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페미니즘]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5 17: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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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남성 페미니스트의 가능성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노래 제목이 아니다.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하자 남초 사이트(남성 사용자들이 많은 사이트)에 쏟아진 분노의 말들이다.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아무리 팬이라지만 아이린과 일면식도 없을 것이 분명한 남성이 어떻게 결혼까지 생각한다는 말일까? 저 말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휘성의 노래 가사도, 사랑하다 파국을 맞은 연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담은 것이지 ‘모르는’ 또는 ‘저 혼자 아는’ 상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분명 아니었다.

이런 일들의 이유를 잘 설명해 주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제목이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이란다. 제목 듣자마자 요즘 말로 ‘뿜었다’. 그런데 책에 실린 사례들을 보면 너무 어이가 없어 믿기 어려울 정도다. 아이린 팬클럽이야 연령대가 젊어서 그렇다 치고, 충분히 나이 먹은 소위 ‘아재’들이 여성의 직업적 친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쉽게 오해하는 일이 책 제목이 될 만큼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런 극도의 자기중심적 남성성은 단지 ‘결혼까지 생각’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여성을 제멋대로 성적 대상으로, 소유물로 여기는 데 익숙한 남성들의 사고는 쉽게 폭력으로 바뀐다. 이런 현상이 여성혐오 때문이고 성차별적 문화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더구나 남성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가해자의 자리에 있다는 것을 밝혀준다면, 남성 독자는 저절로 예민해질 것 같다. 스스로 차별당하고 있고 ‘남성혐오’당한다고 믿는 남성들이라면 더욱.

한참 웃고 통쾌해하며 책을 덮은 다음 씁쓸한 느낌이 밀려온다. 우리 사회의 존경할 만한 남자 어른들 중에, 페미니즘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심히 민망해지는 분들이 매우 많다. 사회적 신분이 높을수록 그들의 반성능력은 떨어진다. 도무지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런 분들이 유부남이면서도 “아내와 사이가 나쁘다” “외롭다” 운운하며 젊은 부하 여직원을 희롱하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개념 없는 여혐적 발언을 유머랍시고 한다. ‘결혼까지 생각’하는 젊은 남자들은 웃기기라도 하지, 여자친구를 때려죽인 남성에게 “사랑해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선처를 하는 판사에 이르면 심리적 공황이 찾아오기까지 한다.

 

사회적 신분 높은 남성, 반성능력 떨어져

많은 남성들은 아주 쉽게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에게 동조한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아서다. 모른다는 것조자 모른다. 몰라도 되는 그것이 바로 권력이고 차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남성이다. 오마이뉴스 박정훈 기자. 문제의 책에는 여성혐오적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수많은 사례가 등장한다. 여성들은 다 알고 심지어 분노하지만 남성들은 전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각종 사건들, 뭔가 모르게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 실제로 불쾌한 이유, 불쾌함을 넘어 여성들이 사는 세계를 극도로 위험하게 만드는 남성 중심성까지, 단지 분석에 그치지 않고 여성들과 연대하기 위한 반성적 사유로 가득 차 있다.

남성 페미니스트는 가능하다, 가능하지 않다로 한동안 SNS상에서 젊은이들이 싸우는 것을 보았다. 이 책은 남성 페미니스트도 가능하다는 것과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끄러워할 줄 알고,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는 남성으로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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