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탄핵 드라이브’ 거는 펠로시의 믿는 구석은?
  • 김원식 국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8 14: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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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공세’ 속도 내는 미국 민주당
상원에서 부결되더라도 내년 대선 정국에 유리할 것이란 계산 선 듯

“역풍(backlash)을 우려하던 그가 ‘우크라이나 의혹’에 관해서는 직관적으로 정치 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미국 민주당의 1인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9월2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 조사 개시를 전격적으로 발표하자 워싱턴의 한 정치 분석가가 내놓은 말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래 민주당에서는 끝없이 탄핵 논란이 있었다. 다만 실세로 통하는 펠로시 의장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의 다수를 차지해 그가 하원의장에 당선되고 뮬러 특검의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사법 방해 정황이 나왔을 때도 그는 미온적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의 의혹과 관련해 수사를 압박했다는 이른바 ‘우크라이나 의혹’이 터져나오자 펠로시 의장은 돌변했다. 러시아 정부와의 유착 의혹에도 결정적인 증거 없이 모호한 분노만으로 탄핵을 추진할 경우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서 저지되고 오히려 트럼프 지지층 결속만 도와줄 것이라던 그가 이번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최고의 외교 무대라는 유엔에서 연설하던 날에 자신은 워싱턴의 의사당에서 대국민 연설 형식의 기자회견을 통해 탄핵 조사 개시를 발표해 트럼프에게 물을 먹인 셈이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소속 하원의장이 9월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식적인 탄핵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낸시 펠로시 민주당 소속 하원의장이 9월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식적인 탄핵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선 앞두고 ‘도덕성 흠집 내기’ 분석도

펠로시 의장이 이렇게 돌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번에는 이른바 결정적 증거의 ‘스모킹 건’이 될 수 있는 내부 고발자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라는 설도 있지만,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 내부 고발자의 폭로로 ‘우크라이나 의혹’이 전면으로 부상했다. 이후 언론들의 잇따른 보도에 백악관이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이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지만, 갈수록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대하고 있다. 일단 펠로시 의장은 겉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금기인 타국 정상과의 야합을 통해 국내 정치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는 헌법 위반을 내세운다. 하지만 노림수는 따로 있어 보인다. 공방 과정에서 다혈질인 트럼프 대통령이 사태 확산을 막고자 더욱 자충수를 둘 것으로 확신하는 듯하다. 현재 민주당과 백악관은 이 내부 고발자의 의회 증언을 둘러싸고도 난타전을 진행 중이다. 펠로시 의장이 기자들의 ‘탄핵으로 트럼프 지지자들이 결집하면 어쩔 거냐’는 질문에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임무는 헌법 수호이며 정치가 아니라 팩트와 헌법만 보고 간다”고 큰소리를 치는 이유다.

펠로시 의장의 이러한 과감한 도박은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탄핵 조사 개시에 대한 역풍으로 트럼프 지지층이 결집하고 후원금이 모여들고 있지만, 그보다도 전 언론이 탄핵 조사에 초점을 맞추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방어에 급급한 모습이다. 또 시간이 갈수록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이 탄핵 반대를 뒤집은 채 앞서 가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향후 누가 대선후보가 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과 싸워야 한다. 따라서 비록 상원에서 부결되더라도 이번 탄핵 조사 시작을 계기로 얼마든지 트럼프 대통령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 내부 고발자뿐만 아니라 행정부 관계자들을 줄줄이 청문회에 소환 통보하고 있는 이유다. 내친김에 펠로시 의장이 하원에서 핵심 증인 청문회에 들어간 뒤 곧바로 탄핵소추안 표결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신속하게 탄핵에 대한 공을 상원으로 넘겨 내년에 본격적인 대선판이 짜이기 전에 국정 수행 동력에 브레이크를 걸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치명상을 입히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또 이 과정에서 올해 79세인 펠로시 의장은 자신의 마지막 정치적 입지를 과시한다는 속내도 깔려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확정되기 전까지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과 일대일 대결을 펼쳐 정치 무대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계산인 셈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악수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악수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관련 증인들 불려나올 10월이 분수령

이제 초점은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출발을 알린 이 ‘탄핵 열차’를 언제, 어디서 멈춰 세울 수 있을까로 모아진다. 물론 이 열차를 막지 못하고 상원의원 3분의 2 이상까지 동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 즉시 대통령직을 상실한다. 하지만 탄핵 조사 과정에서 오히려 중대한 역풍이 발생해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에서조차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이는 두말할 나위 없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전이 된다.

과감한 승부수를 던진 펠로시 의장은 물론 민주당이 치명상을 입고 향후 민주당의 대선후보에게도 불리한 선거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민주당이 수적인 우세를 내세워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더라도 확고한 치명상 없이 상원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전원 부결에 동참한다면, 이 또한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 된다. 어차피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골수 지지층을 더욱 묶을 수 있고, 내년 11월 대선에서 최종 승부를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핵 조사 과정에서 결정적인 증거들이 튀어나오고 상원의 최종 표결에서도 공화당 의원 일부가 동참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비록 탄핵까진 당하지 않더라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워싱턴의 정치 분석가들은 일단 하원이 탄핵 조사를 개시하고 청문회에 관련 증인들이 불려나오기 시작하는 10월이 트럼프 탄핵 열차에 얼마만큼의 가속도가 붙을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고비가 되리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마녀사냥(witch hunt)’이라며 트위터 등을 통해 지지층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으로 이를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백악관 안에서 나온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향후 행정부 관계자들의 청문회 줄소환이 이어지고 공화당 내에서도 분열이 발생한다면, 이번 탄핵 열차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분석도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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