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헤쳐갈 방법 담은 《벽이 문이 되는 순간》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6 11:00
  • 호수 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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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 동국대 교수 “감동 전하는 포노 사피엔스가 돼라”

“조직의 인재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무대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놀이터 같은 일터의 의미도 거기에 있다. 놀이는 기본적으로 무책임하고 자율적이다. 그래서 몰입하고 빠져들 수 있다. 그러나 놀이에도 규칙이 있다. 반바지를 입고 출근한다고, 천장에 모빌을 설치한다고 창의적인 문화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먼저 그들의 양면적인 성향과 가치를 존중하라. ‘조직 전체’를 위한다는 말로 열 사람의 범인이 한 사람의 초인을 쫓아내게 두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동국대학교 광고홍보학과에서 강의하는 김시래 교수가 최근 펴낸 《벽이 문이 되는 순간》에서 말한 내용이다. 이 책은 지난 3년간 그가 광고회사 대표와 대학교수, 기업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접한 사건과 사람들에게서 얻은 관찰의 기록이며 통찰의 결과물이다.

“포노 사피엔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등 눈만 뜨면 새로운 개념이 생겨난다. 세상을 움직이는 아이디어의 가속도가 눈부실 지경이다. 그런데도 학교에선 낡디낡은 강의록을 바탕으로 심리학 이론이나 광고 철학을 가르치고 있고, 서점에는 처세와 위로를 전파하는 베스트셀러들이 차고 넘친다. 스스로도 디지털 시대를 지혜롭게 건너갈 새로운 발상의 방법론이 필요했다.”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 일상을 향유하는 모습을 보면, 현대 인류를 ‘포노 사피엔스’라 명명하는 것만큼 적절한 표현을 없다. 김 교수는 스마트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있지만, 어차피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라면 좀 더 ‘스마트’하게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한다. 스마트폰을 자신에게 최적화된 방식으로 필요한 정보를 분류해 저장하고 활용하는 데 사용한다면, 그것은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삶의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벽이 문이 되는 순간》김시래 지음│파람북 펴냄│272쪽│1만6000원 ⓒ 파람북 제공
《벽이 문이 되는 순간》김시래 지음│파람북 펴냄│272쪽│1만6000원 ⓒ 파람북 제공

포노 사피엔스에게 필요한 창의력과 생각의 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이 좋은 정보도 활용되지 못하면 소용없다. 매일 만나는 낱낱의 데이터나 정보를 모으고 저장하고 결합해 활용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사진이나 영상, 글 등의 텍스트로 그때 그곳의 인상과 느낌을 수시로 기록하라. 지하철 출입문의 시 구절이나, 휴게소 화장실에 붙어 있는 명언도 상관없다. 그렇게 당신의 하루는 기록의 과정이어야 한다. 기록된 것들은 모년 모월 어떤 계기를 통해 호기심이나 질문으로 이어져 서로 결합하고 전환돼 새로운 가치의 ‘최초의 관점’으로 태어난다. 기록의 습관이 창조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여기에 ‘다르게 보기와 새롭게 보기’를 더한다. 이를테면 책상 위에 비린 냄새를 풍기는 고등어의 냄새를 없애는 방법을 묻는다. 냉장고에 넣는다. 비닐포장을 한다. 고양이에게 던져준다. 향을 피운다. 재빨리 조리한다. 문제는 고등어인가? 냄새인가? 냄새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역발상의 대답이 가능하다. 내 코를 막는다.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며,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역발상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한다.

“이러한 역발상에는 용기와 모험심이 따르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자신만의 관점을 생성하는 기회로 작용한다. 창의성은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과정과 생각의 훈련 속에서 축적되어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불쑥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균형감각을 강조한다. 액정 안의 디지털 세상과 친해졌다면, 이제 세상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온몸으로 부딪쳐 낯선 풍경들과 마주해야 한다. 김 교수는 산책과 여행을 통해 디지털 세상의 번잡스러운 정보가 특별한 관점으로 변화하는 새로운 경지를 맞는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디지털 세상의 각박함과 번잡함 속에서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아날로그적 감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날로그적 감성은 낡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균형추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이다.

“디지털은 기술적으로 우리의 삶을 진보시킬 것이다. 그러나 사색과 사랑, 봉사라는 인간의 휴머니즘적 DNA를 품을 때 의미가 있다. 어느 통신업체의 슬로건처럼 기술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한마디로 당신의 스마트폰은 인간 세상의 감동적인 전달자가 돼야 한다. 당신이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거리의 사람과 사건에서 발견한 발상 전환법

김 교수는 경쟁이 치열한 광고업계에서 일해 왔다. 광고에는 정답이 없으며, 언제나 참신함을 요구하고, 또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야 하는 일이다. 한 편의 광고는 혼신의 힘을 다한 뒤에 만들어진다. 그는 그런 노력으로 단련되면서 때로는 만족스러운 성취를 얻기도 했지만, 때로는 좌절과 시련을 맛보기도 했다. 힘겨운 시기에 읽었던 많은 책과 고전 등 인문 공부는 어떤 불행에서도 살아갈 힘을 주었음을 실감했다. 그가 깨달은 통찰은 꽉 막혀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벽 앞에도 문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매일 면도를 거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언젠가 나를 구해 주리라는 막연한 희망에 기대거나, 가스실에 끌려가는 사람들을 보며 공포에 젖어 일상을 포기해 버린 사람이 아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오늘의 삶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었다.”

김 교수가 일깨워주는 깨달음은 이 지점에 있다.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마주친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이 진실이고 진심이며 그 안에 길이 있다는 점이다. 각박한 디지털 시대에 표류하지 않고 순항하려면, 바깥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수많은 사건과 맞닥뜨려야 한다. 아날로그적 감성과 인문적 성찰이 어우러진 창의적 발상은 우리를 진정한 세상의 주인으로 우뚝 서게 해 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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