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여권, ‘우리끼리’ 순혈주의가 빚은 참사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4 15:00
  • 호수 156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집권 반환점 도는 혼돈의 여권, ‘싸움’ 아닌 ‘쇄신’ 필요해

“이렇게 전략 부재, 갈팡질팡하는 집권여당은 처음 경험한다”는 박지원 대안신당(가칭) 의원의 일갈은 사실 정치를 오래 들여다본 사람이면 누구나 떠올리는 생각이다. 급속한 민심 이반 속에서 대통령과 집권여당 지지율의 동반 추락을 가져왔던 ‘조국 사태’는 여권 스스로에 의한 자멸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었다. 서초동에 모여 ‘조국 수호’를 외친 여권 지지층은 ‘나쁜 검찰’과 ‘나쁜 언론’ 때문에 여론이 악화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사태의 발단과 방치를 자초한 것 모두 청와대와 여당이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조국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이 유력하다는 설이 등장했을 때부터 우려를 표했던 목소리들은 많았다. 조 전 수석은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의 잇단 인사검증 실패의 책임자로 지목되면서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 대통령의 최측근 현직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이 될 경우 공정한 법 집행에 대한 야당들의 불신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한 인사라는 반론이 이어졌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뜻대로 했고, 조 수석 또한 개의치 않고 법무부 장관직에 적극적인 의욕을 드러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민에 잠겨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고민에 잠겨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여당은 검찰만 손보면 되는 ‘검찰개혁당’?

더 심각한 것은 나라가 두 동강, 세 동강이 나버린 상황이 두 달 넘게 지속되었어도 위기관리의 리더십이 청와대와 여당 어디에서도 작동하지 않았던 무정부적 방치 상황이었다. 국민이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려 세 과시를 하며 대치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을 때,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견이 나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이를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진짜 위기다.

조국 사태 기간 내내 청와대만 바라보며 ‘조국 수호’에 매달리다가 청와대와 민심의 가교 역할이라는 여당의 책무를 포기해 버린 민주당의 모습 또한 의아할 지경이었다. 특히 민주당의 민심 불감증은 ‘조국 장관 사퇴-정경심 교수 구속’으로 이어진 상황 속에서도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제때 나오지 않은 사실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다.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데만 매달렸던 민주당으로서는 그동안의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조국 사태로 인해 국민의 마음이 상처받고 성난 데 대해서는 집권여당으로서 국민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정치적 도리였다. 사과할 줄 모르는 여당의 태도에 대한 지적이 당 안팎에서 대두되자 10월30일에야 이해찬 대표는 “송구하다”는 간접적 표현으로 사과를 대신했지만, 등 떠밀려 하는 사과라는 인상이 역력했다. 민주당은 검찰에 대한 분한 마음만 앞서다 보니, 두 달여 동안 자신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던 것인가를 알지 못했던 것일까. 민주당이 검찰만 손보면 되는 ‘검찰개혁당’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민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일이다.

야당과 다를 바 없이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정파적 손익계산에만 갇혀 큰 것을 내다보지 못했던 여당은 이제 사태가 남긴 충격파를 두고두고 감당하게 되었다. “당이 활력 없고,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 주체로 서지 못한 채 끊임없이 대통령 뒤에 숨어 무능을 숨기려고 한다”고 말하며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이철희 의원의 자성도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그에 이어 표창원 의원도 “사상 최악 20대 국회, 책임을 지겠습니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초선의원이지만 민주당에서는 가장 지명도가 높은 축에 드는 두 의원의 연이은 불출마 선언은 조국 사태의 여파로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한 민주당의 분위기를 더욱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한때 ‘20년 장기집권’의 장밋빛 꿈을 호언했던 민주당이었지만, 이제는 전에 없던 질문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총선 승리는 과연 가능할까” “지금의 이해찬 체제로 총선을 치러도 되는 걸까” “등 돌린 중도층을 다시 돌려세울 길은 없을까”.

그러나 조국 사태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 없었으니 그로부터 교훈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 민주당의 우왕좌왕 행보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도 다시 나타났다.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법안들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패스트트랙 지정 당시의 여야 4당 공조 복원이 절실하다. 자유한국당은 공수처법, 선거법 등에 대해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야당들과 공조해야만 표결 통과가 가능하다. 민주당으로서는 바른미래당, 대안신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등의 동의 없이는 법안 통과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마당에 민주당은 10월20일, 공수처법을 분리해 우선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해서 다른 야당들의 반발을 샀다. 패스트트랙 지정 당시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먼저 표결하고, 이후 사법 개혁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문에 담은 바 있었는데 이를 갑자기 뒤집은 것이다. 결국 바른미래당·대안신당·정의당·민주평화당 등이 공동 기자회견까지 하며 반발해 공수처법 우선 처리 방침은 무산되었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입장 표명은 그렇지 않아도 쉽지 않은 4당 공조 복원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10월28일 민주당 표창원 의원과 이철희 의원(왼쪽부터)이 이해찬 대표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뉴시스
10월28일 민주당 표창원 의원과 이철희 의원(왼쪽부터)이 이해찬 대표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뉴시스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사람 찾아보기 어려워

다 지난 이야기지만, 정권을 잡은 이후 촛불정국에서의 탄핵연대를 보존하는 일은 현재의 집권 세력이 국회를 통해 의미 있는 국정 성과를 내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길이었다. 그러나 야당들의 러브콜조차도 외면하며 청와대와 민주당은 너무 높은 지지율에 고무되었는지 ‘우리끼리’의 순혈주의 노선을 택했다. 문재인 정부의 불행은 국정의 큰 그림과 전략을 갖고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직언하던 몇 사람에게는 문자폭탄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모두가 당장의 박수에만 도취되어 과도한 자신감에 빠져든 나머지 ‘소통의 대통령’이 2년 반 만에 ‘불통의 대통령’ 소리를 듣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물론 대통령 본인의 책임이지만, 청와대 참모들과 집권여당의 책임이기도 하다.

곧 임기 반환점을 돌게 되는 청와대와 여당은 국정쇄신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깊은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데도 내부 어느 곳에서도 경보등 하나 제대로 켜지지 않는 현실, 그것이 지금 여권 세력의 쇄신이 요구되는 이유다. 서초동과 여의도에 모였던 여권 지지자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싸우자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 쪽은 약자가 아니라 엄연히 권력을 가진 집권 세력이다. 그렇다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넓게 얻는 것이 기본이다. 야당이 아니라 나라의 책임을 맡은 세력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싸움이 아니라 쇄신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