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고도 두려운’ 한국판 아마존고
  • 박지호 시사저널e 기자 (knhy@sisajournal-e.com)
  • 승인 2019.10.09 10: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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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I&C×이마트24’ 선보인 자동 결제 셀프매장···물건 챙겨 매장 빠져나가면 결제 완료

아마존은 2018년 자동결제 셀프매장인 아마존고(Amazon go)를 열었다. 아마존고가 처음 일반에 오픈된 지난해, 이 생소한 매장을 설명하는 수사는 ‘미래형 유통매장’이었다. 줄을 서서 계산할 필요 없이 물건을 집고(grab) 나오면(and go) 아마존이 알아서 결제를 완료해 줘서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매장 같던 아마존고는 현재 미국(시카고, 뉴욕, 시애틀, 샌프란시스코)에서만 16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국내에도 이 같은 편의점이 등장했다. 신세계아이앤씨(I&C)가 개발해 이마트24에 구현한 ‘국내 최초 자동결제 셀프 편의점’이다. 말이 너무 길어 와 닿지 않는다면 이렇게 줄일 수도 있다. ‘한국판 아마존고’. 이마트24 셀프매장은 아마존고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편의성을 그대로 가져왔다. 줄 서지 않고(No Lines) 바로 나가는 것(No Checkout), 다른 말로 ‘저스트워크아웃(Just Walk Out)’이다.

이마트24의 자동결제 셀프매장 역시 아마존고와 같은 원리를 이용한다. 매장 이용자는 SSG페이 또는 이마트24 앱(APP)을 통해 발급된 입장 QR코드를 스캔한 후, 셀프매장에서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별도의 상품 바코드 스캔, 결제 등의 과정이 전혀 없이 쇼핑 후 매장을 나가면 미리 가입해 두었던 SSG페이로 자동결제된다.

김포 장기동에 위치한 이마트24 셀프매장의 운영방식(Just Pick and out)을 소개하는 문구가 매장 내부에 적혀 있다. ⓒ 시사저널e 박지호
김포 장기동에 위치한 이마트24 셀프매장의 운영방식(Just Pick and out)을 소개하는 문구가 매장 내부에 적혀 있다. ⓒ 시사저널e 박지호

감쪽같이 훔쳐도 걸린다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14평 셀프 매장에는 30여 대의 카메라와 무게 센서가 장착돼 있다. 이용자가 어떤 물건을 들었다 놓는지 인식하는 행동인식 카메라,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보는 트레킹 카메라 등은 저마다 역할과 기능을 갖추고 있다. 신세계아이앤씨 관계자는 “아마존고보다 적은 수의 카메라로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매장에서 물건 3개를 장바구니에 담아 그대로 게이트를 통과해 빠져나왔더니 정확히 1분 후, 결제가 완료됐다는 알림이 왔다. 기자가 산 물건이 그대로 영수증에 찍혀 있었다. 2018년 1월 아마존고의 기술이 2019년 9월 한국에서 실현된 것이다. 

그래서 궁금증이 생겼다. 천장에 달린 카메라가 이용자의 구매행위를 인식해 결제하는 시스템이라면, 우산을 쓰고 카메라로부터 숨어버리면 도난행위가 가능하지 않을까. 정답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 카메라의 시선을 따돌리고 매장에 상주하는 직원의 눈을 피할 수 있다 치더라도, 무게(Weight) 센서에 발각된다. 카메라가 눈이 돼 이용자의 구매행위와 이동을 추적함과 동시에 매대에 장착된 웨이트 센서도 물건의 들고남을 인식해 이용자의 구매행위에 대한 인식의 정확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로부터 행위를 숨겼다 할지라도, 몰래 물건을 집어드는 순간 무게가 차감되며 센서가 이를 이용자의 제품 선택으로 간주한다. 품 안에 고이 숨겨 매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결제가 되는 것이다. 신세계아이앤씨는 이 셀프매장을 컴퓨터비전(Computer Vision), 딥러닝(Deep Learning) 기반 AI, SSG페이, 클라우드 기반 POS 등 리테일테크와 연관된 다양한 기술을 시험하는 테스트베드 매장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신세계가 운영하는 백화점, 이마트 등에도 머지않은 미래에 이 같은 기술을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해 볼 수 있다.

아마존고를 만든 아마존은 유통기업으로 정의되기에는 어딘가 아쉽다. 책 《아마존의 야망》은 ‘아마존의 발전을 지지하는 것은 기술’이라고 적었다. 이에 아마존고에 적용된 기술이 아마존의 새로운 수입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마이크로소프트 일본 법인 사장이었던 이 책의 저자 나루케 마코토는 “아마존은 아마존고의 시스템을 슈퍼마켓과 같은 곳에 로열티를 받고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을 것”이라면서 “이미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파는 것은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 기업엔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저자가 외친 기술 판매 목적을 차치하더라도, 최근 유통매장 트렌드의 방점인 ‘경험’을 놓고 봤을 때 소비자의 발걸음은 ‘재밌는 쇼핑 경험’을 주는 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술은 경험을 만든다. 신세계와 같은 유통업체가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다.

이제 무인 서비스의 팽창은 필연이다. 키오스크(무인 계산대)는 현재 대형 프랜차이즈뿐 아니라 동네 김밥집 등 매장의 규모와 관계없이 ‘계산이 필요한’ 모든 곳에 침입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사이렌오더도 사실상 ‘개인용 키오스크’라고 할 수 있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 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25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3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도 추정된다. 규모의 확대는 이미 예견된 일이고, 성장 속도는 계속 새로 쓰일 것이다.

김포시 장기동에 위치한 이마트24 셀프매장 내부 ⓒ 시사저널e 박지호
김포시 장기동에 위치한 이마트24 셀프매장 내부 ⓒ 시사저널e 박지호

사람의 ‘쓸모’에 대한 고민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키오스크 1대가 계산원 1명의 몫을 한다면, 키오스크의 확대는 일자리 감소와 같은 말이 되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셀프매장은 무인매장이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앞선 이마트24 셀프매장의 경우에도 상주 직원이 2명이다. 일반 무인편의점에서도 손님과의 대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뿐, 재고나 위생을 관리하는 전담 직원은 있다. 그러나 이는 운영전략의 문제다. 1명의 관리자가 지금처럼 1개의 매장이 아니라 2개, 혹은 그 이상의 점포를 관리하게 된다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희망적인 시각도 있다. 책 《AI 2045 인공지능 미래보고서》는 “AI는 단순 작업 일자리를 인간에게서 빼앗아가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고용을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인재에게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산업용 로봇 생산 기업인 독일 쿠가의 미국 법인 조 젬마 사장은 로봇이 데이터사이언스 등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고 말한다. 일부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는 로봇이 생산과 판매 상황 데이터를 제대로 처리하는지 감시하는 ‘로봇 관리자’가 생겼다”고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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