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포기는 없다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31 13:00
  • 호수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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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해석 ‘제각각’…치밀한 준비 없이 부실하게 시작한 정책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이던 시절, 지금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흔히 말하는 측근 중 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 첫 조각에서부터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공정거래위원장이었고 지금은 청와대 정책실장이다. 김상조 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처음 만난 건 대통령 후보 시절이었다고 한다. 김상조 실장은 대통령과 아무런 개인적 인연도 없었지만 바로 그 첫 만남에서부터 두 사람의 뜻이 맞았다고 기억한다. 당시 김상조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에게 먼저 질문 하나를 던졌다. 김상조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한 이유를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답은 정권 후반에 들어가면서 관료집단에 포위돼 결국 개혁 의지를 관철시키지 못했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김상조 교수는 전적으로 동감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 등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 등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 대통령과 김상조 정책실장의 첫 만남

노무현 정부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 실패는 재벌과 언론, 관료들에 포위돼 이른바 위기론에 속았기 때문이다. 집권 후반기의 정책 기조 변경이야말로 결국 지지기반을 잃어버리게 만들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게 된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제 다시는 노무현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이것은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현 정권이 가지고 있는 결의고, 흔들리지 않는 의지다. 그래서 재벌과 언론, 관료들의 위기론에 다시는 속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은 세계적으로 족보가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사실 대통령은 이미 여러 번 같은 말을 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책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정책 기조를 바꿀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왔다. 취임 2년을 맞아 가진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최근에도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1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냥 해 보는 말이 아니다. 대통령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데 비해 따지고 보면 실제로 정부가 추진해 온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내용은 부실하다. 정부는 2017년 5월 집권 직후부터 소득주도성장을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으로 채택했다. 최저임금을 2년간 30%나 올렸고,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말고는 달리 이렇다 할 만한 게 없다. 소득주도성장을 하겠다고 한다면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소득자만이 아니라 자영업자 700만 명의 소득을 늘리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자영업자들을 위한 별도의 구조조정 대책이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 구축과 총수요 확대를 목표로 하는 재정 확대 계획과 그 장기적 기반 구축을 위한 조세정책까지 꼼꼼하게 마련하고 함께 추진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치밀한 준비작업이 있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사실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역시, 소득주도성장 추진 전략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여러 가지 가능한 방법 가운데 먼저 시행된 것은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이었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여기에는 물론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정책으로 실행하는 과정은 길고 험하다. 보통의 경우, 정책의 실현을 위해서는 힘든 협상을 통해 국회의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든 개혁을 하려면 먼저 여당이 야당과 연합의 정치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정부는 입법을 목표로 야당과의 협치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아예 국회 입법 절차가 필요한 개혁은 미뤄버렸다. 그러니 정부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그저 고용노동부의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최저임금 인상이 현 정부 개혁정책의 상징처럼 된 사연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사실 이렇듯 치밀한 준비도 없이 부실하게 시작한 정책은 최저임금 인상만이 아니었다.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취임 하루 뒤,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비정규직을 아예 없애는 것으로 해결하자는 단순한 발상은 그 뒤 오히려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지금은 정부와 여당의 많은 관계자들이 첫발을 잘못 내디뎠다며 내심 후회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내용이 부실했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이제 정부, 여당과 야당이 각각 다른 의미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돼 버렸다. 우리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며 포기해야 한다고 야당이 주장할 때,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의미하는 것은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거의 모든 경제정책들을 말한다. 반대로 긍정적인 효과가 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여당이 얘기할 때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친노동 중심의 경제정책 방향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시장 개입과 가격 통제, 재정 확대를 기조로 하는 정책 전반을 의미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소득주도성장 정책 때문에 우리 경제가 위기에 몰렸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일 것이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자영업자와 실직자들이 떠안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자리 감소와 양극화 심화, 투자 위축이 모두 소득주도성장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국 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정책의 실패도 있겠지만 결국 주력 산업의 경쟁력 후퇴와 글로벌 경기둔화, 생산인구 감소 등 복합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미·중 무역분쟁의 영향만 감안해도 성장률을 올해 0.4%포인트 떨어뜨렸을 거라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만 해도 긍정적인 효과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인상폭이 문제였을 뿐이다. 2년간 30%나 최저임금을 올려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소득주도성장은 정책 아니라 정치적 구호

그러나 정치적 이슈로 부상하고 난 후,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사라졌고 불가능한 일이 됐다. 이제 소득주도성장은 만악의 근원이거나 아니면 만병통치약이 돼 버렸다. 지금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구호이자 정권의 정체성이다.

문 대통령은 11월8일 임기 반환점을 돈다. 국내 경기는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 9월 정점을 찍은 이후 2년 동안 줄곧 하락세를 나타냈다. 경제성장률은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3.2%, 2018년 2.7%에 이어 계속 낮아질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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