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인스타에 밀린 ‘국산 SNS’ 흑역사
  • 차여경 시사저널e 기자 (chacha@sisajournal-e.com)
  • 승인 2019.10.24 08:00
  • 호수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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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변화‧글로벌 SNS 진출로 설 자리 잃어…프리챌‧버디버디‧네이버 폴라 등 역사 속으로

1980·90년대생은 국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함께 자랐다. 전자화폐 ‘도토리’를 구매해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꾸몄고, 메신저 버디버디로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호황은 잠시였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글로벌 SNS들이 국내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기 시작했다. 모바일 플랫폼에 더 적합한 해외 SNS들이 국내에서 점유율을 넓혔다. 사람들은 싸이월드 대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스마트폰에 깔았다. 그러는 사이 국산 SNS는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최근 불거진 싸이월드 사업 철수설로 국산 SNS의 흑역사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불거진 싸이월드 사업 철수설로 국산 SNS의 흑역사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 연합뉴스

신사업 뛰어들어도 적자인 싸이월드

90년대 말 등장한 싸이월드는 대표적인 국내 1세대 SNS다. 2001년 미니홈피라는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부터 싸이월드가 큰 주목을 받았다. 지상파의 개그 프로에서 ‘도토리’가 공공연하게 언급될 정도였다. 한 달 접속자만 2000만 을 넘어섰다. 2003년 싸이월드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 합병되며 PC용 메신저 네이트온과 연계돼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PC에서 스마트폰으로 플랫폼 시장이 변하면서 사용자 이탈이 시작됐다. 2014년 싸이월드는 SK커뮤니케이션즈와 결별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프리챌 창업자 전제완 대표가 싸이월드에 합류해 명가 재건을 노렸다. 전 대표는 2017년 삼성벤처투자로부터 5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는 SNS사업 외에도 가상화폐 ‘클링’ 발행, 뉴스큐레이션 ‘큐(QUE)’ 서비스를 실행하는 등 신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내리막길을 걷던 싸이월드는 최근 도메인 주소 만료로 홈페이지 접속이 끊기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싸이월드가 갑작스럽게 서비스를 폐쇄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싸이월드 측은 ‘서비스 종료가 아니다’는 입장을 밝히며 ‘www.cyworld.com’ 인터넷 도메인 주소 소유권을 1년 연장했다. 내년 11월12일까지는 싸이월드를 접속할 수 있게 됐지만 이용자들의 불안은 여전한 상황이다.

국산 SNS의 수난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싸이월드와 함께 등장한 1세대 SNS 프리챌과 아이러브스쿨 등도 한때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결국 실패한 유료화 정책 등으로 사용자 이탈을 막지 못했고 서비스를 종료했다. 2000년 1월 10대들을 강타했던 메신저 버디버디는 2012년 5월 문을 닫았다. 네이트온은 PC용 메신저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카카오톡 PC버전에 밀린 상태다.

카카오톡을 제외하고는 대형 IT(정보기술)기업들의 SNS도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네이버가 2015년 내놓은 관심사 기반 SNS 폴라는 올해 9월 서비스가 종료됐다. 다음이 2010년 내놓은 SNS메신저 마이피플은 카카오와 합병 후 사려졌다. 카카오의 모바일 블로그 ‘플레인’도 2017년 마침표를 찍었다. IT업계에서는 수익성이 좋지 않은 SNS 사업을 빠르게 정리하기 위한 행보라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산 SNS들의 몰락 원인이 글로벌 SNS 등장 외에도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사용자들은 국산 SNS들이 모바일 플랫폼을 주로 사용하는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가장 먼저 꼽았다. 인스타그램 사용자 20대 직장인 김선빈씨는 “국산 SNS들은 스마트폰으로 쓰기에 무거운 느낌이다. 가입 절차도 쉽지 않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는 가입도 쉽고 스마트폰 전용이라 편하다”며 “글로벌 SNS들은 게시물 등록, 댓글, 추천 등 직관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한편 국산 SNS들은 복잡한 인터페이스가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광고, 음란물 게시, 보이스피싱 등 무분별한 콘텐츠나 범죄가 난무한다는 점도 국산 SNS들의 단점으로 꼽힌다. IT업계 관계자는 “인스타그램은 영어로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맛집 등 가치 있는 정보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한글로 검색할 때는 광고성 정보가 많다”며 “국산 SNS들은 대부분 한글로 된 국내 정보를 제공한다. 무분별한 광고로 국내 정보의 가치가 낮게 느껴지기 때문에 국산 SNS까지 함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버디버디, 네이트온, 카카오스토리 등이 성매매나 보이스피싱의 주된 창구가 된다는 점도 사용자들의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며 “국산 SNS를 통해 10대나 20대 여성들에게 따로 만나자며 대화를 걸거나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 메시지가 범람하는 게 현실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사용자들을 막기 쉽지 않다. 사용자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높아진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페이스북 등 글로벌 SNS의 국내 진출로 국산 SNS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 PPA 연합
페이스북 등 글로벌 SNS의 국내 진출로 국산 SNS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 PPA 연합

“국산 SNS에만 적용되는 규제” 지적도

전문가들은 ‘네트워크 효과’ 덕에 글로벌 SNS가 국내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김도현 국민대 교수는 “싸이월드는 국내에서 많은 사용자 수와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SNS가 가진 네트워크 효과를 무시할 순 없다”며 “페이스북이 국내시장에 들어왔을 때 유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네트워크가 연결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용자 네트워크가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느냐가 주요 관건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어 “국내에서도 카카오톡이나 라인보다 페이스북메시지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페이스북메시지가 더 범용의 사용자들을 품을 수 있는 SNS이기 때문”이라며 “사용자 네트워크 크기에 따라 SNS 성장 여부도 결정된다. 네트워크 크기가 경쟁력이 된 시점에서 국산 로컬 SNS들이 글로벌 거대 플랫폼을 쉽게 이길 수 없다”고 내다봤다.

국내 SNS에만 깐깐하게 적용되는 규제 탓에 성장 속도가 더뎠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엄정한 컴퍼니비 대표는 “글로벌 SNS 같은 경우 예외규정 혜택을 받는다. 국산 SNS들은 사용자 수 10만 명이 넘으면 무조건 010 전화번호 인증을 해야 한다. 그러나 글로벌 SNS들은 이메일 인증 절차만 있으면 된다”며 “빠른 모바일 플랫폼 환경에 익숙한 10~20대들이 복잡한 가입 절차를 (국산 SNS의) 진입장벽으로 생각할 확률이 크다. 일종의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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