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주주의와 선악(善惡)의 정치
  •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3 18:00
  • 호수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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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의 블랙홀이었던 조국 장관은 사퇴했다. 검찰 수사가 변수로 남은 가운데, 조국 전 장관의 퇴직 이후 행보를 두고도 이런저런 말이 오간다. 서초동-광화문 집회로 상징되는 상반된 정국 인식은 국회 입법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갈등을 야기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하면서도, 검찰 개혁과 언론의 성찰을 향후 과제로 주문했다. 장관 사퇴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심각한 반발 민심을 언론과 검찰에 의해 왜곡된 결과로 보는 것 같아 아쉬운 대목이다. 

사의를 표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10월14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를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사의를 표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10월14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를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민주주의는 국가 운영의 판단 권한을 시민의 뜻에 맡기고 있다. 과연 이게 최선이냐에 대해서는 역사적, 정치철학적으로 논란이 있어 왔다. 현명한 전문가가 이끌어가는 이른바 철인정치(哲人政治)론이 나오기도 했고, 민주주의의 중우정치화를 우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철인정치론에 공감한다 할지라도 어느 누가 철인이냐를 누가 판단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오늘날은 민주주의를 정치의 보편적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민의 뜻에 따른 정치 원리로서 민주주의, 쉽지가 않다. 대의제 체제에서 위임받은 권력자가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여지가 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의적 권력행사를 통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모색하고,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리더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권력 자체가 가지고 있는 반민주적인 속성은 늘 민주주의를 위험하게 만든다. 이번 조국 정국에서 집권여당은 검찰의 비민주성에 주목했고, 비판 야당은 대통령과 정권의 비민주성을 성토했다.

민주주의가 어려운 근원적인 이유는 시민의 뜻이 하나가 아니고 개인과 집단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도 일상적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를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나 독재가 된다. 결국 다양한 의견을 어떻게 수렴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할 것인가가 현실적인 민주주의의 관건이 된다.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공통의 원칙이 헌법이나 법률로 규정된다. 정치적 경쟁도 제도화시킨다.

의견이 다를 때 민주주의 원리로 우리는 쉽게 다수결을 생각한다. 다수결제만이 아니라, 합의제도 있고, 오히려 소수를 배려하는 순번제도 있고, 각 나라의 역사적·사회적 조건에 따라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은 다양하다. 다수결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다수결이 민주적 공존 원리가 될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이 있다. 다수의 뜻에 따라 결정하더라도 나머지 소수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다수가 소수를 관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나머지 소수도 언젠가는 다수가 되어 결정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영원히 소수에 머무르게 된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라 차별과 배제의 정치가 된다. 그래서 우리의 헌법에서도 다수결이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

부마 항쟁 40주년 기념사에서 권력기관 개혁을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양보하는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로 덧붙였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 바로 필요한 과제다. 정치를 선악으로 규정한다면, 상대는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척결의 대상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정치는 점차 선악 대결 양상이 강화되고 있다. 어느 작가는 ‘저들은 적폐이고 우리는 혁명’이라고 외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는 민주적 공존보다 선악 대결로 치환된다. 권력기관 개혁과 더불어 양보와 통합의 정치를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로 제기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기념사의 문장을 넘어 대통령이 그 실천에 앞장서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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