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빛과 그림자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10.30 14:00
  • 호수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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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사업 성공에도 웃지 못하는 ‘금융계 이단아’

‘금융혁신의 아이콘’ ‘금융권의 스티브 잡스’ ‘금융계의 이단아’. 모두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에게 붙은 수식어다. 통념을 깨는 혁신적인 경영 스타일 때문에 붙은 별명들이다. 그가 금융권을 대표하는 ‘스타 경영인’이라는 데 이견을 제시하는 이는 많지 않다. 젊은 감성의 소유자인 정 부회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그러다 보니 젊은 층을 중심으로 팬덤도 형성돼 있다. 2012년 정 부회장이 공동 저자로 출간한 책 《프라이드, 현대카드가 일하는 방식 50》이 단기간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도 그의 영향력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그러나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게 마련이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을 수밖에 없다. 정 부회장도 이런 통설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를 이끄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 시사저널 박은숙·뉴스1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를 이끄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 시사저널 박은숙·뉴스1

중소 적합업종 만료되자 중고차 시장 진출

정 부회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다. 그가 26살이던 1985년 정 회장의 차녀인 정명이 현대카드 부문장과 백년가약을 맺으며 현대가(家)의 일원이 됐다. 사위 경영인으로 경영수업이 시작된 건 1987년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하면서다. 이후 현대모비스의 전신인 현대정공과 기아자동차 등을 거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 부회장은 ‘남자판 신데렐라’ 정도로 여겨졌다. 그런 정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건 2003년 현대카드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당시 업계에서 현대카드의 위치는 ‘바닥’이었다. 현대차 직원들이나 사용하는 카드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2003년 당시 적자가 2조원에 달했다. 정 부회장이 온 뒤로 현대카드는 달라졌다. 광고와 서비스 업무 전반에 대대적인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것이 카드 디자인에만 1억원을 투자한 ‘현대카드M’였다. 현대카드M은 출시 1년 만에 100만 회원을 모았다. 또 슈퍼콘서트 등 문화 마케팅을 도입해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렸다. 현재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등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 전체를 이끄는 스타 경영인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금융업과는 거리가 있는 중고차 매매 사업에서도 정 부회장의 능력은 어김없이 발휘됐다. 현대캐피탈이 운영하는 온라인 중고차 플랫폼 ‘플카’가 그런 경우다. 지난해 말 자동차 관리용 애플리케이션으로 론칭한 플카는 현재 중고차 거래 플랫폼으로 운영되고 있다. 플카의 성장세는 괄목할 정도였다. 불과 1년여 만에  등록된 중고차 매물 수 기준으로 업계 1위를 노릴 정도로 성장했고, 자산 기준으로는 이미 중고차 시장 1위(1조5913억원)에 올랐다. 현대·기아차가 렌털이나 리스용으로 생산한 차량을 플카에 등록하는 등 그룹 차원의 지원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성과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플카의 급성장은 논란을 낳았다. 현대캐피탈이 중고차 매매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중고차 매매 시장은 전체의 95%가 소상공인들로 이뤄져 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고차 매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캐피탈의 중고차 매매 시장 진출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된 올해 2월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소상공인들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사라지자마자 시장에 발을 들인 것이다. SK그룹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의식해 업계 1위이던 SK엔카를 매각한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였다.

그럼에도 현대캐피탈이 중고차 매매 시장에 발을 들인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연간 규모만 25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다. 특히 국내 신차 판매는 2016년 이후 감소세인 반면, 중고차 판매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거래 건수만 놓고 봐도 지난해 중고차 거래는 신차의 3배에 육박했다. 신차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차에는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인 셈이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중고차 매매 업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대캐피탈이 다져놓은 반석 위에서 현대·기아차가 중고차 매매업에 나설 경우 경쟁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업계를 대표하는 전국·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동반성장위원회에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채택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다. 또 지난 10월8일에는 국회에서 연석회의를 열고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은 아랑곳 않고 중고차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2017년 해촉 당일 현대라이프생명 설계사들이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불공정, 갑질 행위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 뉴시스
2017년 해촉 당일 현대라이프생명 설계사들이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불공정, 갑질 행위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 뉴시스

현대카드 성공의 축 문화사업도 갑질로 얼룩

정 부회장이 현대카드를 성공으로 이끄는 데 한 축을 책임진 문화사업에도 그림자가 있다. 음반소매업 진출을 놓고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현대카드가 문화지원사업의 일환으로 2016년 개점한 ‘바이닐앤플라스틱(Vinyl & Plastic)’이 문제가 됐다. 바이닐앤플라스틱은 ‘음악체험형 공간’을 콘셉트로 출범했지만, 실상은 LP음반 4000여 종과 CD음반 8000여 종을 갖춘 대규모 음반 매장으로 운영됐기 때문이다. 바이닐앤플라스틱은 LP음반에 애정이 깊은 정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사업으로 알려졌다.

당장 영세 LP음반 상인들이 반발했다. 연간 시장 규모 100억원이 안 되는 작은 시장에 막대한 자본을 갖춘 대기업이 진입하면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음반 소매시장이 고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실제 바이닐앤플라스틱이 중고 LP음반까지 취급하고 현대카드 결제 시 20% 할인 등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은 소상공인들의 더 큰 우려를 낳았다. 반발이 계속되자 현대카드는 상생안을 내놨다. 여기엔 회원 할인 연간 120일 제한, 중고 음반 판매·수입 금지, 온·오프라인 추가 출점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논란은 지난해 재점화됐다. 바이닐앤플라스틱이 상생안의 핵심이던 할인 제한 약속을 어기고 영업을 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전국음반소매상연합회는 현대카드에 극렬히 항의했고, 여기에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현대카드는 뭇매를 맞았다. 이와 관련해 현대카드 측은 “바이닐앤플라스틱이 업계에 미친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전국음반소매상연합회의 견해는 다르다. 바이닐앤플라스틱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기존 음반 매장의 수익이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바이닐앤플라스틱을 상대로 한 저항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이 스타 경영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사업에서 성공한 건 아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는 현대라이프생명이다. 현대차그룹은 2012년 녹십자생명을 인수하며 보험업에 뛰어들었다. 간판을 현대라이프생명(현 푸본현대생명)으로 바꿔 달고 실적 부진 해소를 위한 작업을 벌였다. 작업은 현대라이프생명 이사회 의장을 맡은 정 부회장이 진두지휘했다. 정 부회장은 ‘정태영식 경영문화’를 보험에도 적용해 성공신화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정 부회장은 현대라이프생명에도 차별화된 상품과 마케팅 등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에서의 성공 공식을 적용했다.

그러나 보험업에선 정태영식 경영이 빛을 보지 못했다. 상품 차별화와 질적 향상에 치중해 영업활동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계속된 적자를 겪어오던 현대라이프생명은 2017년 희망퇴직과 지점 축소, 법인대리점 채널판매 제휴 중단 등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78개 지점 전체를 폐쇄하고 2000여 명에 달하던 전속 설계사 대부분을 일방적으로 해촉했다. 설계사 노조는 여의도 현대라이프생명 본사 앞에서 1년이 넘도록 천막 농성을 벌였다.

 

해촉 설계사 미지급 수수료로 실적 개선

경영난에 처한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벌인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경영 판단은 아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설계사에게 지급해야 할 잔여수당을 흑자전환에 활용했다는 데 있다. 설계사들은 계약 성사 시 수수료를 36개월 동안 나눠 지급받는다. 별도의 기본급이 없는 설계사들에게는 이 수수료가 월급인 셈이다. 그러나 현대라이프생명은 설계사들을 내보내면서 잔여 수수료를 회사에 넘기도록 했다. 마땅히 설계사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기업 정상화에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현대라이프생명은 지난해 1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설계사 노조가 정 부회장 등 경영진의 경영 실패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렸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련의 과정에서 정 부회장은 설계사 측에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평소 소통에 적극적이던 행보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현대라이프생명 측도 “정 부회장은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정 부회장을 보호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9월 설계사들의 복직 등 요구가 받아들여지며 투쟁은 372일 만에 마무리됐다.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현대라이프생명의 새 주인이 된 대만 푸본생명이었다. 현재 푸본현대생명으로 사명을 변경한 현대라이프생명은 매각 직후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올해 상반기에도 좋은 실적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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