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늘려라!”…끝나지 않은 日 ‘증세 후폭풍’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9 11: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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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향후 10년간 더 이상 증세는 없다” 발언에 전문가들 “무책임” 비판

10월1일 0시30분쯤, 일본 JR센다이역에서는 요금표를 바꾸는 작업이 시작됐다. 일본 소비세율이 8%에서 10%로 인상되면서 철도 요금도 올랐기 때문이다. 전철역뿐만이 아니다. 바뀐 가격표를 교체하는 작업은 이른 아침까지도 일본 시내 곳곳의 상점에서 이뤄졌다.

2014년 4월 5%에서 8%로 올랐던 일본의 소비세가 5년 반 만에 10%로 다시 올랐다. 증세 계획은 2012년 당시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내각에서 결정됐다. 민주·자민·공명 3당이 당시 5%였던 소비세율을 2014년에는 8%로, 2015년에는 10%로 각각 올리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대로 2014년 4월 아베 신조 정권에서 소비세를 8%로 올렸다. 그러나 10%로 올리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쇼핑객들이 일본 도쿄에 있는 한 매장에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 로히터 연합
쇼핑객들이 일본 도쿄에 있는 한 매장에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 로히터 연합

‘불황’ 탓에 고개 든 증세 반대여론

2014년 11월, 10%로의 인상을 2017년 4월1일까지 연기하기로 했다. 이때 아베 총리는 “리먼 쇼크나 대지진에 상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2017년에는 반드시 증세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또다시 소비세율 인상은 미뤄졌다. 아베 총리는 2016년 6월1일 기자회견을 열고 소비세 증세를 2년 반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를 ‘차이나 리스크’에 직면한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 경제의 어두운 전망 탓으로 설명했다. 기자회견 후인 6월5일 당시 자민당 간사장이었던 다니가키 사다카즈는 가두연설에서 개인 소비 침체를 연기 이유로 들기도 했다. 그리고 3년 전 선언한 대로 이번에 소비세 인상이 단행됐다.

증세를 앞두고 일본 정부는 국민의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먼저 경감세율이다. 경감세율은 특정 상품의 소비세율을 일반적인 소비세율보다 낮게 설정하는 것으로 저소득자에 대한 경제적 배려가 그 목적이다. 따라서 생활에 필수적인 식료품 등의 세율은 10월1일에도 여전히 8%가 적용되지만, 적용 기준이 복잡해 소비자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슈퍼나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식료품 대부분은 현재와 같은 8%의 소비세율이 적용된다. 또 테이크아웃 음식, 급식 등은 8%로 유지되지만 일반식당이나 사원식당, 학생식당에서 식사할 경우엔 10%로 인상된다. 식품의 종류나 먹는 장소에 따라 세율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당분간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캐시리스(cashless) 결제를 이용하면 포인트를 환급해 주는 정책도 도입한다. 소비세율 인상 후, 일본 정부는 전자화폐나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사용처에 따라 포인트 환급 혜택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는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소비 둔화 대비책인 동시에 비현금 결제 비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다. 2025년까지 캐시리스 결제율을 현재의 24%에서 40%로 높이는 것이 일본 정부의 목표다. 그러나 캐시리스 결제를 해야만 포인트를 환원받을 수 있어 소외되는 계층도 발생한다. 신용카드나 스마트폰이 없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는데 특히 고령자와 생활보호대상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9월23일 도쿄 신주쿠에서는 증세에 반대하는 데모가 진행됐다. 600명 이상이 참가했다. 데모에 참가한 이들은 “10%, 지금 당장 중지”라고 외치며 도쿄도청에서 신주쿠역까지 행진했다. 배우 출신의 야마모토 다로 레이와신센구미 대표도 소비세율 인상에 부정적이다. 소비세율 인상에 줄곧 반대해 왔던 그는 특히 태풍 15호 파사이로 피해를 입은 지바(千葉) 지역을 언급하면서 “피도 눈물도 없다”며 소비세율 인상 강행을 비판했다. 

여당인 자민당 내에서도 소비세 인상에 부정적인 의견이 존재한다. 니시다 쇼지 참의원은 ‘소비세 동결’을 계속 주장해 왔다. 그는 증세 반대 이유에 대해 주간아사히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베노믹스로 경제가 재생 노선을 향하기는 했지만, 금리는 오르지 않고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기미도 안 보이는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은행의 수익력은 큰 폭으로 감소했고 융자도 부진한 상태입니다. 어쩌다 불량채권 문제라도 발생하면 2008년의 리먼 쇼크 이래의 금융위기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소비세를 올리면 더욱 경기가 악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향후 또 ‘추가 증세’ 불가피하리란 주장도

이런 반대 의견과 함께 향후 밝지만은 않은 경제 전망에도 불구하고 소비세율을 인상하는 데는 사회보장제도를 위한 세수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의 일본은 그동안 사회보장 비용의 많은 부분을 ‘빚’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나랏빚이 1000조 엔 이상으로 늘어나고 3월말에는 일본 단기국채의 외국인 보유 비율이 약 70%를 넘기자 더 이상 국채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늘어난 복지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결국 소비세율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이번 증세에 따라 세수는 연간 약 5.7조 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중 나랏빚을 갚는 데 반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회보장에 사용한다. 10월1일 소비세율 인상과 함께 유아교육과 보육무상화가 시작되는데 증수분이 그 재원이다. 3~5세 아동은 원칙상 모든 세대, 0~2세 아동도 가정 수입이 낮을 경우 보육료가 무료다. 인가를 받은 보육원들의 보육료 무료로 아이를 기르고 있는 가정의 부담이 준다. 또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개호(요양)보험료 경감 등에도 사용되는 등 저출산 고령화 사회 대책에 증수분 대부분이 투입된다.

이번 증세를 앞두고 아베 총리는 “재증세는 이후 10년 동안은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증세에 대한 일본 국민의 반감을 줄이기 위한 발언으로 보이지만, 일각에서는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회보장제도와 재정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비세는 반드시 필요하고 앞으로의 증세 또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 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본의 고령화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시점은 2040년이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주니어’ 세대가 65세 이상이 되는 시점이다. 이때엔 사회보장 비용이, 1차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가 모두 75세가 되는 2025년보다 30% 이상 증가한 약 190조 엔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호리 도시히로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 특별교수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아베 총리의 주장대로 10년 동안 소비세를 동결한다면 그 10년 동안 재정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회보장 세출을 효율화하고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큰 폭으로 줄이면 소비세를 지금의 10%로 유지하고도 재정 재건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거액의 나랏빚이 남아 있고 앞으로의 후기고령화 사회의 사회보장 비용은 더욱 크게 늘어날 것이 분명하므로 소비세 증세 없이는 재정 재건이 어렵다는 것이 이호리 교수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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