홈경기에 선발 출전해 2대1로 앞서가던 전반 39분 득점을 터트리고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벤투 “수비력 보완”…정정용 “피지컬 밸런스”

셀라데스 감독은 작심한 듯 원정팀의 무덤이라 불리는 빌바오 원정에서 빠른 공격수들을 중심으로 실리 축구를 펼쳤고, 그 결과 1대0 승리를 거뒀다. 좌우 측면에는 이강인보다 더 좋은 체격 조건과 수비적으로 강점이 있는 체리셰프와 페란 토레스가 섰다. 이전에도 비슷한 양상의 경기가 있었다. 첼시 원정에서도 셀라데스 감독은 기동력이 좋은 미드필더로 허리를 구성했고, 1대0 승리를 가져갔다. 이강인은 그날 경기에서 후반 44분에 투입됐다.

원정에서 팀이 결과물을 가져와야 하는 냉정한 축구를 펼칠 때 이강인이 잇달아 배제된 부분은 냉정히 받아들여야 할 요소가 있다. 팀이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경기운영을 하는 홈에서는 이강인이 100분 이상 투입됐지만, 그 반대인 원정에서는 30분도 뛰지 못했다. 유망주를 중용한다는 원칙 속에서도 셀라데스 감독이 이강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유추할 수 있다.

파울루 벤투 A대표팀 감독과 정정용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도 비슷한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최근 스리랑카, 북한과 월드컵 2차 예선을 치르는 10월 소집 명단에 이강인을 다시 부른 벤투 감독은 “이강인은 기술력이 좋고 앞으로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개선할 점도 있다. 수비력은 보완해야 한다.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20세 이하 월드컵 당시 조별리그 초반에 이강인을 윙으로 활용했던 정정용 감독도 수비력과 스피드의 문제를 인식했다. 조별리그 3차전부터 오세훈을 원톱으로 세우고 수비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섀도 스트라이커에 이강인을 기용하며 가진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정정용 감독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강인이에게 더 요구할 부분이 없다. 피지컬적으로 더 밸런스만 맞추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이강인의 능력이 극대화되는 위치는 섀도 스트라이커나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발렌시아와 A대표팀에서는 팀 전술상 측면을 볼 가능성이 높다. 셀라데스 감독은 4-4-2 전형을 쓰며 중앙에 기동력이 좋은 두 미드필더 다니 파레호와 프란시스 코클랭을 세운다. 전방에도 힘과 기술을 두루 갖춘 투톱을 세우길 원한다. A대표팀은 황의조와 손흥민이라는 붙박이 선수가 중심이 돼 공격을 구성한다.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개인 속도는 최근 스스로 극복하고 있다. 측면에서 중앙으로의 영리한 침투 플레이와 공을 가진 상황에서 빠른 판단이 올 시즌 돋보인다. 그로 인해 만들어낸 데뷔골을 통해 한층 자신감을 얻었지만 이강인이 확고한 주전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감독이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해야 한다. 공격적인 경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나, 팀의 전술적인 배려 없이도 선택받을 때 본격적인 이강인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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