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 틴에이저] 비행기 대신 기차 타고, 고기 소비 줄이고…
  • 김민주 스웨덴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6 11: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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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주도하는 스웨덴 '녹색 바람'
공교육 커리큘럼에 '친환경 교육' 포함

“기후 위기로부터 살기 위해 우리는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

지난 9월27일 ‘미래를 위한 금요일’ 기후파업 운동을 위해 모인 6만 명 시민의 간절한 외침이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울려 퍼졌다. 스톡홀름의 인구가 약 96만 명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도시 인구의 약 6%가 참여한 셈이다. 당시의 생생함을 느끼기 위해 스톡홀름 집회현장을 찾았다. 시위는 자원봉사자들과 경찰의 안내 아래 전반적으로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이뤄졌다. 시위 참가자들은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구호를 연신 외치며 스톡홀름 시내 중심부를 행진했고, 지나가는 상당수의 시민은 이를 지지하는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였지만 눈길을 끈 것은 단연 ‘10대 청소년들’이었다. 이들은 시위대의 선두에서 행진을 이끌고 행사에서 사회를 보는 등 시위 주최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기후파업 운동은 2018년 그레타 툰베리가 스웨덴에서 시작해 현재는 전 세계 약 139개국에서 참여하는 대규모 운동이 됐다. 물론 툰베리의 강력한 메시지와 행동력으로 이 운동이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것이 단기간에 퍼질 수 있었던 것은 스웨덴 청소년들의 발 빠른 참여와 지지가 한몫을 했다.

9월27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기후파업’에 참여한 스웨덴 청소년들 ⓒ 김민주
9월27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기후파업’에 참여한 스웨덴 청소년들 ⓒ 김민주

유행어가 된 ‘I stay on the ground’ 해시태그

“미국에서는 기후 위기 문제가 ‘믿느냐, 믿지 않느냐(believe it or not)’의 대상으로 이야기가 되는 것 같지만, 적어도 제가 온 곳(스웨덴)에선 이 문제가 ‘사실(fact)’이에요.” 지난 9월 미국의 한 정치풍자 프로그램인 《더 데일리쇼》에서 사회자가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한 미국과 스웨덴의 차이점’을 묻자 툰베리가 했던 말이다. 그녀의 말대로 스웨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두드러졌다.

2013년 세계자연기금(WWF)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 청소년(15~25세)의 무려 80%가 ‘기후 위기로 인해 불안’하고, 약 25%가 ‘기후 위기를 생각할 때 복통을 겪거나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또한 2017년 스웨덴 전력회사(Vattenfall)의 조사에 따르면 12세에서 16세 사이 청소년들은 테러·학교폭력과 더불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 재앙’이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고기 소비 줄이기’ 운동이다. 2018년 북유럽각료회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웨덴 내 생태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고기 소비를 줄이는 밀레니얼 세대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청소년(15~24세)의 30%가 식물기반식이(plant-based diets)를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식습관이 연간 평균 0.8톤의 이산화탄소 등가(CO₂-equivalents)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사회민주청년동맹(SSU)이 “베지테리언 음식을 ‘기준’으로 정해 학교나 병원 등 공공기관에서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도 높은 주장을 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초 스웨덴 최초의 비건(채식주의자) 학교 ‘하가스콜란(Hagaskolan)’이 설립되기도 했다. 하가스콜란이 제공하는 식단은 전부 비건이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만 채워진다.

비행기를 타는 것을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는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스웨덴어 flygskam)’ 운동 또한 학생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이는 2017년 툰베리의 어머니이자 유명 오페라 가수인 말레나 에른만,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뵨 페리 등 다섯 명의 유명 인사들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지지하면서 시작됐다. 실제로 이 운동은 스웨덴 항공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8년 한 해 동안 스웨덴인의 23%가 ‘기후 위기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비행을 하지 않았고, 2019년 1분기 스웨덴 내 국내선 이용객이 전년 대비 3% 감소했다.

비행기를 타지 않는 대신 기차를 타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트레인 브래깅(train bragging·스웨덴어 tågskryt)’도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SNS와 언론에서는 ‘I stay on the ground’(나는 땅에 머문다)라는 뜻의 해시태그(#jagstannarpåmarken)가 유행어가 되었고, 기차여행에 대한 팁을 공유하는 페이스북 그룹(Tagsemester)의 회원은 10만2482명(9월23일 기준)에 육박하고 있다.

 

공교육에서 싹튼 스웨덴 ‘녹색 바람’

스웨덴에 이처럼 ‘녹색 바람’이 번져갈 수 있었던 데는 교육의 힘이 컸다. 스웨덴은 1972년 스톡홀름에서 열렸던 유엔인간환경회의를 기점으로 유치원부터 성인교육까지 모든 교육 커리큘럼에 ‘환경교육’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또한 2011년에는 유엔유럽경제위원회의 ‘지속가능발전교육(ESD) 전략’에 발맞춰 전반적인 교육 제도를 재정비했다. 이로 인해 학위·상·장학금 등 교육 장려책이 생기고, 사범 교육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필수적으로 지속가능발전교육(ESD) 관련 항목을 이수하게 됐다. 이러한 교육 개혁을 통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알고 토론하며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후파업 운동을 이끈 장본인인 툰베리 또한 이 교육의 수혜자다. 툰베리는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선생님이 학교에서 보여줬던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를 통해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며 자신이 받은 교육의 영향력에 대해 언급했다. 툰베리와 스웨덴의 많은 청소년들이 움직일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환경교육의 의무화와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8년 환경교육진흥법이 제정됐지만, 제도적 한계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기후위기시대 환경교육 입법화’ 국회 토론회에서 이재영 국가환경교육센터장은 “교육과정 편성표에 국·영·수 과목이 106단위 들어갈 때 환경 과목은 하나도 없는 고등학교가 있을 정도”라며 ‘1주 1시간 환경교육’과 ‘전문 환경교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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