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F 사태 본질은 세계 제조업의 위기
  •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MBC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5 15: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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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으로 독일 경제 직격타…수출 중심인 한국 경제 우려도 커져

시중은행에서 판매한 독일 국채금리 연계 파생상품(DLF)의 손실이 드디어 확정됐다. 당연한 일이지만 금융회사들의 소홀한 리스크 관리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미흡했던 내부통제에 불완전판매 같은 문제점도 발견돼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부 은행은 투자자만이 아니라 상품을 판매한 행원들에게도 원금손실 위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불완전판매를 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상품을 팔아서 수익 올리는 데만 급급했던 은행이나 증권회사들은 적절한 보상에 나서는 것이 옳다. 이제 분쟁은 필연적이고 금융감독원은 추가 검사를 통해 조정에 나서게 될 것이다. 제도 개선을 위한 대책도 논의될 예정이다.

9월27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DLSㆍDLF 피해자 집단 민원신청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9월27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DLSㆍDLF 피해자 집단 민원신청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 ?0.7%까지 하락

그런데 이쯤에서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자. DLF의 수익률에 빨간불이 들어오게 된 것은 독일의 장기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 10년물 채권금리에 연동한 DLS(파생결합증권)이다. 해당 금리가 -0.2% 이상만 유지되면 연 3~5%의 수익을 지급하지만, 이보다 낮아지면 0.1%포인트 초과 하락할 때마다 원금의 20%씩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그런데 지난달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0.7%까지 하락했었다. 생각해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의 금리다. 장기채권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말은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웃돈을 얹어주고 사야 한다는 말이다. 채권을 사는 사람들이 어리석어 마이너스 금리를 무릅쓰고 사들이는 건 아니다. 만약 금리가 더 떨어진다면 지금 웃돈을 주고 채권을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돈을 크게 벌게 된다. 장기채권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건 결국 돈이 제값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고, 그만큼 경기를 좋지 않게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투자할 데가 아예 없다는 소리가 되는데 지독한 장기 경기침체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독일이 어떤 나라인가. 누구나 독일이 제조업 기반이 확실한 유럽 경제의 우등생이라는 것을 안다. DLS를 팔면서 한 은행이 투자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는 세계 최고의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금리에 6개월만 투자해 보라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허튼소리지만 이런 홍보가 잘못된 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은 그런 말을 들을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유로존 경제를 이끄는 경제 대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독일은 우리가 알던 우등생의 모습이 아니다. 지난 2분기 독일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0.1%를 기록했다. 3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다면 2분기 연속이다. 보통 2분기 연속 역성장을 기록하면 경기침체로 규정한다. 성장률이 꺾어지면서, 불황에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있다. 소비심리는 2년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고, 기업경기지수는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금리 하락과 경기 부진 속에 유럽 최대 은행이기도 한 도이체방크는 앞으로 3년 동안 약 2만 명의 임직원을 감축하겠다는 계획까지 밝혀야 했다. 그야말로 독일 경제의 추락이다.

엉뚱하지만 독일 경제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은 미·중 무역전쟁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가장 큰 피해를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독일이 우선 당하고 있다. 정말 역설적이지만 독일 경제가 가진 강점 때문이다. 독일은 제조업이 강한 나라다. 그래서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제조업과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독일 GDP의 47%가 상품과 서비스 수출에서 발생하며, 제조업이 국가 경제의 5분의 1을 책임진다. ‘흔히 수출로 먹고산다’고 얘기하는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독일의 수출의존도가 더 높다. 우리나라는 37%인 데 반해 독일은 39%다. 무역전쟁의 당사자 중국은 19%, 미국은 8%에 불과하다.

지난 6월 독일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8% 줄었다. 특히 최대 수출품목인 자동차 수출은 지난 2분기 13%나 급감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 독일의 주력 수출시장인 중국 경제가 침체한 탓이 크다. 중국 시장이 위축되면서 독일 경제의 엔진인 자동차산업도 흔들리게 된 것이다.

사실 독일이야말로 트럼프가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로 나타난 세계 제조업의 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경기하강이 가져오는 여파는 생각보다 크다. 지금 세계적으로 보면 제조업이 다 어렵다. 제품 생산과 판매, 주문 등 모든 지표가 악화했다. 미국과 독일의 9월 제조업지수는 두 나라 모두 금융위기를 맞았던 2009년 이후 최악이다. 물론 미국은 제조업 비중이 11%에 불과해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은 다르다.

미·중 무역전쟁 영향으로 글로벌 교역 규모가 줄어들면서 수출 중심의 제조업이 먼저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는 지난해 3% 늘어난 글로벌 상품 교역이 올해는 1.2% 느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예상이 적중하면 올해 무역 증가세는 2009년 이후 최악이 된다.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제조업 강국인 독일 경제가 큰 피해를 입었다. ⓒ 연합뉴스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제조업 강국인 독일 경제가 큰 피해를 입었다. ⓒ 연합뉴스

미·중 무역전쟁, 유럽으로 확전

사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사정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아직 해결 전망이 확실히 보이지 않고 있는데 트럼프는 이제 무역전쟁을 유럽연합으로까지 확대했다. 10월2일 미국은 유럽연합에 부과할 관세 폭탄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EU에서 수입하는 항공기에 10%, 농산물과 공산품을 포함한 다른 품목에는 25%의 관세를 18일부터 부과한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대상에는 EU산 치즈, 올리브, 위스키 등이 포함된다. EU는 똑같은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맞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다. 무역전쟁은 진정되는 게 아니라 확산되고 있다.

이쯤에서 생각해 봐야 하는 건 우리나라다. 첨단부문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독일과 그리고 우리나라는 중국의 산업 고도화에 따른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두 나라다.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충격을 흡수할 내부구조는 그래도 우리보다는 독일이 탄탄하다. 수출의존도는 독일이 더 높지만 GDP에서 차지하는 공업의 비중은 우리가 33%로 25%의 독일보다 크기 때문에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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