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폐기물 유출’ 뉴스 보기 힘든 일본, 왜?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8 13:00
  • 호수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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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누출 알리는 경보 울려도 日 정부 “괜찮다” 반복…주민들 불안감 가중

지난 10월12일 제19호 태풍 하기비스가 일본 열도를 덮쳤다. NHK의 발표에 따르면 15일 기준 66명이 숨지고 15명이 실종되었으며 2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지난 15호 태풍 파사이의 피해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던 지바(千葉)도 다시 큰 피해를 입었고 각지에서 단수와 정전이 발생, 아직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곳이 많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이틀 동안 일본의 연 강수량 3분의 1을 쏟아부은 하기비스 탓에 47개 하천의 제방 66곳이 무너졌다. 강물이 제방을 넘어 침수가 발생한 하천도 200곳 이상이다. 주택 1만 채 이상이 침수되었고 붕괴된 주택도 적지 않다. 태풍은 13일 후쿠시마현 부근에서 빠져나갔기에 후쿠시마의 피해도 크다. 제방이 무너진 곳도 있고 제방이 제 역할을 못해 물이 넘친 곳도 4곳이나 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후쿠시마 다무라시에서 제염(除染) 작업으로 발생한 오염토가 유실된 것이다.

일본 작업자들이 ‘후쿠시마 방사능 폐기물’을 옮기고 있다. ⓒ AP 연합
일본 작업자들이 ‘후쿠시마 방사능 폐기물’을 옮기고 있다. ⓒ AP 연합

태풍 덮쳐 유출된 ‘방사능 폐기물 자루’

10월12일 밤, 다무라시에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발생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후 조치인 제염 작업으로 생긴 풀과 나무 등 폐기물과 오염토가 들어 있는 자루들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강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임시 하치장에 개당 수백kg에서 1톤 정도 되는 다양한 무게의 자루 2667개가 보관돼 있었다. 그중 일부가 태풍으로 인한 폭우에 의해 강으로 흘러들었다. 다무라시의 원자력재해대책실에 따르면 태풍에 대비해 미리 경계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넘어서는 기록적인 강수량에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다음 날인 13일에 담당자가 하류 약 500m까지 수색해 자루 6개를 회수했다. 다행히 폐기물이 자루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15일에는 4개를 추가로 발견해 회수 작업에 들어갔다. 또 다른 유출 폐기물 자루가 없는지 조사를 이어 나갈 계획이라는 게 다무라시의 입장이다. 후쿠시마현 내 또 다른 임시 하치장이 있는 이타테(飯)촌에서도 폐기물 자루 하나가 유출되었다.

2018년 3월까지 이루어진 귀환 곤란 지역을 제외한, 제염 작업에서 발생한 오염토는 이미 약 1400만㎥에 달한다. 제염 작업으로 발생한 오염토와 폐기물은 후쿠시마현 내의 10만5000개 임시 하치장에 보관된 후 후쿠시마 제1원전과 가까운 후타바(葉)와 오쿠마(大熊) 두 개 정(町)에 걸쳐 설치된 중간저장시설로 옮겨진다. 중간저장시설에서 장기 보관된 이후에는 최종처분시설로 다시 옮겨간다. 그러나 처리해야 할 오염토의 양은 ‘특정부흥재생 거점구역’(부흥 거점)의 정비가 시작되면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5월 보도에 따르면 후쿠시마현 내 부흥 거점의 제염으로만 폐기물을 포함한 오염토 등이 최대 약 200만㎥ 발생할 것이라고 일본 환경성은 예측하고 있다. 부흥 거점은 원전 사고에 따라 귀환이 곤란했던 지역 일부를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정비하는 곳이다. 200만㎥는 도쿄돔 1.6개분에 해당하는 양이다. 계속해 오염토·폐기물의 양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저장시설로의 반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고, 여전히 최종처분시설과 장소에 관해서는 논의 중이다.

막대한 양의 오염토를 중간저장시설로 옮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4년 전부터 임시 하치장에 보관했던 오염토·폐기물이 중간저장시설로 반입되기 시작했다. 일본 환경성은 올해 운송 목표를 대폭 상향 조정해 반입을 서두르고 있다. 올해 목표는 400만㎥로, 작년도 180만㎥의 약 2.2배다. 운송 목표량이 늘어난 만큼, 교통량도 증가하고 사고의 위험도 높아진다. 아직 폐기물 운반차량이 사고를 낸 적은 없지만 주변 주민들에게 있어 부쩍 늘어난 대형 덤프트럭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제대로 시설을 갖춘 중간저장시설로의 반입이 늦어질수록, 옥외에 설치된 경우가 많은 임시 하치장에서의 사고 위험은 늘어나서다. 이번 태풍에 따른 유실 또한 야외에 보관된 자루들이 강한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었기에 발생했다.

태풍에 따른 유실 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폐기물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주민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10월15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대신은 “회수된 용기에 파손은 없으며, 환경에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계속해서 현장과 각 임시 하치장의 상황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제염 작업으로 발생한 오염토를 장기 보관한 후 거의 전량을 재사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처분 비용을 줄여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부담을 줄여보겠다는 심산으로 읽힌다. 대량의 오염토를 중간저장시설에 모은 뒤 다시 후쿠시마현 밖의 최종저장소로 옮기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며, 후보지 선정조차 어렵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방사선량이 1kg당 8000Bq 이하로 떨어진 오염토는 재사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농지나 공원, 고속도로, 방파제 등의 건설에 사용할 계획으로, 이타테에서는 이미 재사용이 시작됐다.

10월15일 일본 나가노시가 태풍 하비기스로 피해를 입은 가운데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AP 연합
10월15일 일본 나가노시가 태풍 하비기스로 피해를 입은 가운데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AP 연합

침묵하는 정부·언론을 의심하는 주민들

그러나 여전히 안전성에 대해 주민들은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7일 후쿠시마현 미나미소마시에서는 도로 확장공사에 오염토를 재사용하기 위한 주민 설명회가 열렸다.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과학적 안전’을 강조하며 재사용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안전하다며 안심시키려 해도 유출 사고와 오염토 재사용 모두에 일본 국민은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더욱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후쿠시마에 관한 뉴스를 주요 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든 탓이다. 태풍이 통과하면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오염수 누출을 알리는 경보가 10차례 울렸다. 오염수 누수를 감시하는 기계에 빗물이 흘러들면서 기계가 고장을 일으켜 경보가 울렸다는 것이 도쿄전력의 설명으로, 실제로 오염수 누출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TV 뉴스를 비롯한 일본 언론은 경보에 관한 뉴스, 유출된 오염토에 관한 뉴스를 단신으로 처리하는 데 그쳤다.

이렇듯 언론이 ‘쉬쉬’하는 분위기가 보도가 통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세한 상황을 알려주지 않는 뉴스가 중요한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일본 국민이 의심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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