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제주도로, 야구선수는 서울로
  • 기영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4 14: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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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집중화 현상, 야구계도 덮쳐…가을야구 진출 4팀 모두 수도권 구단

준플레이오프 진출팀을 가리는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LG가 이기면서 프로야구 38년 만에 처음으로 수도권 4팀만이 ‘가을야구’ 축제를 벌였다. 한국 프로야구는 10개 팀이 팀당 144경기씩 페넌트레이스를 벌이는데, 10개 팀의 1차 목표는 가을야구를 하는 것이다. 일단 팀이 가을야구를 하게 되면 한국시리즈 우승 가능성을 갖게 되고, 이제까지 가을야구에 성공한 팀들의 코칭스태프가 경질된 적이 거의 없어 팀 전체가 안정감을 갖게 된다.

현재 프로야구 10개 구단은 수도권과 지방 연고 팀이 5개 팀씩 반반으로 나뉜다. 일찌감치 1~4위 팀은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두산 베어스와 키움 히어로즈, LG 트윈스, 그리고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SK 와이번스로 확정됐다. 나머지 와일드카드 결정전 진출 팀을 가리기 위한 5위 다툼에서 NC와 kt 위츠가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치다가 가까스로 NC가 올라갔다. 만약 수원을 연고지로 하는 막내 구단 kt가 5위에 올랐다면, 올 시즌 프로야구는 완벽하게 1~5위 수도권, 6~10위 지방 팀으로 양분될 뻔했다. 지난 1980~90년대만 해도 프로야구의 흥행과 성적은 해태(현 KIA)·삼성·빙그레(현 한화)·롯데 등 지방 팀들이 주도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이 이제 프로야구계까지 덮친 셈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2019 프로야구는 수도권 4팀의 ‘가을잔치’로 마무리되고 있다. 왼쪽은 10월7일 키움-LG의 준플레이오프전. 오른쪽은 9월19일 두산-SK전 ⓒ 연합뉴스
2019 프로야구는 수도권 4팀의 ‘가을잔치’로 마무리되고 있다. 왼쪽은 10월7일 키움-LG의 준플레이오프전. 오른쪽은 9월19일 두산-SK전 ⓒ 연합뉴스

학생 유망주들, 수도권 고교 팀에 집중

첫째는 야구 유망주들의 수도권 팀 집중 현상이다. 아마추어 야구계에서는 “말은 낳아서 제주도로, 야구선수는 낳아서 서울로”라는 말이 있다. 초·중학교 유망주들은 일단 서울 고교 팀을 타진해 보고 안 될 경우 지방 팀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수도권) 팀에 가야 프로에 갈 확률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수도권 고교로 몰리다 보니 팀당 선수 자원에서도 차이가 난다. 지방 고교 팀들은 많아야 팀당 30명을 겨우 넘기는데, 서울 명문고들은 60명이 넘어 덕아웃에 들어가지 못하는 선수들이 절반이 넘는다.

수도권 프로야구 5개 팀은 많은 유망주들 중에서 1라운드 지명을 해 팀 전력을 알차게 보강하는 반면, 지방 팀들은 1라운드에서 상대적으로 수도권 팀들에 비해 불리하다. 특히 LG·키움·두산 3팀은 돌아가면서 서울 연고 선수들을 1·2·3순위로 지명권을 행사하는 특혜 아닌 특혜를 누리고 있다.

2020년 1차 지명 선수만 봐도 잠재력과 스타성에서 전국 고교 선수 최상위권을 다투는 휘문고 이민호, 장충고 박주홍, 성남고 이주엽 선수가 나란히 LG·키움·두산으로 지명되었다. kt 소형준 투수도 앞의 세 선수 못지않게 가능성이 있는 투수로 평가받는다. SK가 지명한 오원석 투수 또한 최고속도 143km의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가 좋고 제구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NC 연고지인 창원(경남권)은 고교 야구팀이 4팀뿐이다. 유망주도 잘 나오지 않아서 1차 지명보다는 오히려 2차 지명 때 더 좋은 선수를 뽑고 있다. 프로야구 최고 명문 구단으로 꼽히는 KIA 타이거즈도 지역 연고 팀들의 수준이 예년에 비해 많이 떨어져 최근 1차 지명된 선수들이 만약 전면 드래프트였다면 2~3차로 밀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수도권과 지방 팀들의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2022년 신인 선발부터는 1·2라운드 없이 모든 팀들이 전면 드래프트를 실시하기로 했다. 2012년 1차 지명 제도가 생긴 이후 10년 만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두 번째는 프로야구 양대 명문 팀인 삼성 라이온즈의 투자 축소와 KIA 타이거즈의 부진이다. KIA는 전신 해태 시절을 포함해 모두 11차례나 우승했다. 특히 해태 시절인 1980년대와 90년대는 선동열·이종범을 내세우며 무려 9차례나 우승했다. KIA는 김기태 감독을 중심으로 2017년 우승을 차지하면서 다시 옛 영광을 되살리는 듯했으나, 이후 다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삼성전자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삼성 라이온즈는 타이거즈 다음으로 많은 8회 우승을 차지한 명문 팀이었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스포츠단 투자 축소 계획에 따라 2016년 1월 제일기획 산하 삼성스포츠단으로 편입되었다. 그 후 박석민(NC), 최형우(KIA) 등 당대 최고의 FA 선수들을 잡지 않아 공격력이 급격히 쇠퇴했다. 삼성은 2016~17년 연속 9위에 머물렀고, 작년 6위로 깜짝 분발하더니 올해 다시 8위로 떨어졌다.

 

‘단장 야구’ 전성시대 이끈 수도권 구단들

세 번째로 수도권 팀 단장들의 혜안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수도권 팀의 단장들은 감독들이 요리하기 좋게 밥상을 잘 차려놓고 있다. 두산 김태룡 단장은 양의지를 NC 다이노스로 보내고 보상선수로 이형범 투수를 데려와 불펜에서 요긴하게 쓰고 있어 ‘125억짜리 불펜’ 투수를 영입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프로선수 출신의 SK 손차훈 단장은 홈구장인 문학구장의 외야가 짧은 탓에 투수력 위주의 불펜야구에서 거포군단으로의 변신이 적합하다고 판단, 정의윤 등 거포들을 영입해 성공을 거뒀다. 최근에는 득점 루트를 다양화하는 데 중점을 둬서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다.

역시 선수 출신인 LG 차명석 단장은 야구인들 가운데서도 독서량이 많고, 아이디어도 풍부한 지도자로 평가를 받아왔다. 시즌 도중 한화 이글스에 신정락을 내주고 송은범을 받아들여 불펜을 강화했고, 선수들의 군 입대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장원삼·김정우·양종민 등 노장 선수들을 영입해 숨통을 틔워주었다. 또한 키움 FA 김민성을 영입해 3루수 고민도 해결했다.

두산·SK·LG 등 수도권 구단들이 유능한 단장 때문에 팀 성적도 향상되었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최근 지방 구단들도 파격적으로 단장을 선임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37살의 성민규씨를 단장으로 선임했다. 성 단장은 2016년부터 최근까지 시카고 컵스의 환태평양 지역(Pacific RIM) 스카우트 슈퍼바이저를 역임했다. 한화 이글스도 팀의 레전드 출신 정민철 야구해설위원을 새 단장으로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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