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탄핵, 불가능하다고만 볼 수 없는 이유
  • 이철재 미국변호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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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충성하던 자들마저 변심케 한 대통령의 반(反)국가적 행위
“트럼프 내치고 공화당 재건하자” 목소리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 사태를 촉발한 ‘휘슬블로어 문건(Whistle-blower Complaint)’이 드러난 지 약 2주일이 지났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한 관리가 작성했다는 이 문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권력을 이용해 우크라이나가 2020년 미국 대선에 개입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원은 그 일부를 공개했고, 침묵하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대통령 탄핵조사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관련 속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 내부자가 법무장관 윌리엄 바의 부적절한 언행을 폭로했다. 그가 비밀리에 유럽 정보기관 수장들을 만나 “2016년 러시아 대선 개입에 관한 수사 결과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자료를 모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피해갈 수 없었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대화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25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정적(政敵)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일가를 조사해 달라는 취지로 얘기했다. 당시 폼페이오 장관도 통화 자리에 배석해 있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하원의 소환장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함께 9월25일(현지시각) 뉴욕 인터컨티넨탈 바클레이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함께 9월25일(현지시각) 뉴욕 인터컨티넨탈 바클레이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연합뉴스

국무부 장관도 얽혀버린 탄핵사태

처음에 폼페이오 장관은 하원에서 진술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 경우 ‘국회모욕죄(Contempt of Congress)’가 적용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하원 경찰에게 체포돼 하원으로 끌려 나올 수도 있다. 감옥행 가능성도 있다. 결국 폼페이오 장관은 입장을 바꿔 10월5일 “법에 따른 의무를 모두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전 뉴욕시장)와 전 국무부 우크라이나 협상 특별대표 커트 볼커도 의회 소환장을 받았다. 줄리아니는 출석 요구를 받진 않았다. 다만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그가 주고받은 모든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 등을 제출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볼커 전 특별대표는 의회 증언석에 앉게 됐다. 휘슬블로어도 증언을 하겠다고 합의하고 출석 날짜를 조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점에서 왜 펠로시 하원의장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탄핵조사를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요구는 민주당 내에서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특히 진보 진영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등의 의원들은 트럼프가 트위터에 글만 올려도 탄핵을 부르짖었다. 

그 와중에 펠로시 하원의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당초 대통령 탄핵 여론은 지난 4월에도 불이 붙은 바 있다. 당시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스캔들을 추적해온 로버트 뮬러 특검의 448페이지짜리 수사보고서가 결정타였다. 하지만 펠로시 하원의장은 탄핵 움직임에 동조하지 않았다. 특검 보고서를 일일이 국민들에게 설명하면서 납득시킬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9월23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초선 의원 7명이 공동 기고문을 실었다.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진보 성향 지역구에서 당선된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과 달리, 이들은 주로 공화당에 표를 던지는 지역에서 어렵사리 당선된 민주당 의원들이다. 또 모두 의회에 입성하기 전 군인으로, 혹은 정보요원으로 국가에 충성하던 인물이었다. 이들은 그간 대통령 탄핵에 소극적이었다. 탄핵 절차가 시작되고 표심이 분열되면 자신들의 재선에 먹구름이 끼기 때문이다.

이젠 이들이 먼저 나서 탄핵 조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군인이나 정보요원으로서 그 누구보다 일선에 있었던 그들의 눈에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는 국가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펠로시 하원의장도 이 정도면 승산이 있다고 보고 결심했다.

미국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9월24일(현지시간) 미 의사당에서 하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에 관해 공식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9월24일(현지시간) 미 의사당에서 하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에 관해 공식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트럼프 시대, 불가능은 없다

앞으로 탄핵 조사가 진행되고 탄핵안이 만들어지면 하원에서 투표를 한다. 하원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으면 탄핵안이 채택돼 상원으로 간다. 상원의원 3분의 2가 탄핵안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대통령은 파면이다. 하지만 상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려면 민주당 의원 모두가 찬성해도 공화당 의원 20명의 표가 더 필요하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상원의원 중에는 미트 롬니만이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외에는 공화당의 최고참인 척 그래슬리 의원이 “휘슬블로어의 신변은 절대 보장돼야 한다”고 말한 게 전부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해 보이는 그 어떤 것도 이뤄질 수 있다는 가정에 익숙하다. 

얼마 전까지 하원의장이었던 공화당의 폴 라이언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금은 공화당 대변인을 자처하는 폭스뉴스에서 이사로 재직 중이다. 그가 막후에서 폭스뉴스 경영진을 상대로 “이 기회에 트럼프를 내치고 옛 공화당을 재건하자”고 설득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폭스뉴스가 트럼프 대통령을 버린다면, 골수 공화당 여론이 돌아서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이번 탄핵은 더 끝을 예상하기 힘들다.

탄핵조사가 시작되면서 온갖 기사와 소문이 무성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실에 근거한 보도와 그에 따른 여론 형성이 중요하다. 소문으로 인해 종국에는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거짓이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펠로시 하원의장의 말은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탄핵은 즐거운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진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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