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성범죄 동영상물과 후진국 증후군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6 17:00
  • 호수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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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법원은 아동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0월17일 한국 경찰과 미국 법무부가 공조해 수사한 다크웹 기반 아동 불법 촬영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의 수사 결과가 한국과 미국에서 발표되었다. 운영자가 한국인이고 적발되어 수사 대상이 된 사용자 300여 명 가운데 223명이 한국인이었다는 발표도 있었다. 이 소식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정작 이 끔찍한 범죄 사이트의 운영자인 손정우가 고작 1년6개월의 형을 살고 곧 출소하게 된다는 소식은 충격 2탄이었다.

그 범죄자가 ‘선처’를 받은 이유가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한국 사회를 설명해 주는 일종의 유비가 되고 있다. 피고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피고인의 나이가 어리고 피고인에게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으며 피고인이 일정 기간 구금돼 있었고 이 사건 범행을 시인하면서 반성하고 있”고, “회원들이 직접 업로드한 음란물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서라고 했다.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므로 엄중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면서도 겨우 1년6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비록 죄질은 무거우나 “반성하고” 있고, “초범”이며, “결혼을 해서 부양가족이 있”으므로.

이 ‘무거운 죄질’의 내용은, 굳이 입에 담기도 끔찍한 살인적 성범죄다. 아동포르노 또는 아동음란물이라고 우리 언론 상당수가 표기하지만, 실제로 그 영상을 만드는 일을 상상해 보면 그것이 어떻게 단순 음란물이 될 수 있을까. 아동학대 성범죄 동영상은 만드는 일도 보는 일도 유통하는 일도 다 범죄다. 아니 살인이다. 동영상에 등장한 아동들은 전 세계에서 23명이 구조되고 더 추적 중이라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이겠는가. 기소된 한국인 223명 중에는 동영상을 사이트에 올리기 위해 아직 들키지 않은 중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인이 운영한 아동학대 성범죄 동영상 접속화면
한국인이 운영한 아동학대 성범죄 동영상 접속화면

왜 손정우는 손모씨고, 고모씨는 고유정인가

한편 2심 재판의 양형 사유에 적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하나 있다. “어린 시절 정서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 성장 과정에서 충분한 보호와 양육을 받지 못한 점”이 정상참작의 사유라는 점이다. 학대의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은 마음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양형경감의 사유가 될 수 있을까. 인천에서 발생한 5세 아동 살해 사건에서도, 계부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결국 아이를 학대해서 죽였다. 아동학대를 막지는 않으면서 범죄의 정상참작은 하는 이유가 뭘까.

아청법을 비롯한 법의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예민하고 날카로운 기소와 재판이야말로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세우는 최후의 보루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우리의 법원은, “불쌍한 가해자”에게는 빙의하지만 그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는 안 보이는 모양이다.

이 모든 일들에서 나는 후진하는 사회의 징후를 본다. 최근 우리나라는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했다. OECD 가입국 지위에 걸맞은 국가가 되겠다는 다짐에 의한 결정이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미국 법무부는 이 범죄자들의 실명이 기재된 기소장을 공개했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수사가 미진할 것이 틀림없고 양형이 저러하리라는 것에 대한 일종의 야유는 아닐까 하는 자격지심마저 든다. 우리 언론들은 꼬박꼬박 손정우를 손모씨라고 쓴다. 고모씨는 고유정이라고 쓰고 얼굴사진을 찍으려고 혈안이 되었던 일들이 엊그제인데, 후진인가 전진인가. 그리고 웹하드 카르텔 양진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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