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개혁 명분 달성한 조국,  사퇴로 정국 해법 찾아야”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4 10: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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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교수가 본 광장집회  “조국으로 멈춘 한국 경제, ‘골든타임’ 지나간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10월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 개혁 입법 과제의 국회 통과를 위해서라도 조 장관(조국 법무장관)이 지금 사퇴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글을 올렸다. 이날 박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 이유는 하루 전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조 장관의 사모펀드 투자는 자본시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장관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연장선상이었다. 박 교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정책위원장을 맡으며 그동안 진보 성향의 목소리를 내온 소장학자이기에 그의 글은 진보진영 내에 꽤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참여연대 출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함께 박 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다. 글에서 박 교수는 여권의 가장 아픈 곳인 ‘조국 사태’를 콕 집으며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결자해지’를 강조했다. 그의 글이 올라간 이후 보수언론은 ‘진보의 분열’이라며 여권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10월8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나라가 ‘조국 사태’로 두 달째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는 사이 경제 체질 개선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면서 “검찰 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나름의 조 장관 역할은 끝났다”고 강조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페이스북에서 조국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정국이 풀리려면 조 장관이 사퇴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제 조 장관 문제를 일단락 짓고 가야 한다. 적절한 시점에 조 장관이 명예롭게 퇴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주에 글을 올린 것도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서였다. 서초동 집회로 여론의 힘을 좀 받지 않았나. 검찰 개혁에 대한 여론이 확산됐고, 본인의 아이디어도 어느 정도 밝혔기에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특권 없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본인의 명예도 살고, 검찰 개혁의 동력도 불어넣는다.”

임명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건가.

“그런 의혹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조국 장관을 임명했기에 정치는 실종되고, 검찰이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국론은 분열되고 끝없는 공방으로 모든 이슈는 다 없어졌다. 굉장히 비생산적인 상황이다. 다행히 임명 강행으로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구체성이 높아졌다. 그것만으로도 조국 장관이 역할은 했고,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했던 명분은 섰다. 더 이상 끌면 명분마저 없어질 거다. 지금은 출구전략을 생각할 시점이다.”

여권은 전혀 출구전략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초기 인기가 많았던 이유가 뭔가. 경청하고 포용해서 그런 거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불통과 고집을 향해 가고 있다. 왜 이미지가 바뀌었는지 스스로 고민해 봐야 한다.”

조국 사태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지식인의 삐뚤어진 단면을 이야기한다.

“그런 면이 있다고 해도 일반화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의혹을 추측하고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면서 확신을 사실로 만든다. 그런 다음 반대편 주장은 가짜뉴스라고 폄하한다. 정상적인 대화가 안 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단순화시키고 일반화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큰 적인 것은 맞다. 한국 사회 내 가장 문제가 많은 집단은 지식인집단과 언론이다.”

페이스북이라는 사적인 공간에 의견을 냈는데, 고민되지 않았나.

“솔직히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 경제가 한가롭지 않다. 지금 빨리 경제구조 개혁이 없으면 앞으로 2~3년 있다가는 늦어져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 같다. 골든타임이다. 또 이게(조국 사태) 이렇게까지 국론을 나눌 만한 이슈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10월7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조국 장관을 둘러싼 집회가 국론 분열이 아니라고 말했다.

“최근 사회적 갈등에 있어 일차적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유체이탈 화법이 논란이 되는 이유도 곰곰이 따지고 보면, 대통령 스스로가 자신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여당은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레임덕이 온다고 본다.

“나랑 생각이 다르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오히려 인정을 안 해서 레임덕이 왔다. 대통령이 ‘일차적인 책임은 내가 지겠다. 바꿔보자’라고 말하면 국민들이 ‘그래, 당신이 책임져’라고 말해 바로 레임덕이 올까. 아니다. 되레 책임지지 않으려 하니까 유체이탈 화법이 나오는 것이다.”

검찰 수사가 과하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충분히 비판받을 만했다. 검찰이 과거에 한 행적들 때문에 그렇다. 상대(여권)가 그렇게 불신하고 있다면 의식하고 행동했어야 하는 건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조국 장관을 대체할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동의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들도 있지 않나. 지금 상황에서 검찰이 기득권 보호를 위해 후임 법무부 장관을 의도적으로 흠집 낼 수 있을까. 그러기 때문에 개혁적이면서 강단 있는 인물을 지금부터라도 찾아봐야 한다. 솔직히 전임 박상기 장관만 해도 청와대에서 더 힘을 실어줬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조국 장관만큼 밀어줬다면 못 했을까.”

김상조 정책실장이 청와대에 있는데도 재벌 개혁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내가 생각하는 재벌의 문제는 경제력 집중이다. 김상조 실장과 경제개혁연대는 코퍼레이트 거버넌스(Corporate Governance·기업지배구조)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러다 보니 사외이사제와 주주대표소송제 도입이 재벌 개혁의 핵심 과제가 됐다. 미국과 우리는 소유·지배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도입해도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 정책은 잘하고 있나.

“뭐 한 게 있나. 오히려 최근에는 친재벌 정책으로 가고 있다. 재벌 총수들이나 만나고…. 한국 경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인식이 굉장히 안일하다. 경제가 구조적으로 어려워진 게 10년 이상이 됐다. 물이 넘치지 않으면 과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데, 우리 경제가 구조적인 어려움에 처해 물이 넘치기 시작한 게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다.”

재벌 개혁론자인 장하성·김상조 실장이 전·현직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두 분은 재벌 개혁을 경제력 집중 문제로 보지 않는다. 소액주주 운동가에 불과하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김상조 실장을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하면서 첫 단추부터가 잘못 꿰었다. 그동안 공부하신 것을 보면 금융위원장 자리가 더 어울린다. 해법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건데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 강조한 게 정치·사법 개혁과 재벌 개혁, 노동 개혁이었다. 정치·사법 개혁은 어느 정도 하고 있는 반면, 재벌 개혁은 거의 시작도 안 했고, 노동 개혁은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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