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늬 “2019년은 선물 같고 기적 같은 한 해”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9 10: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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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머니》로 돌아온 이하늬 “대본, 무결에 가까웠다”

아주 예전, 이하늬와 파리로 화보 촬영을 간 적이 있다. 여전히 그때의 모습이 강하게 기억나는 건, 그녀가 파리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평범해서 아름다웠고, 따뜻해서 아름다웠고, 고민하는 청춘이어서 아름다웠다. 그녀는 여가 시간에 파리에 사는 친구와 배낭을 메고 여행을 했고, 자연스레 우리 일행과 합류해 몽마르트르를 거닐기도 했으며, 함께 김밥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이하늬는 평범하고도 치열한 청춘을 보내는 중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다시 만난 이하늬는 그때와 별다를 게 없었다. 여전히 따뜻했다. 스스로 실수투성이라고 말하지만 그 모든 모습이 이하늬 그 자체였다. 요가와 명상으로 단단하게 자신을 수련 중인 그녀는 예쁜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가장 활약한 여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그녀다.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오가며 털털한 모습으로 사랑을 받았던 그녀가 또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2012년에 매각하고 떠난 사건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정·재계에 걸친 금융 비리 사건과 그간 작품 속에서 많이 봐왔던 검사를 전면으로 내세운 사회 고발 영화다. 이하늬는 차갑고 이성적인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 역을 맡았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대본을 읽고 어떤 것에 끌렸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 무게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적인 재미 요소가 많았어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도 좋았고요. 현 시대를 살아가면서 배우로서 메시지를 던지는 작업에 함께한다는 게 의미 있지요. 무엇보다 대본의 완성도를 보고 놀랐어요. 작업자가 수정과 수정을 거쳐 무결에 가까운 글이었어요. 이런 작품을 만났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함께 출연한 조진웅씨와의 호흡은 어땠나.

“저를 귀찮아했어요. 하하. 한데 선배가 ‘츤데레’예요. 맛있는 게 있으면 툭 던져주고, ‘밥은 묵었나?’ 하면서 슬쩍 물어보는 스타일요. 진웅 오빠는 말수가 적은 편인데, 내 동료라고 생각하면 가족처럼 완전히 받아들이는 스타일이에요. 가족 같은 배우를 얻었어요. 함께 작업을 하면서 왜 조진웅이라는 배우가 충무로에서 사랑을 받는지 공감이 됐어요. 삶의 온 방향이 영화로 가 있는 사람인데, 그걸 누가 당해내겠어요. 술을 마시는 것도 영화 때문이고, 기분이 좋은 것도 영화 때문인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영화를 중심으로 우주가 도는 사람이랄까요. 왕왕대는 그 큰 에너지를 옆에서 직접 보고 느낀 점이 많아요.”

 

73세의 거장 감독은 현장에서 어땠나(정지영 감독은 《남영동 1985》(2012), 《부러진 화살》(2011) 등을 연출했다).

“젊고 패기 있고 친구 같은 감독님이셨어요. 스스럼 없이 배우의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어요. 스스로 진화하는 스타일이에요. 디렉션을 주실 때 저 멀리서도 막 뛰어오세요. ‘감독님, 마이크로 해 주셔도 돼요’ 하면 ‘나 마이크 안 써, 직접 눈 보고 해 주고 싶어’ 하세요. 그래서 늘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계시죠. 작업자의 마음, 태도, 열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이하늬라는 배우가 완전히 충무로에서 자리 잡은 느낌이다.

“저는 완전히 반대였어요. 《극한직업》 할 때는 개봉하기 직전까지 바들바들 떨었어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얼마나 자주 꿨는지 몰라요. 《블랙머니》도 마찬가지예요. 아직도 바들바들 떨고 있어요. 마음이 안 놓이나 봐요. 《극한직업》의 개봉을 앞두고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연기를 했는데도 또 다 내려놓았기 때문에 오는 걱정이 있더라고요.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까, 궁금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커요. 아직은 제가 햇병아리라 영화가 완전히 내리기 전까지 긴장하며 사는 스타일이에요. 아직은 제가 그래요.”
 

기존의 역할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역할에 대한 갈증이 있었나. 

“배우로서 이른바 ‘잘된다’는 게 어떤 걸까, 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결국 하고 싶은 캐릭터를 맘껏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전 최고의 한 해를 보냈어요. 해 보고 싶은 캐릭터를 만났고, 마음대로 해 볼 수 있는 현장, 좋은 감독을 만났어요. ”

 

요즘도 채식을 하나.

“채식을 하다가 건강상 이슈가 있었어요. 채식을 지향하지만 완벽한 채식은 하지 않아요. 최근에 요가 트레이닝을 하면서 한 달 동안 완벽한 채식을 한 적이 있어요. 몸이 정말 유연해지면서 안 되던 동작이 가능해지더라고요. 다만 채식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은 없어요. ‘채식’을 언급하니까 자유로워지려고 시도했던 채식이 어느 순간 강박이 되거나 자유롭지 못하게 되기도 했어요. 말을 내뱉는 순간 나를 속박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나는 채식주의자’라는 말은 하지는 않아요. 다만 채식을 지향하고 있지요. 환경을 생각하면 채식은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쉴 때는 주로 뭘 하나.

“쉴 때도 자꾸 뭘 해요(웃음). 그래서 넋 놓고 명상을 하려고 노력해요.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시나리오 읽고,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고, 이런 생각이 자꾸 나죠.”


최근에 발리로 훌쩍 떠났다고 들었다.

“요가 수련을 갔어요. 자유롭고 싶어서요. 몸도 중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고, 사람으로부터도, 생각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어서요. 분명한 건, 마지막 날에 얻은 건 편안함이었어요. 한 달 동안 매일 10시간씩 수련을 했어요. 요가 트레이닝뿐만 아니라 요가를 가르치는 법도 배웠죠.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 40명과 수련을 했는데, 단지 수련하는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게 제게는 특별했고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수련을 하면 삶이 바뀌어요. 모든 일을 할 때 수련하듯이 살면 실수가 줄어들고요. 수련은 제게 엄청난 에너지가 돼요. 수련을 하지 못하면 몸도 붓고 멘털도 흐트러져요. 며칠 게을리하면 말부터 틀려지죠. 우리 일이라는 게 외부로부터 오는 많은 일들을 쳐내야 하는 부분도 많은데, ‘왜 그런 말을 나한테 하지?’ 하면 상처가 되고 그게 마음으로 들어오면 힘들어지죠. 평상시에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상처를 덜 받아요. 요가는 본능적으로 내가 살기 위해 하는 거예요. 발리로 훌쩍 떠나 급속 충전 같은 시간을 만끽하고 왔답니다.”

 

연말이다. 올 한 해를 정리한다면.

“선물과 같은, 기적과 같은 한 해였어요. 배우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했고, 배우를 ‘직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매일매일 현장에 나가는 직업으로 배우라는 직업을 받아들이자는 의미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소중한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그래요. 그 외의 것은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내가 하고 싶은 캐릭터를 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그 모든 걸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결국 제가 잘해서 된 게 아니라는 의미예요. 1600만 명 관객을 만났다는 건 배우 입장에서는 걷다가 벼락을 맞는 것과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 감사하지만 동시에 그 모든 걸 내려놓고 다음 에너지를 준비하는 게 맞는 거죠. 저는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게 더 많은 배우이기 때문에 이 상황에 스스로 만족할까봐 더욱 경계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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