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운명의 3차전, 기싸움은 시작됐다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 승인 2019.10.07 16: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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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시한’ 김정은-‘탄핵 반전’ 트럼프, 서로 이해관계는 맞아

북한과 미국이 비핵화와 체제보장 등 양측의 현안을 다룰 협상 시간표를 구체화하고 있다. 막판 신경전 때문에 우여곡절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실무협상에서 조속히 논의를 마무리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마주 앉도록 한다는 데 북·미 모두 교감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이는 워싱턴에서 불거지고 있는 ‘트럼프 탄핵 추진’이란 복병의 등장 탓도 크다. 김정은 입장에선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가 보다 굳건할 때 결과를 도출해야 향후 체제보장 등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트럼프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북핵 문제 해결은 탄핵 정국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연내 3차 정상회담’을 여러 번 기정사실화하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 또한 북·미 간 냉각기가 더 이상 장기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 특히 김 위원장의 경우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어 시간 압박을 느낄 공산이 크다. 제시된 시간 안에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할 경우 내년 신년사에는 그에 따른 대처나 입장을 안팎에 밝혀야 한다는 점에서다.

북한이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 스케줄을 공개 발표한 건 지난 10월1일이다. 북한과 미국이 공들이던 ‘9월 중 실무협상’이 불발되자 외교가에서는 당분간 소강상태를 맞는 건 아니냐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10월 벽두 북한이 김정은의 대미 외교 책사라 할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10월4일 예비접촉, 5일 실무협상”이란 일정과 진행 형식에 북·미가 합의한 사실을 알렸다.

(왼쪽)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4회 유엔총회 기자회견을 끝마치고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오른쪽)2018년 5월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연합뉴스·청와대제공
(왼쪽)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4회 유엔총회 기자회견을 끝마치고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오른쪽)2018년 5월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연합뉴스·청와대제공

트럼프-김정은 “연내 정상회담 갖자”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 앞에 예비접촉이란 수순을 추가한 건 지난 2월 ‘하노이 노딜’의 트라우마로 해석된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성과에 도취한 평양의 대미 협상팀은 하노이 2차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허를 찔렸다. 미국의 비핵화 요구와 대북제재 고삐를 깔봤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승승장구하며 대미 담판을 이끌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비롯한 통일전선부 라인은 협상 실패의 책임을 덮어쓴 채 힘을 잃거나 일부는 몰락하다시피 했다. 바통을 이어받아 전면에 나선 최선희가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무협상은 당초 7월 중 개최가 점쳐졌던 사안이다. 6월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2~3주 내에 실무협상을 재개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북·미 협상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게 됐다는 기대가 쏟아졌지만 상황 진전은 쉽지 않았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제재 지속에 대한 비난을 퍼부으면서 미사일 시험발사 등 도발 행보를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김정은 위원장을 치켜세우는 립서비스에 나섰지만 그의 참모들은 북한에 녹록지 않은 입장을 취했다. 트럼프가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해임하면서 북한은 다시 회담 테이블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눈길을 끄는 건 최근 북한의 대미 핵심라인이 나서 트럼프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는 대목이다. 미국과의 핵 협상에서 잔뼈가 굵은 김계관 외무성 고문(전 부상)은 9월27일 담화에서 “그 전임자들과는 다른 정치적 감각과 결단력을 갖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선택과 용단에 기대를 걸고 싶다”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어떻게든 트럼프가 백악관에 있는 동안 협상을 매듭짓겠다는 행간이 읽히는 대목이다. 

미국통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전 베트남 주재 대사)도 9월20일 담화에서 “나는 미국 측이 이제 진행하게 될 조(북)·미 협상에 제대로 된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리라 기대하며 그 결과에 대해 낙관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미 협상의 기류가 출렁이는 가운데서도 미국 대통령에 대해 깍듯한 태도로 비난을 삼가는 건 이례적이다. 북한의 관리들이 모두 개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입장을 밝히는 점도 특이하다. 외무성 등 북한의 공식 기구가 아닌 외교 관리의 개별적 견해임을 강조해 향후 사태가 꼬일 경우 리스크를 줄이려는 의도일 수 있다.

 

양측, 1차 싱가포르 회담 해석 놓고 이견

북한과 미국은 실무협상 등 논의 수순을 거쳐 연내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그에 상응하는 미국의 대북제재 조치를 둘러싼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가 펼쳐질 게 분명하다. 양측 모두 그 기준틀을 지난해 6월12일 서명된 싱가포르 공동성명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입장차는 극명하다. 북한은 비핵화와 관련한 이행과 미국의 상응조치를 단계적으로 주고받기 식으로 실행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아가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은 ‘동시적·병행적’으로 이행한다는 원칙 아래 비핵화에 대한 개념 규정과 핵 시설 동결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평양발 협상 재개 뉴스가 전해진 이튿날 불거진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는 북한의 대미 압박 카드로 읽힌다. 북한이 북극성-3형으로 이름 붙인 신형 SLBM은 기존의 1, 2형보다 사거리 등 기술력이 한층 향상됐을 것이란 게 우리 군 당국의 판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SLBM 발사 이전, 올 들어 이뤄진 9차례 18발의 북한 미사일 도발에 “작은 것(small thing)”이라며 무시했던 것과 달리 북극성-3형은 차원이 다른 위협일 수 있다. 북한이 건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3000톤급 잠수함에 탑재해 은밀하게 미 본토 인근 해역으로 침투한 후 미사일로 타격하고 빠져나오는 게 가능해진다는 점에서다. 블룸버그통신이 “북한은 이번 SLBM 발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북한은 북극성-3형 도발을 감행하면서도 이전과 달리 김정은이 발사 현장을 직접 참관하지 않았다. 미 국무부도 “도발을 자제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라”는 수준의 입장만 냈다. 양측 모두 어렵사리 마련된 회담 테이블을 깨트리지 않으려는 의중이 드러난다. 도발적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북·미 관계의 기본축을 뒤흔들 사안으로 몰고 가지 않는 쪽으로 교감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김정은이 시한으로 정한 올해 말까지는 석 달이 채 남지 않았다. 탄핵 논란과 함께 연말 미국 측의 크리스마스 시즌 등을 고려할 때 정상회담으로 가는 발걸음은 부산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먼저 실무협상 로드맵을 공개해 기정사실로 만들려 하고, 핵심 외교라인이 앞다퉈 트럼프 찬사를 내놓는 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평양 내부의 분위기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월 하노이 회담을 시작하며 김정은 위원장은 “시간이 없다”며 서둘러 회담 테이블에 앉으려 했다. 속내를 드러낸 결정적 패착이었다. 이를 간파한 트럼프 대통령은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올바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유를 부렸고 결국 김정은은 빈손 귀국이란 쓴맛을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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