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하나 돼 기억할 대통령, 또 있을까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5 14: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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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 한마음으로 모은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추모가 특별한 이유

9월30일 프랑스 파리 생 쉴피스 성당에서는 9월26일 세상을 떠난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엄수됐다. 부인인 베르나데트 시라크 여사는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의 장례미사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 4월 화재로 인한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그 바람은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추모 열기로 가득했다.

부고가 전해진 직후 프랑스 뉴스 채널 ‘앵포’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80%에 이르는 프랑스 국민이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을 ‘좋은 대통령’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정치권은 모처럼 좌우를 막론하고 추모 대열에 동참했다. 다만 유족의 반대로 극우정당 국민연합의 당수인 마린 르펜은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마린 르펜의 아버지인 장 마리 르펜은 2002년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한 시라크의 경쟁 상대였다. 장례식 초청장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린 르펜은 “우리는 시라크 전 대통령이 이라크전쟁에 반대한 것을 기억한다”는 트윗으로 고인을 추모했다.

9월30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해 그를 추모하고 있다.  ⓒ EPA 연합
9월30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해 그를 추모하고 있다. ⓒ EPA 연합

“전 세계 지도자 한데 모을 마지막 정치인”

장례식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나코 공국의 알버트 2세 등 전 세계 30여 개국의 국가원수와 왕족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프랑스 언론 BFM TV는 장례식에 초청된 인사들의 면면을 자세히 보도하며, 시라크에 대해 “이렇게 많은 전 세계의 지도자를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프랑스의 마지막 정치인일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시라크는 7년간의 대통령 임기 전 18년간의 파리 시장직, 두 번의 총리직까지 총 43년간 프랑스 정부 고위직에 몸담은 프랑스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이다. 그의 정치 인생에 대한 평가는 ‘반미(反美)’와 ‘환경’ 그리고 탁월한 ‘대중 친화력’으로 주로 요약됐다.

2004년 6월9일, 미 동부 조지아주의 시아이슬랜드(Sea Island)에서는 서방 선진 7개국과 러시아까지 참여한 G8 정상회담이 열렸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회담장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더운 날씨를 이유로 가볍게 ‘노타이 회담’으로 예정돼 있던 자리에 시라크 대통령만이 홀로 붉은 넥타이를 단단히 매고 등장한 것이다. 의장국인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시라크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나토 방위군의 아프가니스탄 주둔 및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등의 사안에 대해, 드레스 코드를 통해 미국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당시 프랑스 언론은 “워싱턴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겠다는 프랑스의 의지”라고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이 일화는 시라크의 미국에 관한 입장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러나 그가 미국과 무조건 적대적 관계를 가졌던 건 아니었다. 미국 9·11 테러 당시, 참사 현장을 방문한 해외 첫 정상이 바로 시라크였으며, 당시 그는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국장의 형식으로 치러주었다. 프랑스 5공화국 역사상 거행된 7번의 ‘국장 추모’ 중 유일하게 프랑스 영토 외부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한 것이었다. 2003년 이라크 공습에 반대한 것도 “친구라면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완곡한 프랑스식 화법을 사용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러한 모습은 ‘인권’이라는 가치를 우선에 두고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프랑스 국민의 자존감을 충족시켜줬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은 지금, 프랑스 전역에 ‘시라크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의 집이 불타고 있는데, 우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부고가 전해진 후 언론과 각계각층에서 쏟아진 그의 무수한 어록 중 가장 많이 인용된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2002년 리우 환경협약 당시 시라크 연설의 한 문장이다. 최근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등장과 함께 전 세계적 화두로 등장한 환경문제에 있어, 이미 시라크는 어느 나라도 여기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부터 그 중요성을 지적해 왔다.

9월30일 파리 생 쉴피스 성당에서 치러진 시라크 전 대통령 장례식에 많은 추모객들이 자리를 메웠다. ⓒ AP 연합
9월30일 파리 생 쉴피스 성당에서 치러진 시라크 전 대통령 장례식에 많은 추모객들이 자리를 메웠다. ⓒ AP 연합

너무나 프랑스적인 대통령 추모 물결

프랑스는 누구든 충분히, 자유롭게 추모할 수 있도록 하는 ‘프랑스 방식’으로 오랜 친구 시라크를 떠나보냈다. 부고가 전해진 당일 엘리제궁은 이례적으로 대통령궁을 개방해 시민들이 고인을 추도할 장소를 곧장 제공했으며, 장례식이 엄수되기 전날인 9월29일에는 고인의 유해가 안치된 파리 앵발리드에 밤새 조문객이 오가도록 했다. 시라크의 둘째 딸이자 집권 당시 시라크의 의전을 맡았던 클로드 시라크는 홍보 담당 전문가답게 추모객들을 하나하나 악수로 맞이하며 감사를 표했다.

부슬비가 흩뿌렸음에도 조문은 밤까지 이어졌다. 수백 미터에 이르는 추모 행렬 가운데 서 있던 시민 메샐 아브릭은 “파리에서 2시간 거리인 오를레앙에서 왔다”며 공군 출신으로서 자신이 시라크 대통령 시절 전용기 승무원으로 일했다고 밝혔다. 그는 “시라크는 승무원들의 안부까지 챙기는 세심한 사람이었다”며 추모객들과 함께 고인과의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추모는 그가 집권 기간 중 세운 대형 건축물이나 공원을 중심으로 형성돼 오곤 했다.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샤를 드골 장군은 그의 동상이 세워진 샹젤리제 거리와 파리의 관문인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서, 후임이었던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은 파리 현대 건축의 상징인 퐁피두센터와 프랑스 최고의 의료기관 중 하나인 퐁피두 병원에서 기려졌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역시 4개 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미테랑 도서관과 신(新)개선문, 그리고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루브르 박물관 앞 대형 피라미드 등을 통해 프랑스 역사와 국민의 가슴속에 남았다. 미테랑의 뒤를 이은 자크 시라크 역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프리카 미술을 위해 재임 당시 에펠탑 앞 센강변에 케 브랑리 박물관을 건립했다. 그의 이름을 딴 자크 시라크 재단은 그가 떠난 후에도 사회사업을 멈춤 없이 이어가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프랑스 전역의 국민적 추모는 시라크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까. 그 답은 비관적이다.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중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경우 임기 후반에 얻은 3%대 지지도 이후 여전히 호감도가 그대로이며, 그 전임자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역시 현재 수사 중인 사건만 3건으로 감옥의 문턱에 와 있다. 시라크를 총리로 발탁했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 또한 ‘아프리카 다이아몬드 수수 스캔들’의 그림자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사후에 진영을 불문한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릴 수 있는 전직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 그래서 많은 프랑스 국민은 시라크의 마지막을 더 길게 추모하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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