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힘 빼기’ 의 중요성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7 09: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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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집안의 어른들은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집요하게 똑같은 말을 했다. 커서 꼭 ‘사’자가 달린 사람이 되라고. 그 이유를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자의 한자가 다 같지는 않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됐다. ‘사’자 달린 직업 중 하나인 검사가 예전에는 ‘영감님’으로 불렸다는 말을 듣고는 입이 쩍 벌어지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영감님 소리를 들었던 검사들은 현직을 떠나도 갈 곳이 많다. 변호사는 물론, 국회의원까지 거뜬히 될 수 있다. 20대 국회만 해도 검사 출신이 17명이다.

그들의 현실이 말해 주듯 검사들의 위상은 확실히 달랐다. 대우가 남달랐고,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랐고, 특히 그들의 어깨에 들어간 힘이 남달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어른들의 흔한 말로 옛 시대의 과거 급제를 현재에서 이뤄낸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많은 이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해서 크게 이상할 게 없다. 선출직이 아님에도 일정한 권위를 인정받아온 데는 그 같은 정서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권위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는 이유로 주어진 표창장이 아니다. 일을 제대로 해 보라고 국민이 쥐여준 권위다. 누군가를 함부로 다치게 하라고 준 힘이 아니라는 얘기다.

서슬 퍼렇던 군부독재 시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부당하게 죄를 뒤집어썼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 공안 통치에 힘을 보태며 앞장섰던 세력이 검찰이었음도 새삼 들먹일 필요가 없다. 검찰이 수사·기소 등의 권한을 엉뚱하게 행사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우리는 똑똑히 봐왔다. 지금 국민이 검찰 개혁을 외치는 것도 검찰이 예전과 같은 세력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 때문이다. 검찰이 권력자나 특정 세력이 아닌, 전체 국민의 편에 서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9월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사법적폐 청산 집회에서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 등 참가자들이 촛불을 든채 검찰 개혁과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9월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사법적폐 청산 집회에서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 등 참가자들이 촛불을 든채 검찰 개혁과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9월 마지막 주말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입을 모아 ‘검찰 개혁’을 외쳤다. 검찰이 더는 성층권에 머무르지 말고 ‘인간계’로 내려와 양심과 소신, 탈권위, 효율에 집중해 달라는 바람이 거기 담겨 있었을 것이다. 이날 집회에 200만 명이 참가했느니 5만 명이 참가했느니 인원수를 두고 논란이 일지만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많거나 적다고 해서 그 외침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조국 장관 문제와는 별개로 현재 추진되고 있는 검찰 개혁에 대해 국민의 절반 이상이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어느 스포츠든 처음 입문할 때 으레 듣는 말이 있다. 몸에서 힘을 빼라는 주문이다. 지금 국민이 검찰에게 바라는 바도 그런 이치와 맥락이 닿아 있다. 검찰 스스로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내면 훨씬 효율적이고 정확한 수사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억지 힘이 아닌 소신과 양심에서 우러나온 힘을 바탕으로 올곧게 일을 해 달라는 것이 시민들의 요구다. 그와 함께 좀 더 유연한 자세로 외부의 견제에도 익숙한 검찰로 거듭나기를 시민들은 희망한다. 그것이 바로 많은 사람이 원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이다.

검찰 개혁은 정치권의 국면 돌파 수단이 되어서도 정략의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되는 ‘시대의 당위’다. 이제는 검찰을 정치로부터 그만 놓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촛불집회는 문재인 정부에 채무 하나를 더 안기는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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