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광화문집회] “자유민주주의 희망을 보았다”
  •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jongseop1@naver.com)
  • 승인 2019.10.14 10: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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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교수 “문 대통령, 조국 해임 결단하고 통합정치 펼쳐야”

참으로 놀랍고 감격스러운 현장이었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멜로디가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지키자 자유민주주의’ ‘조국 out’ ‘조국 구속’ ‘문재인 하야’ 등의 피켓과 태극기를 손에 들고 그곳에 모인 국민의 표정에서는 제법 비장함과 울분이 함께 표출되었다. 그들은 불의한 권력에 결코 침묵할 수 없어 나온 민주시민들이었다. 10·3. 서울 도심 대규모 집회는 우리나라 역사가 만들어진 현장이었지만 평화로웠다. 그곳에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의 붕괴를 걱정하는 한결같은 구국의 절박한 마음이 흐르고 있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그곳 분위기는 비단 엄청난 규모로 모여든 사람 수에서 느껴지는 열기만은 아니었다. 이심전심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국의 열기를 내뿜는 무언의 무게가 가득한 현장이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대통령과 파렴치한 조국 장관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하는 현장이었다. 그곳에 모인 군중은 좌우 이념을 따지고 검찰 개혁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외치려고 나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문 대통령과 철면피 조국 및 그 호위무사 격인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는 독선과 궤변과 불법의 현실에 분노하며 분기탱천 일어선 민주시민들이었다. 동원된 인원보다는 삼삼오오 가족과 함께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이 몇 갑절 더 많은 것으로 보였다. ‘정의가 무너지고 나라가 이렇게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왔다’는 사람이 필자 주변 사람 대부분이었다. 광화문에서 시청을 거쳐 숭례문 근처까지 인파를 뚫고 소걸음으로 걸으며 살펴본 참여자들의 표정에는 한결같이 분노와 격정이 함께 섞여 있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렇게 많은 민주시민이 나라를 걱정하며 서울 도심을 가득 메운 모임은 박근혜 탄핵집회 이후 처음이다. ‘촛불정권’임을 자처하면서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약속하면서 취임한 문재인 정권에 저항하는 이번의 군중집회는 우리에게 커다란 좌절과 상실감을 안겨준다. 문재인 정권이 집권 3년도 안 된 시점에 독선과 폭정의 독재권력으로 낙인찍혀 다수 국민으로부터 배척당하는 이 비극은 바로 국가의 비극이요 우리 국민의 불행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쯤에서 국민의 소리에 귀를 열어 폭정을 멈추고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말한 대로 통합의 정치가 통치의 본질임을 다시 한번 각성하고 분열의 진영정치를 과감하게 떨쳐버려야 한다. 그래서 국민과의 약속대로 본연의 통합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진영정치의 타성과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때는 민주시민의 더 큰 저항으로 침몰하게 될 것이다.

범죄 혐의자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 놓고 그와 그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는 언행을 일삼는 대통령은 도대체 검찰 개혁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기는 한 건가. 검찰 개혁의 핵심은 조직의 개편이 아닌 기능의 독립이다. 검찰권 행사가 정치권력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검찰 개혁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국과 그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에 간섭하지 말고 조용히 그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진정한 검찰 개혁의 출발점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과 여당은 조국 지키기가 마치 검찰 개혁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그것은 김정은 지지가 곧 북핵 폐기라는 말처럼 황당한 논리다.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고 옥상옥인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는 검찰 개편도 검찰 개혁의 본질이 아니다.

대통령 가족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권력 주변 핵심 인사에 대한 감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 놓은 특별감찰관은 왜 임명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가. 취임 후 법률이 정한 대로 바로 특별감찰관을 임명했더라면 이번의 조국 사태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서초동 집회와 광화문 집회 참가 인원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범죄 피의자 ‘조국 구하기’를 외치는 서초동 집회는 진정한 민의이고 광화문 집회는 민란이라는 해괴한 논리는 북한식 표현대로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 일’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필자와 필자의 친구들은 민란에 참여한 범죄자다. 도대체 그 따위 궤변과 좌우 진영 간의 세 대결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서초동 집회가 주장하는 검찰 개혁이 지금 우리 나라 정치 현실에서 그렇게도 절실한 국정 현안인가. 범죄 피의자 조국을 살리자고 부르짖는 서초동 집회가 어떻게 검찰 개혁으로 둔갑할 수 있는가. 다중의 힘으로 검찰을 겁박해 범죄수사를 방해하는 것이야말로 검찰 개혁에 가장 역행하는 일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범죄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방해하려는 서초동 집회는 열 번이 열린다 해도, 그리고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한다 해도 구국충정의 광화문 집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두 집회를 비교하는 자체가 난센스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에 모인 사람 숫자보다는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 마음을 바로 읽어서 그들이 바라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의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정권도 산다.

10월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시민들이 ‘헌정유린 타도 및 위선자 법무부 장관 사퇴 촉구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10월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시민들이 ‘헌정유린 타도 및 위선자 법무부 장관 사퇴 촉구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10·3. 서울 도심과 대학로 등 우리나라 역사가 만들어지는 현장에서 필자는 우리 자유민주주의의 희망을 보았다. 그곳에 울려 퍼지는 정치인들의 강연 내용보다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거나 행진하면서 보여준 민주시민들의 결연한 표정과 진지한 자세에서 우리 자유민주주의가 아직은 살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의 비장한 구절을 함께 따라 부르며 눈시울을 붉히는 어느 시민의 모습에서 필자는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정치인들의 목소리는 그 절실한 감정에 비하면 그저 소음에 불과했다. 점점 암울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우리 정치 현실을 한탄하다가 윤동주의 서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면서 도심 광장에 모여든 민주시민의 소리 없는 함성 속에 우리 대한민국의 내일은 다시 밝게 빛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젠 문 대통령이 결단하고 정부와 여당이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시점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 당장 조국을 해임해서 두 달이 넘는 가치의 아노미 현상과 국정마비 사태를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의 독선적인 인사권 행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입법·행정·사법부를 장악하고 공영방송까지 정부 홍보매체로 만들었으니 내년 총선거만 이기면 원하는 모든 일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불행의 온상이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내년 총선거는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에 맞도록 제1야당과 합의하는 선거법으로 치러야 한다. 제1야당을 배제한 채 패스트트랙 선거법으로 총선거를 치르려는 시도는 신임과 책임을 본질로 하는 대의민주주의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헌적인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집권여당의 선거 쿠데타다. 쿠데타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국민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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