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법정 공방’ 틈새로 빠져나간 범인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8 08: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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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1995년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

1995년 6월12일 오전 8시45분쯤,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아파트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현관문 틈으로 연기가 새어나온다는 주민들의 연락을 받은 경비원이 해당 호수에 인터폰을 넣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오전 9시7분쯤 경비원은 동료들과 함께 철제 방범창을 뜯어내고 집 안을 살폈다. 안방에서 불길이 솟는 것을 본 경비원은 화재가 발생한 것을 확인하고 119에 신고했다. 곧이어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안방 장롱에서 시작된 불은 장롱과 의류, 천장 벽지 등 일부만을 태운 채 10여 분 만에 진화됐다.

그런데 집 안을 수색하던 소방관들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집주인 부부 중 아내 최아무개씨(30)와 딸 이아무개양(2)이 욕조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외과의사인 남편 이아무개씨(33)는 개인병원을 개원하는 날이어서 출근한 상태였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욕조 안에서 발견된 모녀의 시신

모녀의 시신은 예사롭지 않았다. 뜨거운 물이 채워진 욕조에 최씨는 상의가 벗겨지고 속옷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목에는 끈으로 졸린 흔적이 역력했다. 딸 이양도 끈으로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됐다. 경찰은 범인이 모녀를 살해한 후 이를 화재로 위장하기 위해 불을 지른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집 안의 현관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제3자가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안방을 비롯해 집 안 어디에도 뒤진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없어진 물건도 없었다. 최씨 가방에는 현금과 수표 등이 그대로 있었다. 범인이 금품을 노리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경찰은 개인적인 원한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아내 최씨 주변을 탐문하다 그가 오랫동안 한 남성과 내연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명문대 출신 치과의사였던 최씨는 1989년 남편 이씨와 결혼했고, 1992년에는 개인병원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인테리어 업자를 알게 됐고, 두 사람은 내연관계로 발전했다. 최씨가 한창 이 남성과 밀회를 즐길 때 남편 이씨는 강원도 강릉에서 공중보건의로 군복무 중이었다. 최씨의 일기장에는 ‘남편과 잠자리를 하면서도 당신을 생각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런 정황에 따라 경찰은 남편 이씨를 1차 용의선상에 올렸다. 아내의 불륜을 눈치챘다면 범행 동기는 충분했다. 그러나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의 불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씨에게는 의심스러운 정황도 적지 않았다. 그의 팔에 손톱 자국이 있었는데, 이씨는 스스로 꽉 잡아 생긴 상처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상처의 모양은 자신의 손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베란다 커튼 끈이 잘려나가 있었는데, 최씨의 목에 난 졸린 자국과 폭이 유사했다.

집 안에 있던 이씨의 트레이닝복 바지에서는 수상한 쪽지가 나왔다. 여기에는 ‘위험한 독신녀’라는 영화 제목이 있었다. 이씨를 더욱 의심하게 만든 것은 영화의 내용이었다. 여기에는 남자를 죽여 욕조에 담그고 옷을 불태워 없애는 장면도 있었다. 경찰은 이씨에게 이 부분을 집중 추궁했다. 그는 쪽지에 적힌 영화에 대해서는 “제목조차 기억이 안 난다”며 고개를 저었다.

경찰은 이씨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가 공중보건의로 일했던 강릉으로 향했다. 이씨의 숙소 인근 비디오가게를 찾아 쪽지에 적힌 비디오를 대여했는지를 파악했다. 그랬더니 같은 영화를 두 번이나 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씨를 상대로 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는 ‘거짓 반응’이 나왔다. 경찰은 이씨를 아내와 딸을 살해한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리고 9월2일 전격 구속했다.

이씨는 “사건 당일 집을 나갈 때까지만 해도 아내와 딸은 살아 있었고, 둘의 배웅을 받으면서 병원에 출근했다”며 “경찰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나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여러 가지 정황을 꿰맞추고 있다”고 반발했다.

경찰은 이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도 같은 내용으로 기소했다. 재판에서는 모녀의 사망 시각이 최대 정점으로 떠올랐다. 이씨는 당일 오전 7시쯤 집을 나와 8시5분쯤 양천구 신월동에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집 안에서 연기가 밖으로 새어나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각이다.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아무개씨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아무개씨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력하게 용의선상 오른 남편

아내 최씨는 전날 밤 10시30분에 언니와 전화통화를 했다. 만약 최씨의 사망시간이 오전 7시 전이라면 이씨가 범인일 확률이 높다. 그 이후라면 이씨가 출근하고 경비원이 화재신고를 할 때까지 2시간 사이에 제3자가 침입했다는 것이 된다.

1심 재판에서 검찰은 이씨의 범행동기를 “아내의 불륜 등에 의한 가정불화”라고 단정했다.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고 격분해 아내와 딸을 살해하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시신을 담근 후 서서히 타도록 장롱에 불을 지르고 출근했다는 것이다.

국내 유명 법의학자들도 검찰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모녀의 사망시간을 오전 7시 이전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 근거로 시반(죽은 후 나타나는 시신의 반점)과 시강(시신 경직) 등이 제시됐다.

모녀의 검안이 이뤄진 것은 당일 오전 11시30분이었다. 이때 최씨의 시신을 뒤집자 오른쪽 대퇴부(허벅지)를 중심으로 양측성 시반이 나타났다. 보통 시반은 사후 6~8시간 이후에 나타난다. 이를 감안하면 사망시각은 오전 3시30분~5시30분쯤으로 볼 수 있다.

시강 또한 검안 당시 사후 7~8시간이 경과된 것으로 나타났다. 거꾸로 시간을 계산해 보면 최씨의 사망시각은 오전 5시 이전이다. 최씨의 위에서는 사건 전날 먹었다는 미역국 등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나왔다. 반면 이씨가 아침에 먹었다고 한 콩나물국의 흔적은 없었다. 이것 또한 최씨가 이씨 출근 전에 사망했다는 근거로 제시됐다.

검찰은 또 밀폐된 방 안의 장롱 속 옷가지에 불을 붙이면 밖에서 연기가 발견될 때까지 두 시간 이상 걸린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도 내놓았다. 이씨가 출근 이전에 부인과 딸을 살해한 뒤 집을 나온 후 불이 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장롱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이씨에게 유리한 정황도 있었다. 시신 발견 당시 최씨는 화장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었다. 최씨 어머니는 “딸이 평소 잠자기 전 렌즈를 뺀 뒤 화장을 지웠으며 아침에는 세수를 하고 렌즈를 낀 뒤 화장을 했다”고 진술했다. 최씨가 아침에 세수를 한 후 렌즈를 낀 다음에 사망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1심은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여 이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었던 것은 무죄의 증거가 못 된다고 판단했다. 이씨는 즉각 항소했다. 이때부터 이씨는 법정에서 삶과 죽음을 오고 갔다. 항소심은 1심의 유죄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나게 됐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또다시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남편 이씨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 됐다. 검찰의 논리를 깨지 못하면 극형은 불가피해 보였다. 변호인 측은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법의학 교수를 국내 법정에 세우며 검찰의 논리를 반박했다.

스위스의 저명한 법의학자인 토마스 크롬페처 교수는 국내 법의학자들과는 다른 주장을 폈다. 그는 직장 부분 온도를 측정하지 않아 정확한 사망 추정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 시반과 시강으로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것도 오차 범위가 넓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모녀의 사망시각이 오전 7시 이후라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의 승부수는 따로 있었다. 1800만원을 들여 학교 운동장에 사건 현장인 안방 구조물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리고 장롱에 불을 붙여 화재 실험을 했다. 결과는 검찰의 시뮬레이션과 달랐다. 불을 놓은 지 5~6분 만에 하얀 연기가 대량으로 발생했고, 8분 후에는 자연 감소되면서 색깔이 검은색으로 변해 갔다. 이 실험 결과로 보면 불은 이씨가 출근한 후에 발생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모의 화재실험은 재판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파기환송 재판부는 크롬페처 교수의 의견과 화재실험 내용을 받아들여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이 2003년 2월 이씨에게 무죄를 확정하면서 무려 8년간 이어진 법정 공방도 종지부를 찍었다. 이 사건은 판결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한국판 OJ심슨 사건’으로 불리며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이씨는 다섯 번의 재판 끝에 살인 누명을 벗게 됐다. 동시에 참혹한 모녀의 죽음은 베일 속에 가려지며 영구미제로 남고 말았다.

 

처음부터 허점투성이였던 경찰 수사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의 경찰 수사는 처음부터 한계를 보였다. 범인이 안방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현장이 많이 훼손됐다. 경찰은 시신 발견 당시 시신과 욕조 물의 온도를 재지 않는 뼈아픈 실수를 했다. 이로 인해 시신의 정확한 살해시점을 특정하지 못했다.

초동수사도 허점을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살해에 이용된 도구(끈)를 찾아내지 못했다. 범인을 특정할 만한 지문이나 혈흔, 목격자 등 직접 증거를 확보하는 데도 실패했다.

유력 용의자였던 남편 이씨에 대한 심증은 차고 넘쳤지만 그의 범행을 입증할 만한 물적 증거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법정에서의 진실공방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제3자의 범행 가능성을 낮게 본 것도 사건 해결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범인이 금품을 노린 강도일 확률은 낮다. 또 계획된 범죄보다는 우발적 범행에 가깝다. 만약 계획범죄라면 노끈 대신 흉기를 사용했을 것이고 면식범이 아닌 이상 굳이 안방에 불을 놓는 위험한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찰은 여러 가능성을 놓고 수사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남편 이씨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여기에 과도하게 집중했다. 문제는 모든 수사력을 집중했으면서도 물적 증거 하나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대법원에서 이씨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이 사건은 허공에 뜨고 말았다. 아울러 참혹하게 죽은 모녀의 억울함도 풀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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