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정치가 제 역할 못해  국민들이 거리로”
  • 대담=감명국 취재1팀장·정리=송창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8 15:00
  • 호수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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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 30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  문희상 국회의장 ”다음 국회가 할 일은 1순위가 개헌”

시사저널과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던 10월22일, 서울 여의도 문희상 국회의장 집무실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이 있었던 데다, 문 의장이 바로 전날까지 7박9일간 세르비아·아제르바이잔·조지아 등을 방문하고 돌아온 탓에 그동안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의장실 전체가 바삐 돌아갔다. 그런 가운데서도 본지와의 특별대담을 위해 마주한 문 의장은 시사저널 창간 30주년을 축하하며 본지와의 여러 인연을 회상하는 대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20대 국회, 후반기엔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문 의장은 뼛속까지 의회주의자로 통한다. 지난 2013년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내에서 강경파들이 박근혜 정부에 맞서 장외투쟁을 요구했을 때 문 의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덮어놓고 국회 밖으로 나가는 건 도움이 안 된다. 국회 안에서 여당에 맞서 대화할 건 대화하고 싸울 건 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 비대위원장으로 당을 이끌다 퇴임한 직후의 문 의장이었기에 그 울림은 컸다. 이렇듯 문 의장에게 대화와 타협은 중요한 가치다. 여야 입장이 바뀐다고 해서 그의 이런 소신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난해 7월 취임사에서 문 의장은 “싸워도 국회에서 싸워야 한다”며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반기가 ‘청와대의 계절’이었다면 이제는 ‘국회의 계절’이 돼야 한다”면서 국회가 개혁·민생입법 제정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임기가 절반이 지난 지금, 문 의장의 소회는 어떨까. “20대 국회가 전반기엔 탄핵이라는 세계 민주주의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을 했지만, 후반기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문 의장은 “사법 개혁, 재벌 개혁과 함께 정치·국회 개혁이 중요한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까 국민들이 다시 광장으로 나오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문 의장은 “지금 국회는 민생은 뒷전인 채,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게임만 벌이고 있다”며 20대 국회를 가리켜 ‘동물의 세계’ ‘공멸의 국회’라고 성찰했다.

여야를 향한 문 의장의 질타가 이어질 즈음 그의 책상에 놓인 큼지막한 편지지가 취재진의 눈에 들어왔다. 임기 초 국회를 찾은 유치원생들이 쓴 ‘문희상 의장 할아버지께’라는 제목의 손편지다.

내용은 이렇다. ‘문희상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김○○ 드림’ ‘안녕하세요. 국회의장 할아버지 놀러오셔서(?) 반가워요. 앞으로 힘내세요. 김○○ 올림’ ‘안녕하세요. 국회의장 할아버지 만나서 반갑습니다. 건강하세요.’

여야 갈등으로 힘들고 지칠 때면 어린아이들이 쓴 이 편지를 보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는 문 의장은 “다음번 국회에는 보다 개혁적인 인물이 많이 들어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을 이뤄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서 이번 20대 국회를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의장 취임 이후 단 1%라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일해 왔습니다. 특수활동비 폐지는 그 하나만으로도 70년 국회 역사에 전례가 없는 혁신을 이뤄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국회법’을 통과시켜 1개월에 2회 이상 법안소위를 정례화·의무화시킨 것도 의의가 있다 할 수 있겠지요. 《맹자》 이루편에 ‘자모인모(自侮人侮)’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를 업신여긴 연후에 남도 나를 업신여긴다’는 뜻입니다. 우리 국회는 어떤가요. 국회 품격은 국회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결과물도 19대 때와 비교할 때 적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20대 국회 전반기는 정말 역사적인 일을 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탄핵 자체는 성공했지만, 비선실세가 국정을 농단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끝내 고치지 못했지요. 동물국회를 막으려고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는데, 이젠 식물국회가 됐으니. 한 정당에서 똬리를 틀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지금 여야는 서로가 망하길 기다리는 모습이에요. ‘올 오어 낫싱 게임’은 동물의 세계 그 자체지요. 20대 국회는 공멸의 국회가 되고 있습니다. 매우 안타까워요.”

말씀하신 것처럼 권력구조 개편 등 개헌 논의가 흐지부지 끝나고 있습니다. 

“국민은 촛불민심을 보여주며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렇기에 촛불민심에 따라 국회가 이뤄내야 할 개혁입법의 첫 번째는 ‘개헌’입니다. 솔직히 기회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냈던 개헌안도, 국회 개헌특위에서 논의된 개헌안도 있었지요. 권력구조 쟁점 외엔 대체로 합의가 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골든타임이 지나지 않았나 싶어요. 내년 총선을 고려하면 국회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역사의 변곡점을 가져온 대사건은 시스템의 대전환, 다시 말해 ‘개헌’으로 마무리됐습니다. 4·19혁명이 그러했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그랬지요. 그렇기에 개헌을 포기해선 안 됩니다. 다음 국회와 현 정권은 앞으로 2년간 임기를 같이 갑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대통령을 탄핵했나’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이 정권이 끝나기 전에 개헌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최근 정치권을 향한 국민들의 불신이 큽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국민 여론이 기성 정당 지지율에 육박하는 수준입니다. 의회 수장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20대 국회에서 다당제는 국민의 명령이었습니다. 협치가 숙명이었단 뜻이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야의 갈등과 대립의 골은 커져만 가는 게 현실입니다. 그사이 국론은 극단적으로 분열되고 있지요. 총선 시간표가 가까워질수록 갈등과 대립이 격화돼 이번 마지막 정기국회조차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지키자는 보수의 사람들이 30%, 고치자는 진보의 사람들이 30% 있고, 중간인 40% 사람들의 선택과 심판에 따라 체제가 바뀌는 건 정상적인 사회입니다. 탄핵 이후 극단의 대립이 심화되지 않았나요. 기득권에 취해 오만해지면 진보를 대변할 자격이 없고, 품격을 잃으면 보수를 대변할 자격이 없습니다. 각 정당이 저마다 진보, 보수의 가치를 대변하는 세력이 되기 위해선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광장의 외침’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은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해서입니다. 국민은 국회와 정치권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작 국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참담할 따름이지요. 국회가 갈등과 대립을 녹일 수 있는 용광로가 돼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이를 부추기고 국민을 거리로 내모는 행태에 대해 국회의장으로서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포기입니다. 서초동과 광화문의 집회로 거리에 나선 국민의 뜻은 충분히 전달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국회가 답해야죠.”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20대 국회는 개헌과 개혁입법이 책무인데, 이제 겨우 3개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렸습니다. 선거법의 경우 국민 의사와 의원 수의 비례성이 있어야 한다는 선거제 개혁의 제1원칙으로 겨우 합의한 것에 불과합니다. 분명, 서초동도 민심이고 광화문도 민심입니다. 한쪽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물러나야 한다고 해서 결국 물러나지 않았나요. 반면, 다른 쪽에서 요구하는 검찰 개혁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것은 협상의 시작을 뜻합니다. 패스트트랙에 숙려 기간을 둔 것은 그 안에 합의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현실적으로 국회의장으로선 여야가 합의할 때까지 인내하고 참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합의가 끝까지 안 됐을 땐 아무것도 안 할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때문에 이미 말씀드렸듯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장이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사용해 개혁입법이 상정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시사저널 창간 30주년을 맞아 10월22일 국회 의장실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친 문 의장은 취재진에게 유치원 어린이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보여주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창간 30주년을 맞아 10월22일 국회 의장실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친 문 의장은 취재진에게 유치원 어린이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보여주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며칠 전 조지아 순방 중 가진 기자간담회 때 하신 발언이 논란이 됐습니다.

“뭐 반응은 더 좋더구먼요(웃음). 당시 저는 그랬습니다. 차기 국회는 개혁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촛불의 민심을 제도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든 야든 관계없이 국회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3분의 2가 됐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럼 헌법을 고칠 수 있을 테니까요. 어느 당이든 좋아요. 야당이어도 상관없어요. 한 당이 안 되면 두 당이 합쳐서 3분의 2가 돼도 됩니다. 여기서 3분의 2는 헌법을 고칠 수 있는 개혁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헌법을 어떤 식으로 고치느냐. 저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운영되지 않고 권력을 분산하는 제도로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관계가 국교 수립 이후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일본은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의회 차원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최근의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또 의회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한·일 관계는 현재 강제징용 문제와 수출규제 문제,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교류협정) 문제 등이 얽혀 있어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적대시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11월4일 도쿄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국회의장회의 초청장이 접수돼 현재 참석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를 지향하라’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양국 관계의 해법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향해 한발짝도 못 나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미래를 핑계로 과거를 무조건 덮자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 아닐까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있었고,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있었습니다. 이 두 합의를 토대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뛰어넘는 제3의 선언을 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급변했습니다. 과거 의회 차원의 남북교류를 말씀하셨는데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국회의장 취임과 동시에 남북 국회회담을 추진했습니다. 통일특보직을 신설하고 북한에 친서를 발송했습니다. 북측 최고인민회의에서 공식적으로 회담을 개최할 용의가 있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또 지난해 10월 스위스 IPU(국제의원연맹) 총회에서 북측 리종혁 단장과 공식 면담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남북 국회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남북 국회회담이 성사돼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제도적으로 정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판문점 회담 이후, 이제 국회도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대화에 나설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국회는 정부를 지원하며, 교착상태의 돌파구로서 기능을 해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정치인 문희상’ ‘국회의장 문희상’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는지요.

“제 인생의 좌우명이자 정치적 신념은 무신불립(無信不立·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음), 화이부동(和而不同·서로 조화를 이루나 같아지지 않음), 선공후사(先公後私·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을 앞세움)입니다. 저는 늘 이 신념을 지키려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제가 정치를 마칠 때 국민들에게 따뜻한 의회주의자로 기억된다면 영광이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제 삶은 ‘덤’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치의 본령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즉 이상과 현실이 조화를 이루는 정치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래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정치입니다. 지금은 너무나 현실에만 목을 매고 미래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그런 정치가 아니라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회를 만드는 것은 저의 마지막 소명입니다. 남은 임기 동안 단 1%라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창간 30주년을 맞이하는 시사저널과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으신지요. 아울러 시사저널에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요.

“시사저널은 1989년 10월 창간부터 30년의 놀라운 발자취를 이뤄왔습니다. 창간 때부터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하고 오직 독자의 알 권리만을 위해 뛰어온 정통 시사주간지지요. 처음부터 아주 참신했습니다. 제가 ‘책방’ 출신이라 잘 알아요(문 의장은 정계 진출 전 숭문당이라는 서점을 운영했다.  앞 페이지 상자기사 참조). 편집 기법도 남달랐어요. 시대를 선도했지요. 그렇기에 예전부터 눈여겨봤습니다. 시사저널 출신들이 국회에 들어온 이도 여럿 되지요. 30주년이라는 시간이 적은 게 아니에요. 사람으로 치면 30살이면 성인 아니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10월22일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시정연설에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환담하며 물을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22일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시정연설에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환담하며 물을 마시고 있다. ⓒ 연합뉴스

문의장은 지장·덕장 면모 합친 '여의도 포청천' 

경기 의정부에서 태어난 문희상 국회의장은 서울 경복중·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행정고시에 합격했지만 민주화운동 이력으로 실제 임용되진 못했다. 문 의장이 군 제대 후 숭문당이라는 서점을 운영하게 된 것도 이런 이력 때문이다.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장사밖에 없었다. 당시 문 의장은 ‘문정흥(文正興)’이라는 아명(兒名)을 썼다.

숭문당을 열고 통일 전문가들과 교류를 하던 중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이후 문 의장은 1987년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초대 회장에 취임하며 정치 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해 DJ가 중심이 된 평화민주당에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1992년 치러진 14대 총선을 통해 원내에 들어왔다. 이후 15대를 건너뛰고 16대부터 20대까지 내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DJ 정부 때는 청와대 정무수석, 노무현 정부에선 첫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열린우리당 시절엔 당 의장을 역임했다.

국회의장에 취임하기 전, 문 의장은 ‘여의도 포청천’으로 통했다. ‘겉은 장비, 속은 조조’라는 세평은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치인 문희상의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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