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의 입시 비리가 불러 낸 ‘정시 확대’ 논란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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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법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특권층의 입시 비리

1980년대 학력고사 시절과 1990년대 수능 초기 대학 입시에 관한 주된 비판은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날 시험을 통해 고교 3년 동안 쌓아온 역량을 테스트 받고 줄 세우기 방식으로 이들을 서열화하는 게 타당하냐는 데 있었다. 1990년대부터 창의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각됐지만 그 시절 전국의 수험생들은 동일한 범위의 교과서를 달달 외워야 했고 변별력 있는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추기 위해 미래 시대에 요구되는 역량과 무관한 기계적 학습에만 몰입해야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절대 미래 경쟁력을 함양하지 못한다.

학원 과외 성행과 사교육 열풍으로 인해 참여정부는 2004년 10월, 2008학년도 대입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입학사정관 제도를 신설, 모집 단위별 특성에 따라 대학이 자유롭게 학생의 역량을 검토 및 선발하라는 특단의 지시를 발표했다. 예를 들어, 국문과와 경영학과에 소질이 있는 학생은 엄연히 다른데 이들의 적성, 재능을 무시하고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교과목으로 같은 날 수능시험을 보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평가 방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입학사정관이 본격화된 2011학년도 입시부터 현재까지 주요 명문대는 수시 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문제는 학생의 적성과 재능, 창의성, 잠재력을 확인하기 위해 도입된 입학사정관 제도가 본격적으로 고위층, 특권층의 입시비리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학력고사와 수능 초창기 때의 입시가 전혀 문제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시절에는 막강한 배경과 힘 있는 부모를 뒀어도 시험을 잘 보지 못하면 흔히 말하는 ‘스카이 캐슬’에 입성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1980~90년대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의 모범생만이 들어갈 수 있는 국내 명문대 대열에 합류하기 어려웠던 특권층의 자녀들은 눈길을 미국 등 해외로 돌렸고 그 결과 ‘도피 유학’이 붐처럼 횡행했다.

그러나 최근 10년 동안, 자녀가 어느 정도 성적만 유지하면 특권층의 배경과 힘으로 ‘스카이 캐슬’에 진입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지 않다. 학생들의 창의성과 적성 등은 A급 입시 컨설턴트 등에 의해 교내 및 교외 수상, 논문 게재, 학술 발표 등의 측정 가능 수단으로 변환되기 시작했다. 뒤이어 대학이 면접과 학생부만을 토대로 평가해 우수 인재를 선발한다고 발표하자 특권층은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통해 논문 및 학술 발표 실적, 교외 수상, 글로벌 인턴 경험 등 평범한 학생이 접근하기 불가능한 통로를 설정하고 이 과정을 통해 명문대로 진학하기 시작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마지막 주말인 11월12일 서울 중구 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자습하며 막바지 수능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12일 서울 중구 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자습하며 막바지 수능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권층의 입시 비리로 다시 꺼내든 정시 전형

필자가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으로 면접에 임하고 다양한 국내외 학술논문 심사 및 편집위원을 경험하면서 특권층의 입시 비리는 대학 입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회사 입사와 대학원 입시로 확대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교에서 쌓은 탄탄한 스펙과 인맥은 이후 대학에서 더 나은 회사 입사를 위해 그들만의 네트워크와 편법을 통해 재생산되고 그런 방식을 터득한 부모와 학생은 자신들의 노하우를 같은 클래스 내 계층과만 공유하며 21세기 새로운 귀족의 성을 공고히 쌓아나갔다. 평범한 학생이 그들과 출발선을 같이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수많은 입시 컨설턴트와 고교생을 둔 학부모와의 인터뷰를 통해 고교 입학과 동시에 특권층은 입학할 대학과 학과를 선정하고 거기에 맞게 학생부와 수상 실적을 쌓아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성적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수시라는 제도 아래 시행되는 창의성, 잠재력, 재능은 컨설턴트에 의해 3년간 더욱 철저히 계획되고 기계적인 과업처럼 진행되는 것이 강남에서는 놀라운 일도 아니다. 입학사정관제 하에서는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과 같은 일도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극적인 성적 상승과 외부 성과를 통해 드라마틱한 에세이를 만드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명문대 교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흔히 말하는 수시 전형을 통해 명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평균 수상 실적이 40개에 가깝다고 한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처럼 우리나라 대학이 심도 있는 면접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수험생의 역량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이다. 그러다보니 짧은 시간의 면접으로 수험생을 선발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하소연을 자주 하고 있었다. 면접 시간이나 선발 과정이 짧고 간단하다 보니 수상 실적이 많고 글로벌 인턴이나 학술논문 게재 등의 실적을 거둔 학생에게 좀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학생의 잠재력, 창의성을 확인하고 각 학과별 적성에 맞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좋은 의도로 도입된 수시 전형이 현재 명문대에서는 특권층의 입시 비리 통로로 일부 전락하고 있다. 혹자는 소수의 사례로 과대 해석하는 건 위험하다고 강조하는데, 단 하나의 병폐라도 있다면 그 제도는 결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 수도권 명문대에게만 별도로 정시 전형을 확대하라고 사실상 지침을 내린 건 주요 명문대와 수도권 대학에 대한 수시 전형이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타락시키는 불공정한 제도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는 원래 공정한 제도가 아니다

정시 전형이 확대되자 고교 교사의 60%가 정시 확대를 반대하기 시작했고 전교조 및 주요 대학의 입학처장도 정시 반대를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입학사정관제는 공정하게 성적으로만 학생을 선발했을 때 백인 학생들이 대거 탈락하고 이민 온 유대인 등 다른 민족들이 명문대에 진학하자 이를 막기 위해 시행된 불합리한 제도였다. 시험을 통해 들어오지 못하는 백인 및 부유층 학생들을 더 많이 선발하기 위해 도입된 입학사정관제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그 제도가 특히 불공정이 팽배한 한국에서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는 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감안해 서울 주요 15개 대학에만 정시 전형 확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국내 4년제 대학이 220개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외 대학은 수시 전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시 확대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대를 외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애초 특권층, 고위층의 자녀는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을 토대로 스펙을 쌓았기에 해당 대학에게 필요악이지만 상대적으로 공정한 과정인 정시를 확대한다고 해서 고교 교육을 후퇴시킨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 외 200개 대학은 여전히 수시 제도를 운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시 전형 확대를 발표하자 필자 주변에 있는 일부 특권층은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자녀의 성적이 상위권이 아니기에 자신들에게 정시는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 항변의 이유였다. 물론, 수능으로 줄 세워 학생을 선발하는 건 21세기 경쟁력의 지표인 창의적 사고와 잠재력 등을 결코 확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특권층의 힘과 자본으로 산출되는 불공정한 입학은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 명문대 교수들도 시험으로만 선발하는 것보다 입학사정관 제도를 시행하면 더 많은 백인을 선발할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미국도 상황이 이러한데 하물며 대학 간판이 인생의 핵심 지표로 인정받는 한국에서는 수시 전형을 당분간 최소화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정의로운 일이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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