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속인 애인, 처벌할 수 없을까
  • 남기엽 변호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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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엽 변호사의 뜻밖의 유죄, 상식 밖의 무죄] 18화

 

“대화가 잘 통하고, 착한 분이면 돼요.”

소개팅을 해달라는 후배의 부탁에 무엇을 보느냐 물으면 저런 답이 온다. 난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저 말을 믿지 않는다. ‘대화’, ‘착한 분’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면’을 믿지 않는다. 동물적 호감만으로는 충분조건이 되지 않기에 연애는 인간의 조건까지 가늠하게 한다.

그렇게 갖추어진 조건은 거래된다. 남녀 차이는 있지만 학력, 직업, 집안, 경제력, 외모 등이 모여 군집을 형성하고 이미지를 만든다. 좋은 이미지일수록 시장에선 매력으로 포장되고 높은 값을 받게 된다.

쉽게 말했지만 각 요소 하나는 사실 성취하는데 대단한 운 또는 노력이 든다. 키를 10cm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력 있는 얼굴과 몸을 갖기 위해서는 피부 관리, 운동도 해야 하고 잘 타고나야 한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속인다. 생각보다 많이 속인다. 책임 없는 관계일수록 사기는 횡행한다. 데이트 어플리케이션, 클럽, 감성주점 등등에서 만난 남성(혹은 여성)이 다니던 학교 또는 직장이 거짓이었다는 하소연 글은 흔하다.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상담했던 앳된 20대 여성이 이야기이다. 그가 이용했던 국내 소개팅 어플리케이션에는 다양한 남성이 있었다. 그 중 명문대를 졸업한 전문직 남성과 교제했다. 외모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적이고 배려하는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잠자리를 요구하는 남성에게 여성은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마음을 열게 됐다고 했다.

그런데 모든 게 거짓이었다. 명문대를 나왔다는 남성의 이메일 주소를 검색하니 3년제 대학교 볼펜조립학과 카페장이었다. 그마저도 편입하였음을, 한라산대학 바지락채취과 홈페이지를 보고 알았다. 굴지의 통신사 정규직인줄 알았는데 실은 통신사 대리점 아르바이트였다.

사실을 추궁하자 남자는 연락을 끊었다. 여성은 자신의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법적 책임을 묻고 싶다고 했다. 가능할까.

처벌할 수 없다. 이건 법원의 판단 영역이 아니다. 처벌할 근거가 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힘을 써서 간음하면 강간이 된다. 같은 직장에서 자신의 지위, 권한을 이용하여 약자인 상대방을 강간하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 된다.

위계(僞計)는 위계(位階)질서의 위계가 아니라 사술, 즉 거짓말이다. 성관계에 이르기까지는 여러 변수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상대방에 대한 신뢰이다. 그것을 위계로 보충하여 성관계를 하는 자는 분명 좋게 볼 수 없다. 더군다나 결혼을 미끼로 성관계를 하고 모른 척하는 자들은 더욱 저열하다.

하지만 이를 처벌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독일은 사기간음죄(형법 제179조

-Beischlafserschleichung)를 두었지만 1960년대에 폐지했고 일본, 프랑스에도 처벌규정은 없다. 미국도 대부분의 주에 처벌규정이 없으며 일부 주에 있으나 사문화됐다. 쿠바, 터키에는 혼인빙자간음죄가 있는데 명예살인도 있는 국가를 상기하면 쉽게 참고할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시 사기간음 관련 입법을 한 사실은 없다. 있다면 혼인빙자간음죄 정도인데 이도 얼마 전 폐지됐다. 성인이라면, 성적자기결정권을 자기 책임 아래 스스로 행사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에서다.

데이트 어플에서의 조건은 심층적인 해석도, 깊은 본질에 대한 탐구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보고 잘생겼다, 예쁘다, 똑똑하겠다, 능력 있겠다 따위의 단어로 요약된다. 그러면서 부단하게 사회가 생성한 이미지를 좇는다. 우리는 사회가 원하는 이미지가 되라는 강압에 저항하면서도 그 원하는 이미지를 갈구한다. 그 과정에서 이를 악용하는 이들과, 이용당하는 이들, 그들 사이의 긴장 속에서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일은 이미지 사회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까 사람을 알아가는 데는 꽤 많은 품이 든다. 왜냐하면 저런 저열한 거짓말에 설령 속았고, 그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어도 적어도 국가는 형사처벌로 응징하여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증하여 민사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뿐이다.

애인의 학벌 사기, 죄가 되지 않는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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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1: 본문에 나온 대학교 및 전공은 실재하지 않는다.

사족2: 신분을 속여 ‘돈’을 요구했다면 ‘사기’가 되며 이 경우 당연히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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