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살인자’ 惡플…스러지는 ‘설리’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9 10:00
  • 호수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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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악플, 유독 연예인에게 집중되는 이유

지난 10월14일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일 스케줄이 있었는데 연락이 닿지 않아 자택을 찾은 매니저가 숨진 설리를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그가 남긴 자필 노트를 발견해 분석 중이다.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했지만 결과는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나왔다.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안타까운 설리 사망 소식과 함께 이슈가 된 건 ‘악플’이다. 설리가 유독 악플 때문에 힘겨워했던 사실을 누구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14년 악플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연예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활동하던 걸그룹 에프엑스를 탈퇴했다. 그 후 연기자로 활동했다. 주연급은 아니었지만 영화 《해적》 《패션왕》 《리얼》에,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 《호텔 델루나》에 출연하며 차곡차곡 연기 경력을 쌓던 중이었다.

지난해 한 방송에 출연해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를 앓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던 설리는 최근 JTBC2 《악플의 밤》에서 메인 MC를 맡았다. 프로그램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악플들을 일일이 들여다보며 피하기보다는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힌다는 취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효과가 있었는가는 미지수다. 설리는 MC를 맡을 만큼 악플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악플의 공론화는 몰라도 의도했던 효과가 충분히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

설리가 악플 공격을 받기 시작한 건 과거 최자와의 열애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열애설을 부인했지만 악플러들은 거짓말을 한다며 분노했고, 열애를 인정하자 이제는 두 사람의 열애가 부적절하다는 악플이 이어졌다. 남녀 간의 사랑은 저마다의 선택일 수밖에 없지만 악플러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생각이나 취향과 다르다고 공격했다. 설리는 ‘노브라’ 이슈로 악플러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자신의 주체적인 생각이자 행동이었는데 악플러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입에도 담지 못할 공격을 일삼았다. 그리고 그 악플들은 결국 스물다섯 한 청춘을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몰아붙였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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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청춘을 극단까지 몰아붙여

놀라운 건 설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그 원인으로 ‘악플’이 지목되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악플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최자가 악플러들의 공격 대상이 됐다. 설리 관련 기사들에 최자를 비난하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최자의 SNS에도 악플이 달렸다. 최자가 SNS에 고기 사진을 올린 것에 대해 “누구(설리)는 죽음을 고민하며 눈물 흘릴 시간에, 남자들에게 온갖 성희롱에 시달리며 괴로워할 시간에 당신은 고기를 먹고 있었군요. 맛있었나요”라고 비난의 글이 달렸다.

최자를 비난하는 악플에는 이성적인 논리가 결여돼 있다. 설리의 사망이 안타까운 건 사실이고 그건 전 남자친구였던 최자에겐 더 큰 슬픔이었을 게다. 그런데 그에게 옮겨가는 악플을 보면 악플이라는 것이 어떤 근거나 이유보다는 어딘가에 풀어야 할 ‘감정의 배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악플들이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댓글 창을 들여다보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상황들을 수시로 목격한다. 기사와 전혀 상관없는 사안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 댓글 창에 붙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어딘가에서 증폭돼 버린 분노의 감정이 존재하는데, 댓글 창은 그 감정을 폭력적으로 풀어내는 공간이 돼 버렸다. 이건 연예인만이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주목받는 유명인들, 이를테면 방송 출연자들이나 정치인들을 모두 대상으로 한다. 실제 오프라인에서는 정치·경제적 문제 같은 것들에 대한 의견 개진을 할 수 있는 곳도 없고, 한다고 해도 그다지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걸 대중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풀어지지 않는 분노감과 답답함은 댓글이라는 아주 쉽게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특히 연예인에게 악플이 많은 건 그 감정 토로에 있어 손쉬운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들이라는 이유로, 공적 사안을 넘어 사적 취향의 문제까지 공격 대상이 되곤 한다. 악플이 연예인들에게 특히 집중되는 이유다.

설리의 사망 소식에 ‘악플’이라는 키워드가 이슈로 떠오른 건 다시금 우리 댓글 문화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물론 댓글이라는 대중들이 참여하는 ‘비판적 공간’은 인터넷이라는 쌍방향 소통의 장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댓글 창에 모든 게 허용돼 있어 비판이 아닌 원색적인 비난이 올라오고, 설득이 아니라 논리 없는 언어폭력이 무수히 쏟아지는 공간이 됐다는 건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돌이켜봐야 할 문제다.

어느 순간부터 ‘악플도 관심’이라는 식으로 포기하듯 무감하게 수용하는 상황이 돼 버렸지만, 직접 악플 공격을 받는 이들에게는 결코 쉽게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번 사안은 말해 준다. 물론 댓글을 법적인 잣대로 규제하는 건 어렵고 또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그건 ‘표현의 자유’ 자체를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댓글 문제는 대중들이나 인터넷 포털 등 관계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 바람직한 댓글 문화를 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

JTBC2 《악플의 밤》의 한 장면 ⓒ JTBC

‘설리’만의 문제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

악플의 지속적인 공격에 노출돼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홀로 버텨내고, 심지어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겪었던 설리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기획사들의 소속 아티스트 정신적·정서적 관리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이다. 설리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이런 대형 기획사는 늘 자체 관리 시스템이 있다고 해 왔다. 대형 기획사가 이 정도라면 중소형 기획사들은 어떨 것인가.

정신과 진료에 대한 편견은 치료에 대한 문턱을 높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급증하고 있는 스트레스에 지속 노출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정신과 치료나 상담은 훨씬 더 일상화돼야 한다. 이번 설리의 사망 소식은 그래서 설리만의 문제거나 특정 연예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특히 취약한 정신적 폭력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한가 못 한가를 말해 주는 일이다. 기획사들의 보다 철저한 정신적·정서적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그것은 정신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도 일상적으로 열려 있는 하나의 새로운 문화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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