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자’, 비판 없는 미디어와 반성 없는 권력을 정조준하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9 14:00
  • 호수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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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문기자》가 사회에 던지는 질문

민간인 사찰, 댓글 조작, 특정 권력집단이 만들어낸 가짜뉴스…. 동시대 한국인에게는 이미 기시감마저 느껴지는 소재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신문기자》는 일본 작품으로는 흔치 않은 사회 비판 영화다. 익명의 제보를 받은 뒤 국가가 숨기고 있는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하는 기자 요시오카(심은경)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는, 현 아베 정권에서 벌어졌던 댓글 조작과 사학 비리 등을 연상하게 만드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역할로서의 저널리즘은 여전히 가능한가. 《신문기자》의 질문은 서늘하고 날카롭다.

영화 《신문기자》의 한 장면 ⓒ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신문기자》의 한 장면 ⓒ (주)팝엔터테인먼트

정의는 언제나 옳은 것일 수 있는가

《신문기자》는 도쿄신문 사회부 소속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의 동명 저서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그는 ‘언론이 더는 질문하지 않는’ 일본 사회에서 저널리즘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2017년, 모든 언론이 받아쓰기식 보도를 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 버린 정례회의에서 아베 정권 사학 스캔들과 일본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이토 시오리 사건에 대해 40여 분간 질문을 쏟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국가권력의 불합리에 맞서 저널리스트로서, 비판 정신을 잃지 않는 국민 개인으로서 싸우는 모치즈키의 모습은 영화 속 요시오카에 고스란히 겹친다. 극 중 모치즈키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거대 권력을 견제할 것을 촉구하는 TV 토론 속 패널로 출연한다. 제작진은 실제 그가 출연했던 토론 영상을 그대로 활용,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현실에 가깝게 맞닿아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여기에 스기하라(마쓰자카 도리)라는 인물이 추가됐다. 정부와 고위 관료를 보호하기 위한 여론 조작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내각정보실에서 묵묵히 일하는 인물이다. 사무실에는 그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숨긴 채 일하고 있다. 업무에 대한 회의감은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안심으로 덮는다. 어느 날 스기하라는 존경하던 선배의 갑작스러운 자살에 국가의 개입이 있음을 깨닫고, 요시오카와 함께 위험한 추적을 시작한다.

감독이 같은 비중으로 탄탄하게 쌓아올린 이 두 인물의 서사는 각각의 의미로 중요하다. 요시오카가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면, 스기하라는 권력의 논리와 개인의 윤리 사이의 딜레마에 대해 질문하는 인물이다. 명분은 때로 개인이 사랑하는 것들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새로 태어날 아이 앞에서 스기하라는 정의에 대해 고민한다. 개인의 불행을 담보할 수도 있는 정의란 모든 경우에 타당하기만 한가. 권력이 미디어를 장악하다시피 한 시대에 내부 고발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안전한 마무리 대신 도발적 질문을 던지는 결말 앞에서, 우리 모두는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스기하라는 촬영 전 취재 과정에서 감독이 더욱 확신을 갖게 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근무하는 경찰을 인터뷰하면서 ‘이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이 잘못인가?’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절반은 그렇고 절반은 아니다’라고 답하더라. 다들 자기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고, 지향하는 가치가 꼭 자신의 행동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내한한 감독 후지이 미치히토와 제작자 가와무라 미쓰노부는 일본의 현실을 향한 문제 제기로서 《신문기자》를 만들었음을 밝혔다. 최근 아베 정권에서 일어났던 정치적 사건들이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미디어가 이를 묵인하는 모습이 비정상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더는 신문을 읽지 않고 정치와 시사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 젊은 세대를 향한 안타까움 역시 이 영화를 제작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제작자인 가와무라가 30대 중반의 젊은 감독 후지이에게 끈질기게 연출을 당부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무겁고 어려운 정치 소재일수록 윗세대가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세대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선택은 옳았다. 지난 6월말 일본 143개 상영관에서 개봉한 《신문기자》는 개봉 한 달여 남짓한 시간 동안 흥행 수익 4억 엔을 돌파했다. 현재까지 누적 관객 수는 40만여 명을 돌파했다. 일본에서 사회 고발 드라마가 흔치 않은 시도임을 감안할 때, 꽤 기록적인 흥행이다.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퍼진 입소문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까지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일본 젊은이들은 정치를 혐오하거나 아예 관심이 없거나,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이 영화를 보고 ‘정부가 이렇다니 믿을 수 없다’는 반응도 많았다. 일상적으로 소비했던 뉴스에 대한 의심을 시작하고, 자기 나름의 관점을 갖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는 반응들도 있었다. 젊은 관객층의 반응이 가장 뿌듯하다.” 감독의 말이다.

암울한 시대 영화의 역할

제작진은 일본 내 ‘동조 압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직접적인 정치적 압박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로서 받는 간접적 압박을 뜻한다. 가와무라 프로듀서는 “지금 일본의 미디어는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도 될까?’ ‘큰일 나는 것 아닐까?’ 하는 무언의 압박에 사로잡혀 있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정치적 협박은 없었지만, TV에서는 영화를 전혀 소개해 주지 않았다. 라디오 광고도 거절당했다. 이것 역시 일종의 압력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캐스팅이 정치적 외압과 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권에 저항하는 저널리스트 역할에 부담을 느낀 일본 배우들 대신 한국 배우인 심은경이 캐스팅됐다는 이야기가 돌았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가와무라 프로듀서는 “지적인 분위기도 훌륭하고 주인공과 연령대도 같아 심은경에게 역할을 제안했으며, 다른 일본 배우들에게는 처음부터 전혀 제안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스기하라 역을 연기한 마쓰자카 도리는 일본 내 동조 압력에 조금 망설였지만, 영화의 취지를 믿고 용기를 낸 경우다.

《신문기자》는 비단 저널리즘 정신만을 강조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권력을 비판하는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미디어 분위기는 자유롭지 않지만, 영화는 다르다. 관객들이 직접 티켓을 사서 선택하는 콘텐츠이지 않나.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세상에 중요한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그것이 이 암울한 시대에 영화의 소중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제작진의 말이다.

(왼쪽부터)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영화 《네트워크》|영화 《스포트라이트》
(왼쪽부터)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영화 《네트워크》|영화 《스포트라이트》

언론의 역할과 딜레마 사이, 저널리즘 영화 걸작 3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은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에 앞장선 워싱턴포스트 신참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은 사건 배후인 백악관 실세 등을 파악하며 진실을 위한 분투를 이어간다. 이 영화가 신문 저널리즘의 정석 같은 영화라면, 《네트워크》(1976)는 방송 저널리즘의 정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방송산업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꼬집은 시드니 루멧 감독의 풍자 코미디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스포트라이트》(2015)는 보스턴 교회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파헤쳤던 보스턴글로브의 특별 취재팀 ‘스포트라이트’의 실화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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