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사고·적자행진·임직원 감옥행...흔들리는 100년 은행 ‘거제 수협’
  • 부산경남취재본부 이상욱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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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건물 임대차 계약…거제수협 前조합장 1심 징역 2년
대출규정 무시 임의 감정…대규모 손실 초래
수산업계 "거제수협 경영 정상화는 요원"

1908년 7월10일 경남 거제 사등면 가조도에서 출범한 거제수협은 1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한다. 우리나라 수산인들이 조직한 단체 중 최초로 '조합'이란 명칭을 사용한 단체다. 하지만 최근 '국내 수협의 모체'라는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수십억원의 손실을 초래한 거제수협의 '상동 대출 사고' 등에 책임이 있는 임직원들에게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면서다. 법원은 대출 규정 등을 무시한 수협 임직원의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가 빚어낸 금융사고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4명 가운데 2명은 실형, 2명은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받았다.

이 금융사고는 거제수협이 2015년 125억원의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는 상태에서 발생했다. 이들은 건축 착공은 커녕 건축허가 신청조차 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건물을 대상으로 무려 58억원의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고, 그 중 8억원을 먼저 임대차보증금으로 지급하면서 수협에 손해를 끼쳤다. 또 이들은 대출 규정을 어기고 외부감정 없이 내부감정으로 42억원 상당의 대출을 해주면서 경영 악화를 자초했다.

경남 거제시 장승포동 거제수협 본점. 거제수협은 최근 몇 년간 발생한 임직원 금융사고로 적자가 이어지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이르렀다 ©연합뉴스
경남 거제시 장승포동 거제수협 본점. 거제수협은 최근 몇 년간 발생한 임직원 금융사고로 적자가 이어지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이르렀다 ©연합뉴스

거제수협 '상동 대출 사고'…임직원 모럴헤저드로 인한 금융사고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1부(재판장 이용균)는 10월10일 이들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배임) 선고공판을 열고 전 거제수협 조합장 김아무개(55)씨와 전 거제수협 지도상무인 박아무개(48)씨에게 각각 징역 2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또 배임 범죄에 가담한 전 거제수협 채권관리팀 과장 김아무개(50)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전 거제수협 지점장 윤아무개(46) 씨에게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씨와 채권관리팀 과장 김씨의 42억원 대출 배임행위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들이 2015년 11월 대출 규정을 무시한 채 내부감정으로 대출을 실행해 수협에 42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고 본 것이다. 거제수협은 5억원 이상 대출을 하는 경우 외부감정평가법인에 담보물 감정 평가를 의뢰해야 하는데, 이들은 내부감정으로 평가했다. 재판부는 이를 배임의 근거로 봤다. '감정토지'에 담보 제공 외 대지를 추가하고, '기타요인'을 상향하는 방법으로 감정평가액을 올린 점도 채권관리팀 과장 김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거제수협의 '담보물 가격조사 기준표'는 '대출금액이 5억원을 초과하는 나대지, 잡종지, 공장용지, 전, 답, 과수원, 목장용지'를 외부감정평가법인에 직접 의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박씨 등은 외부감정 대상을 보완하라는 감사지적에도 불구하고 "임대차보증금으로 회수하겠다"며 외부감정을 끝내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출심사위원장인 박씨는 외부감정 대출 대상이란 지적에 "3개월 후 채무자가 건물을 완공하면 임대차보증금으로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다"며 대출 승인을 주장한 것도 배임 대목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재판부는 거제수협이 신청한지 불과 이틀 만에 대출을 실행했다는 것에 대해 '이례적'이라고 했다. 이들이 대출신청→담보물 가격조사→대출심사위원회 승인→대출 실행 과정에서 상환 능력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또 전 조합장 김씨, 박씨, 윤씨가 8억원의 임대차보증금을 선 지급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 유죄로 판단했다. 이들이 수협 고정자산관리규정 등을 위반한 채 임대차계약 체결과 동시에 선급보증금을 지급해 수협에 8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고 본 것이다.

이들은 2015년 12월 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거제 상동 대출 부지에 짓는 건물에 거제수협 마트·금융지점이 입점하는 임대차 계약을 58억원에 체결했다. 하지만 이들은 고정자산관리규정에서 정한 임대차 실례가격조사서 등을 작성하지 않았다. 심지어 임차목적물에 대해 선순위 임차권 또는 전세권 등기를 설정하는 등 채권보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규정마저 지키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충분한 회수조치 없이 건축 착공조차 하지 않은 건물에 대해 8억원의 보증금을 먼저 지급했고, 이는 고스란히 수협의 손실로 연결됐다. 재판부는 이를 유죄 근거로 인정했다.

이날 재판부는 "이들이 수협에 손해를 끼친 금액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수협 조합원들이 여신자금 부족으로 인해 필요한 대출을 받지 못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그럼에도 이들이 배임의 고의가 없었다며 범행을 반성하지 않아 죄책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경남 거제시 상동동 일대 나대지. 거제수협 임직원들은 수협 규정을 어긴 채 이 나대지를 담보로 42억원 대출, 8억원 임대차보증금을 한 부동산업자에게 제공하면서 손실을 초래했다 ©시사저널 이상욱 기자
경남 거제시 상동동 일대 나대지. 거제수협 임직원들은 수협 규정을 어긴 채 이 나대지를 담보로 42억원을 대출, 손실을 초래했다 ©시사저널 이상욱 기자

잇단 금융사고로 연속 적자 발생…자본잠식 초래

거제수협의 '상동 대출 사고'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최근 수년간 거제수협의 금융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조합장 측근과 친인척 명의로 '땅 쪼개기' 100억 대출, 수협직매장 개설을 위한 부동산취득 업무처리 부적정 등이 대표적이다. 금융사고가 불거질 때마다 임직원들은 검찰 등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기 일쑤였다. 또 수협중앙회 감사에서 조합장 직무정지, 상임이사 2회 연속 기관경고, 직원 감봉 등 무더기 징계가 이어졌다.

때문에 거제수협의 실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2015년 125억원에 이어 2016년 21억원, 2017년 23억원, 2018년 69억원의 적자가 연속 발생하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이르렀다. 과거 거제수협은 전국에서 1등 수협으로 불릴 만큼 탄탄한 경영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거듭된 임직원들의 금융사고로 '부실우려조합'으로 지정되는 등 부실이 심화됐다.

10월21일 거제 장승포동 거제수협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조합을 탈퇴하려고 출자금 500만원을 청구했더니 170만원 밖에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 근데 그마저도 올해 결산이 끝난 후에 지급할 수 있다고 해서 탈퇴를 미뤘다"면서 "조합원의 선택으로 경영을 맡은 임원들이 이익은 커녕 손실만 끼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임원들은 법정에서 자리싸움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최근 제기된 거제수협 임원 해임결의효력무효소송을 두고 한 말이다. 지난 7월 거제수협 대의원임시총회가 수협 부실 운영 등을 이유로 일부 임원에 대한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한 임원은 시사저널과 통화하면서 "부실 경영의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해임됐다"며 "법적소송과 효력 정지 가처분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거제수협은 임원퇴출을 통한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와 관련, 경남 수산업계 한 인사는 "거제수협은 전 조합장 법정 구속과 함께 임원 해임 소송 등 내홍을 겪고 있다"며 "부실 경영으로 거제수협 존립기반마저 흔들리는데 이런 내부 분위기라면 경영 정상화는 최소 몇 년 이내에는 어려울 전망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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