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만큼 담뱃값 오르면 흡연율 줄까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0 10:00
  • 호수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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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가격 결정 메커니즘 구축해 인위적 개입 줄여야

흡연구역을 지나다 보면 다양한 형태의 담배가 관찰된다. 전통적인 궐련, 궐련형 전자담배, 최근에는 네모난 모양의 액상 전자담배까지 보인다. 정부의 지속적인 금연 캠페인과 담배 가격 인상 등 소비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흡연율은 쉽게 낮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담배가 많이 등장하며 흡연율이 더 올라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담배사업법’은 담배를, 연초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해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전통적 담배인 궐련에 더해 최근 전자담배가 빠르게 보급 중이다. 담뱃잎을 담은 궐련형 전용 스틱을 가열해 흡입하는 상품을 ‘궐련형 전자담배’라 부른다. 실제 담뱃잎을 사용하기 때문에 KT&G를 비롯한 BAT, 필립모리스 등 기존 담배회사들이 제조하고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2018년 초 전체 담배 판매량의 8.8%를 차지했는데 2019년 2분기에는 11.5%까지 증가했다.

니코틴이 들어 있는 액상을 이용해 흡연하는 경우도 있다. 충전 형태에 따라 폐쇄형과 충전형으로 구분된다. 2019년 5월말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는 ‘쥴’과 같은 폐쇄형 액상 전자담배의 경우 짧은 시간 내 전체 시장점유율 0.7%를 기록하며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정부의 금연 캠페인과 담배 가격 인상 등 소비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흡연율은 쉽게 낮아지지 않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정부의 금연 캠페인과 담배 가격 인상 등 소비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흡연율은 쉽게 낮아지지 않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논쟁 대상으로 대두된 담배와 세금

최근 새 담배 유형들이 등장하며 신종 담배들에 세금과 각종 부담금을 어떻게 부과하는 것이 적정한지 논란이다. 담배 가격은 다른 상품과 달리 전적으로 법률에 의해 정해진 각종 세금과 부담금에 의해 결정되는 독특한 가격 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담배 가격을 인상하면 더 많은 세수 확보를 할 수 있어 정부 당국이 무조건 선호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너무 높은 세금이 부과돼 흡연율이 낮아질 경우 세수 확보에 지장을 줄 수 있어 담배 가격은 항상 논란이 돼 왔다. 담배를 통해 거둬들이는 제세부담금은 2019년 상반기 5조원 규모에 이른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담배가 궐련 형태였기 때문에 제품 간 차등 적용 및 형평성 논란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전자담배로 통칭되는 다양한 담배들이 등장하면서 담배와 세금은 다시 논쟁의 대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담배에는 다양한 세금이 부과된다. 제일 일반적인 궐련의 경우 ‘지방세법’에 따라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가 부과되며 이에 더해 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등이 세금으로 징수된다. 또 각종 부담금이 추가되는데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른 국민건강증진부담금(국민건강증진법), 엽연초부담금(담배사업법), 폐기물부담금(자원재활용법) 등이 그것이다. 20개비 궐련의 경우 담배소비세 1077원, 지방교육세 443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841원, 개별소비세 594원, 폐기물부담금 24.2원 등을 합해 총 2914.4원(부가세 제외)이 담배 가격에 포함돼 있다.

전자담배는 유형별로 부담하는 제세부담금이 다르다. 아이코스와 같은 궐련형 전자담배의 경우 2017년 11월부터 궐련의 90% 수준인 2595.4원의 제세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니코틴 1mL당 흡연량을 고려했을 때 일반 담배 12.5개 수준으로 판단해 니코틴 1mL당 1799원의 제세부담금을 부과하고 있다. 전자담배는 궐련에 비해 제세부담금이 낮으며 이용의 편리함에 따라 판매가 증가하고 있어 정부는 연구용역 등을 통해 적절한 세율 조정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건강을 위해 지난 2005년(500원)과 2015년(2000원) 담배 가격을 인상했다. 하지만 담배 판매량은 기대와 달리 인상 직후에는 급격히 감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회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성인 남성 흡연율은 2014년 47.3%에서 담배 가격이 급등한 2015년 39.4%로 낮아졌다가 이후 다시 40%대를 회복하면서 담배 가격 인상에 따른 금연 효과가 단기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높아진 담배 가격은 경제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할수록 인상된 가격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한국의 경제 수준을 감안할 때 궐련 1갑당 1만3000원 정도 수준으로 인상해야 대폭적인 흡연율 감소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WHO가 2018년 수행한 비교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 41개국의 평균 담배 가격은 5.9달러로 조사됐으며, 한국의 담배 가격은 41개국 가운데 28위로 평가됐다. 정부로서는 담배 가격 인상을 검토할 명분이 있지만 급격한 인상에 따른 사회적 반발을 우려해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담배 1갑당 1만3000원이 돼야 흡연율의 대폭적인 감소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세계보건기구는 담배 1갑당 1만3000원이 돼야 흡연율의 대폭적인 감소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WTO “1만3000원 돼야 흡연율 크게 하락”

해외 몇몇 국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담배 가격이 물가와 연동해 자동적으로 상승하는 ‘물가연동 가격 결정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2010년부터 소매물가지수를 기준으로 매년 인상폭을 결정하고 있다. 2017년의 경우 인상폭을 ‘소매물가지수+2%’로 확대했다. 호주는 급여 상승과 연계한 가격 결정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매년 두 차례 평균 주급 상승분만큼 인상한다. 2007년 담배 1개비에 0.24757호주달러가 부과된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2018년 9월에는 0.80726호주달러(약 661원)가 부과됐다. 이에 따라 호주의 담배 가격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뉴질랜드도 매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분의 10배를 담배소비세율 인상분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2018년의 경우 전년도 물가지수가 1.98% 인상됨에 따라 담배에 부과되는 소비세율을 전년 대비 11.98% 인상했다.

이와 같은 물가연동 담배 가격 결정 체계는 흡연자로 하여금 계속 비슷한 수준의 경제적 부담을 지도록 함으로써 흡연율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또 급격한 인상에 따른 담배 판매 감소로 인한 세수의 급변동 등과 같은 재정 운용의 어려움을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19대 국회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담배소비세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담뱃값 인상에 대한 부담으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새 담배의 등장은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주지만 한편으로는 흡연율을 높이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각종 규제를 포함한 다양한 방식들이 지속적으로 도입됐지만 담배 가격이 흡연율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라는 것을 지난 두 차례의 담배 가격 인상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됐다. 담배 가격 결정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매번 뒤늦게 이뤄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로 인한 흡연율 상승은 계속 반복돼 왔다. 소모적 논란과 갈등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합리적인 가격 결정 메커니즘을 구축해 인위적인 개입 여지를 줄이는 것이 흡연율 감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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