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한 시대를 불태우고 사라져가는 ‘연탄’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4 08:00
  • 호수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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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2020년까지 화석연료 보조금 모두 폐지키로

찬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겨울을 준비한다. 월동 준비라는 조금은 촌스러운 표현에 반드시 포함돼야 했던 것은 까만 연탄이었다.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구절로 시작한다. 1994년 등장한 이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뭉클하게 다가왔다. 뜨겁게 타오르다 식어 하얗게 변한 연탄재들이 담벼락에 수북이 쌓여 있는 풍경은 누구에게나 익숙했기에 시의 저 구절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 연탄을 어느 순간부터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대부분의 난방이 가스나 석유로 전환되면서 연탄은 난방 연료의 지위를 내줬고 이제는 온실, 일부 식당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희귀종이 됐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탄을 사용하고 있을까? 산업통상자원부는 10월22일 ‘연탄쿠폰 배부’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연탄을 사용하는 저소득가구의 난방비 절감을 위해 지급하는 쿠폰으로 가구당 40만6000원을 지급하며, 6만 가구가 혜택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연탄을 난방 연료로 사용하는 가구가 아직 전국적으로 6만 가구가 있다는 얘기다. 2014년 7만9000가구에 지원했던 것과 비교하면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86년 2425만 톤을 기록했던 연탄 소비량은 2015년 147만 톤, 2016년 126만 톤으로 감소했으며, 2017년에는 109만 톤까지 감소했다. 무연탄 1톤으로 제조할 수 있는 연탄은 약 278장이며, 건조했을 때 기준으로 연탄 1장의 무게는 약 3.3kg이다. 연탄 1장은 약 1만6200㎉의 열량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등유 1.8리터와 유사하다. 가정의 연탄 사용량은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화훼 및 축산농가의 난방 연료로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연탄을 난방 연료로 사용하는 가구는 아직 전국적으로 6만 가구에 달한다. 정부가 화석연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예정이라 연탄 이용은 점점 줄어들 전망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6만 가구가 여전히 사용 중인 연탄

연탄의 원래 명칭은 구멍탄이었다. 연탄을 상징하는 구멍은 공기의 유통을 원활하게 해서 오랫동안 일정한 온도로 탈 수 있도록 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구멍의 개수에 따라 9공탄, 19공탄 등으로 불렸다. 연탄 구멍은 1970년대까지는 19개였는데 더 강한 화력을 요구하는 수요가 늘면서 현재는 22개 또는 25개다. 지역별로 다른 구멍의 개수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탄의 품질과 관련이 있다.

연탄의 시작은 일본이었다. 19세기 말 규슈 지방에서 석탄에 구멍을 내어 목탄 대신 사용한 것이 연탄의 효시로 알려진다. 20세기 초반 수동식 연탄 제조기가 발명되면서 본격적으로 연탄이 등장했다. 한국에는 1920년대 후반 일본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구공탄을 직접 만들어 일본인 가정에 판매했다. 해방 이후 1947년 대성산업이 연탄 제조업을 시작했으나 사용 가구는 미미했다.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연탄은 한국전쟁 와중에 널리 퍼졌다. 부산에 몰려든 피난민들 가운데 누군가가 석탄과 물을 섞어 연탄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수타식 연탄이 확산됐다.

1956년 태백선 등 철도가 개통되면서 석탄 생산량이 급증했다. 정부는 생산된 석탄을 공공 수요를 충당하는 데 우선 사용하고 남는 석탄을 가정용으로 보급한다는 방침을 수립하고 아궁이 개조 등을 통해 연탄을 보급했다. 이후 1970년대 산림녹화 정책이 강력 시행되면서 농촌지역까지 연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온수보일러가 개발되면서 연탄 사용량은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연탄의 안정적인 공급과 비축은 겨울철 정부의 핵심과제였다. 엄청난 연탄 사용에 따라 쏟아져 나오던 연탄재는 당시 한국 생활폐기물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으며, 이런 연탄재들은 택지조성을 위한 매립 용도로 활용됐다. 잠실아파트 단지를 비롯한 서울의 많은 택지들은 흙이 아닌 연탄재로 메워진 곳에 세워졌다. 이 시기에 건설된 5층 이하 아파트들은 거의 대부분 연탄보일러를 사용했으며, 계단실에는 작은 연탄창고가 있었다. 연탄으로 메워진 땅에 연탄을 때며 살아가는 것이 서울의 1970년대 모습이었다.

 

1980년대부터 저문 ‘연탄의 전성시대’

연탄의 전성시대는 198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준비하던 정부로서는 대기질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연탄 대신 석유나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도록 했다. 또 1980년대 후반 시작된 1기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급속도로 보급된 중·고층 아파트들로 인해 연탄 사용량은 급격히 감소했다. 2000년대 중반 고유가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연탄 수요가 증가하면서 110만톤 수준에서 230만톤까지 연탄 수요량이 급증하기도 했으나 이후 다시 감소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제 연탄은 과거를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빨간 불꽃의 연탄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환경정책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악몽과도 같다. 무연탄을 원료로 만들어진 연탄은 저렴하지만 연소 과정에서 많은 대기오염 물질과 온실가스를 만들어낸다. 대량의 연탄재들은 한정된 매립지 용량을 빠르게 소모한다. 빨리 퇴출돼야 하지만 서민의 연료라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정부에서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1989년부터 서민생활 안정을 이유로 석탄·연탄의 최고 판매가격을 생산원가보다 낮게 고시하고 그 차액을 재정으로 생산자에게 보조해 왔다.

그러나 2020년 이후부터는 이러한 보조금 지급마저 중단될 예정이다. 정부는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저탄소 녹색성장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20년까지 수요를 왜곡하는 화석연료 보조금을 모두 폐지하기로 했는데 그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는 연탄 쿠폰을 통해 일반 소비자들에게 비용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수요 감소로 인해 연탄공장들이 폐업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연탄을 이용하는 것은 점점 힘들어질 운명이다.

연말이 되면 많은 기업과 단체에서 봉사활동에 나선다. 봉사활동들 가운데 상당수는 연탄 배달이다. 행사를 위해 새로 맞춰 입은 복장과 걸맞지 않은 연탄은 오히려 그 부조화로 인해 더 눈에 도드라지는 역할을 한다. 한 번도 연탄을 구경하지 못했을 젊은 직원들이 연탄을 나르는 모습은 어색하기만 하다. 빈곤층에게 진정 도움을 주고 싶다면 연탄을 날라주는 것이 아니라 가스 등 대체 난방 수단을 제공하고, 단열을 해 줘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 주고 나면 그 지역을 다시 찾을 필요가 없어지고, 적당한 다른 곳을 찾기도 힘들기 때문에 연탄 배달은 연례행사처럼 계속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연탄은 그렇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연탄은 하얗게 한 시대를 불태우고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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