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있어야 조국 논쟁도 제대로 읽는다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3 12: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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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변곡점 쉽게 풀어낸 《생각의 싸움》

1995년 즈음 하이텔에는 문화담론 연구모임 ‘이다’라는 특이한 이름의 동호회가 탄생했다. 문학과지성사가 만드는 무크지의 온라인 성격을 띤 이 모임에는 당시 젊은이들이 모여 알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나누며 술을 마셨다.

PC통신이 인터넷이란 더 크고, 때로는 더 통속적이고, 더 음란한 바다로 나가면서 이 모임은 잊혀갔지만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이 모임의 시샵을 했던 김재인이란 이름은 가끔 소식이 들려왔다. 펠릭스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이나 가타리와 질 들뢰즈가 같이 쓴 《안티 오이디푸스》 등 접근도에서나 양에서나 벽돌 같은 철학책의 번역자로였다.

《생각의 싸움》 김재인 지음│동아시아 펴냄│408쪽│1만8000원 ⓒ 조창완 제공
《생각의 싸움》 김재인 지음│동아시아 펴냄│408쪽│1만8000원 ⓒ 조창완 제공

어려운 철학을 쉽고 말랑말랑하게 설명

이후에는 직접 쓴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2016년)나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2017년) 같은 조금은 쉬워지고 대중적인 책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생각의 싸움》이라는 책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인류의 진보를 이끈 15가지 철학의 멋진 장면들’이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을 들고 있는 그를 가을이 오는 남산 부근에서 만났다. 그간 《천 개의 고원》 등 난해한 철학서 번역에 주력하다가, 최근 인공지능에 관한 책이나 철학의 안내서 같은 비교적 말랑말랑한 작업에도 열심이다. 그 변화의 계기나 이유가 있었을까.

“철학은 새로 등장한 현재의 문제에 대한 응답이기도 한데, 목소리를 내보고 싶었다. 첨단 기술인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저술은 아직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보람이 있었다. 학생에서 타 분야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좋은 철학 입문서가 뭐가 있느냐는 물음을 받곤 했는데, 살펴보니 적당한 게 없어서, 고민 끝에 하나 써야겠다고 결심한 끝에 《생각의 싸움》을 출간했다.”

철학 입문서도 중요하지만 그는 앞서 소개한 문화담론 연구회 ‘이다’부터 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해석해 온 인문학자다. 또 저술에서도 고전 철학에서 현대 철학은 물론이고 인공지능까지 지평을 넓히고 있다. 장르 간 융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과정에서 그는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융합은 체질의 문제인 것 같다. 전부터 문학, 예술에서 과학, 기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이 많았는데, 타고난 호기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오늘날 ‘융합’이 대세가 됐고, 오랜 기간 지속했던 관심과 고민의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게 됐다. 본래는 쪼개진 것이 아닌 인간이나 자연을 쪼개서 접근하는 것이 근대의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본래의 모습을 봐야 하는 때가 됐다.”

이번 책은 탈레스부터 푸코까지 철학을 잘 풀어준다. 독자들이 어떤 점을 중심으로 읽어주길 바랄까.

“철학이 공허한 활동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철학은 항상 구체성에서 출발했고, 구체적인 문제의 답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각 철학자가 자신의 구체적 현실에서 풀려고 했던 문제가 무엇인지 주목하면 좋겠다.”

그의 글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철학이란 우리가 저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술’이라고 한 부분이다. 최근 조국 장관의 임명을 두고 사회가 양분되듯 사회는 갈등의 연속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조국 사태가 보여주는 양태에서 철학의 기능은 어떤지를 물었다.

 

“조국 사태, 철학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줘”

“조국 사태가 전개되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철학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비철학적인 접근이 만연했다. 즉 많은 사람이 자기 답을 정해 놓고 생각을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생각은 정해진 결론의 정당화 수단에 머무른다. 이건 저열함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고귀한 생각은 진실을 찾고 무게를 매긴다. 그런 점에서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이게 된다. 주인의 입장에 서야 마땅하다. 특히 선출되지 않은 권력기관인 검찰과 언론사는 얼마나 책임감 있게 행동했는지, 무엇을 위해 행동했는지 꼭 짚어야 한다.”

책은 앎, 있음, 삶의 챕터로 돼 있다. 이 단계는 진보도 의미하고 있을까. 또 그렇게 봤을 때 고대에 비해 당대의 인간이 나은 점은 있는 것일까.

“앎, 있음, 삶은 각각 인식론, 존재론, 윤리학에 대응한다. 따라서 진보의 단계이기보다 국면의 차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변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단순 비교는 어렵다. 고대에 비해 오늘날 나아진 게 있다면 기술의 발전을 들 수 있다. 각 시대와 지역마다 각각의 구체성이 있고, 그 지점을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다수는 기술의 후퇴를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기술을 전제하고 철학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번 책의 첫 장에서 철학의 시작을 탈레스에 두고, 끝을 니체에 두었다. 탈레스를 앞에 둔 것은 신이 아니라 ‘물’ 등 보통명사로 세계를 설명했고, 어떤 권위도 갖지 않아 신을 버린 사상가라는 점 때문이다. 반면에 니체는 왜 끝으로 봤을까?

“니체는 가장 먼저 모든 질문을 다 던졌고, 삶에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는 점을 밝혔다. 니체 이후로 니체보다 더 나아간 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의미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니체 이후에 철학은 이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되게 돼 있다.”

이번 책을 통해 지천명을 넘긴 철학자 김재인의 향후 활동도 관심이 간다.

“계획은 많은데, 가장 먼저는 내년 초에 《신뢰의 혁명, 블록체인의 철학》이라는 책을 내기로 했다. 외국의 모 출판사와는 영어로 들뢰즈에 관한 책을 내기로 했다. 들뢰즈를 통해 무엇을 말할지는 조금 더 고민 중이다. 그 밖에도 《생각의 싸움》에 다 담지 못한 미학, 정치철학, 과학기술철학을 비슷한 방식으로 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다. 니체와 들뢰즈와 관련한 단행본도 원고가 몇 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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