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섬은 다시 ‘시민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2 16: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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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정체성·동절기 활용법 고민 여전

지난 9월 말, 약 반세기 동안 버려져 있다시피 했던 노들섬이 복합문화공간으로 개장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노들섬은 서울 한강대교 중간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차량이 오고 가는 한강대교지만, 노들섬은 갈 수도, 갈 일도 없었던 외딴곳이었다.

노들섬은 1960년대까지 서울의 도심 속 휴양지였다. 원래는 넓은 모래밭이 있었고 여름이면 물놀이장,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애용됐다는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랬던 노들섬이 옛 정취를 잃어버리게 된 것은 강변북로 건설에 노들섬 백사장의 모래가 사용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지난 9월 28일 개장한 한강 노들섬 ⓒ김지나
지난 9월 28일 개장한 한강 노들섬 ⓒ김지나

정치색 벗고 '섬'의 장점 살려내려 노력

그동안 노들섬을 다시 활용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발사업들이 제안됐지만, 번번이 무산돼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세훈 전 시장을 거치면서 구체화 된 ‘한강예술섬’ 사업은 서울시의 정치 권력이 바뀌고 막대한 예산이 문제가 되면서 백지화 수순을 밟았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을 도시농업수도로 만들겠다는 비전으로 노들섬에서 텃밭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 역시도 성공하지 못했다. 한강예술섬 사업 대비 큰 폭으로 예산 규모를 줄이고 시민 참여적인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한 것이 현재로서는 성과라 할만하다.

공간을 먼저 만들고 난 후에 운영자를 정하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면, 이번 노들섬 개발사업은 이 공식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운영할지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시설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시민 공모로 결정했다고 한다. ‘서울에 또 무슨 복합문화시설이냐’라고 한다면, 문화콘텐츠의 생산과 소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공간이란 차별성을 내세운다.

지난 개장행사 때 방문한 노들섬은 과하지 않은 시설과 프로그램들이 섬의 풍경을 해치지 않아 평화롭게 느껴졌다. 63빌딩과 한강철교의 배경을 감상하는 것도 고전적인 즐거움이 있었다. 접근성은 여전히 아쉬웠지만 그 또한 섬의 매력이었다. 노들섬은 ‘섬’이라는 일탈의 이미지가 독보적인 자산이자 묘미였다.

그러나 이제껏 제기된 노들섬 개발 아이디어들은 모두 섬이라는 특징을 살리기보다 어떤 기능을 추가로 넣을 것인가에 집중돼 있었다. 그 기능이라는 것도 역대 서울시장들의 정치적 정체성이 투영돼 결정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오죽하면 노들섬을 서울시장들의 영욕이 깃든 섬이라고 평가할까. 문화비축기지, 서울식물원이 연이어 개장한 지금 서울에 필요한 것이 정말 복합문화공간인지도 의문이었다. 게다가 접근성과 대중성이 중요한 문화시설이 들어서기에 ‘섬’으로서 노들섬의 입지는 오히려 극복해야 할 약점이 되고 말았다.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된 건물에는 대중음악 공연장, 오피스, 식음료 매장, 마켓 등이 입주해있다. ⓒ김지나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된 건물에는 대중음악 공연장, 오피스, 식음료 매장, 마켓 등이 입주해있다. ⓒ김지나

이 간극을 메우고자 서울시에서는 노들섬과 노량진, 그리고 용산을 잇는 보행교 사업을 추진 중이다. 서울의 한강에는 총 31개의 다리가 있지만 그중 보행자만을 위한 다리는 단 한 개도 없다. 노들섬 위를 지나가는 한강대교가 본래는 한강을 걸어서 건너가기 위한 다리였다는 점도 보행교 사업의 중요한 역사적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한강대교의 일부만이라도 보행교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이전에도 나온 적 있었지만, 교통문제와 비용이 걸림돌이 됐다. 단지 보행교를 건설한다고 해서 한강을 걸어서 건너가는 것이 편리해진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보행환경 개선이나 역사 복원의 이슈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에서 늘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노들섬은 조금 다르게 접근해, ‘섬’이라는 장점을 살리는 것도 재생의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주말에 근교라도 나가볼라치면 엄청난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하는 서울시민들에게, 빠르고 쉬운 일탈의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으로서 노들섬의 ‘고립성’을 이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뉴욕 맨하탄의 거버너스 아일랜드. 5~10월 동안 개장되는 휴양 및 문화공간이다.ⓒ김지나
뉴욕 맨하탄의 거버너스 아일랜드. 5~10월 동안 개장되는 휴양 및 문화공간이다.ⓒ김지나

세월에 맞는 ‘발상의 전환’ 필요할 때

미국 뉴욕시에는 ‘거버너스 아일랜드’라는 섬이 있다. 맨해튼 남부에서 배로 약 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작은 섬으로, 본래 군사기지였다가 지금은 공원과 피크닉, 글램핑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도심에서 어렵지 않게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섬’으로서의 매력이 돋보인다. 거버너스 아일랜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The Easiest Way to Get Away(휴가를 떠나는 가장 쉬운 방법)”이란 문구가 제일 먼저 뜨는데, 이 섬의 콘셉트를 잘 설명하고 있다.

반면 노들섬은 시민들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기지’, ‘익숙하고도 낯선 도심 속 자연의 공간’이라는, 어느 곳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은 문구뿐이다. 이번에 조성된 복합문화공간은 이전 시장들의 정책보다 심리적 장벽은 많이 낮아졌지만, 그만큼 공간의 정체성은 모호해졌다.

노들섬이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는 동계시즌 활용 문제다. 뉴욕의 거버너스 아일랜드는 아예 11월부터 4월까지는 개방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경험의 희소성이 있다. 칼바람 부는 한강을 걸어서 건너 문화이벤트를 즐기러 갈 수요를 창출할 대안이 없다면, 또다시 예산 낭비의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50여 년의 세월 동안 방치되면서 노들섬을 둘러싼 환경이 너무 많이 변했다. 이미 차량 중심의 한강대교 속에 갇혀 버린 섬의 입지를 억지로 극복하려 하기보다, 이것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해 보인다. 50년 전 노들섬으로 나들이 가던 즐거움이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질 수 있는 현명한 정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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