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만 있으면 당신도 사장님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경영학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7 15: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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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품 제작에서 투자, 유통까지 지원하는 메이커스페이스 비즈니스 모델

“아이가 태어나고 저희 집은 말 그대로 시간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쉴 새 없이 나오는 젖병과 수유용기, 침이 범벅된 장난감 등 면역력이 약한 아기가 사용하는 거라 밤낮으로 세척하고 살균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유아용 자외선 소독기 개발 이후 크라우드 펀딩으로 목표액의 1000% 이상 투자받고 해외수출까지 성공한 스타트업 페어런토리 최영수 대표의 말이다. 그는 “살균 성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늘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소독기에 젖병을 넣기 전에 나도 모르게 열탕소독을 한 번 더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며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고자 소독기를 산 것인데 오히려 시간을 두 번 쓰고 있으니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자외선 소독기다. 최 대표는 잘나가던 변리사 일을 집어던지고 창업에 도전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기존 소독기들은 대부분 살균 사각지대가 있었다. 100% 살균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실험이 필요했다. 우여곡절 끝에 실험을 마치고 파일럿 제품을 만들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제조 파트너 회사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2016년 7월3일 서울 성동구 성수IT종합센터 내 성수 메이커스페이스에서 열린 ‘메이카톤’ 대회 모습 ⓒ 연합뉴스
2016년 7월3일 서울 성동구 성수IT종합센터 내 성수 메이커스페이스에서 열린 ‘메이카톤’ 대회 모습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월3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빌딩 내 메이커스페이스 N15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월3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빌딩 내 메이커스페이스 N15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조업 기반 스타트업의 고민 해결에 유효

최 대표의 사례는 우리나라 제조 기반 스타트업들이 창업하면서 겪게 되는 공통적인 문제다.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비즈니스 모델이 메이커스페이스(Maker Space)다. 제조가 필요한 스타트업이나 개인이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오픈 스페이스인 것이다. 즉, 이용자가 준비된 도구와 장비를 사용해 모든 종류의 제품을 설계·창작할 수 있는 라이브러리다.

국내 1호 메이커스페이스는 N15(공동대표 허재·류선종)다. 이곳에서는 아이디어만 가져오면 멘토링을 통해 시제품 제작을 지원한다. 이렇게 개발된 시제품은 필요에 따라 특허를 받게 하고, 투자 주선을 거쳐 양산 가능한 제조업체로 연결해 준다. 반응이 좋으면 국내 유통을 직접 지원하고,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도 도와주는 그야말로 원스톱 제조 서비스 지원 시스템이다.

메이커스페이스는 불과 2년 전 국내에 론칭됐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2006년부터 시작됐다. 어린이들이 DIY(Do It Yourself)를 통해 과학기술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ematics) 교육을 지원하는 용도였다. 미국 교육부는 STEM을 “미래의 지도자가 현재와 미래의 복잡한 과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며, 역동적이고 진화하는 기술과 콘텐츠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메이커(Maker) 문화를 주도하게 된 것은 코딩 교육의 선도 모델이 된 라즈베리파이(Raspberry Pi)다. 라즈베리파이는 학교 및 개발도상국 컴퓨터 교육 촉진을 위해 영국의 라즈베리파이재단이 개발한 초소형 싱글보드 컴퓨터다. 200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컴퓨터과학과 에벤 업톤(Eben Upton) 교수와 박사과정 학생 등 네 명의 아이디어로 프로젝트가 시작됐지만 지금은 세계 코딩교육을 주도하고 있다.

산업형 메이커스페이스는 미국 MIT의 팹랩스(Fab Labs)에 뿌리를 두고 있다. 팹랩스는 디지털 제작 시스템을 제공하는 소규모 실험실이다. ‘발명과 혁신을 위한 기술적 프로토타이핑 플랫폼’으로 정의된다. 이곳을 학생과 현지 기업가들에게 개방해 ‘가지고 놀면서 배우고, 창조하며 도전하라’는 것이 미션이다.

이전까지는 개인이 단순하게 물건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팹랩스는 ‘사람들 간의 협력을 통해 단일공간에서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다르다. 즉, 개인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do-it-with-others) 사고방식이 적용되는 유기적 공간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메이커스페이스는 기술, 예술, 교육 및 협업의 융합 솔루션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N15에서는 그동안 피부 측정 분석기, 유모차 브레이크 시스템, 고양이 전용 빗, 포스트잇 프린터, 비트코인 지갑 등 200여 개 제품을 개발해 유통시키고 있다. 이 가운데 히트상품 반열에 오른 ‘고양이 전용 빗’의 사업화 과정을 보자. 기존 빗은 날카롭고 소재가 철이어서 많이 아팠다. ‘고양이가 새끼를 핥아주는 촉감을 낼 수는 없을까?’ 그래서 나온 제품이 혓바닥 질감과 패턴을 구현해 거부감을 없앤 고양이 전용 빗이다. 이 제품은 크라우드 펀딩을 거쳐 소비자들의 공감을 확인한 후 양산해 지금은 아마존까지 진출한 상태다.

메이커스페이스는 제조 기반이지만 업종을 다양하게 특화해 설립할 수도 있다. 나사렛대학교가 최근 론칭한 ‘NA-DO 메이커스페이스’는 노인과 장애인의 재활분야로 특화했다.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헬스케어형 맞춤 보조기기 제작을 희망하는 창업가를 지원하기 위함이다. 공진용 NA-DO 메이커스페이스 단장은 “노인과 장애인에게는 체험과 재활교육을 제공하고, 창업가들이 만든 제품은 관련 기관에 맞춤형 보조기기로 등록해 주고 해외 판로 개척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N15 통해 개발된 고양이 전용 빗 ‘대박’

이처럼 메이커스페이스는 N15와 같은 혁신 창업가, NA-DO 메이커스페이스 등 교육기관은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 금융기관, 언론사 등 활성화 역량이 있는 기관들이 참여할 수 있다. 앞으로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혁신가들이 협회나 조합 같은 단체를 만들어 도전한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일례로 일본 아키하바라의 메이커스페이스 ‘DMM, Make Akiba’는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특화해 2014년 말에 오픈했다. 관련 기업 세 곳이 합작으로 설립했는데 이들은 오타쿠(御宅) 문화의 발상지로 발돋움하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세계적으로 메이커스페이스에 대한 관심은 크게 늘고 있다. 구글 트렌드에서 분석해 보면 지난 2년 동안 ‘Maker Space’ 검색이 5배 이상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창업진흥원(k-startup.go.kr)이 생활 밀착형 창작공간인 ‘일반랩(Lab)’과 창업 연계형 전문 창작공간인 ‘전문랩’으로 나눠  초기 사업비를 최고 5억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제조업 르네상스 시대를 견인하고 싶은 단체나 개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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