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다시 세월호 사건을 돌아본다
  • 김정헌(화가, 4.16재단 이사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3 18: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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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나는 어느 정치에 관한 책의 출판기념회에 앉아 있었다. 책의 내용은 ‘대한민국 대전환’이라는 부제가 붙은 우리나라 정치의 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원래 저자의 정치적 주장은 예컨대 지금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여야 간 치열하게 논쟁 중인 사안인 선거 개혁에 관한 것으로 그는 이 정치 개혁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나는 정치와 무관한 그림쟁이지만 그의 비례대표 민주주의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우리의 모든 정치적인 개혁이 그가 주장하는 비례대표 선거제도의 성패에 달렸다고 강력하게 동의하고 있다. 그는 녹색당 대표인 하승수 변호사고 나도 녹색당원이다.

그가 ‘큰 그림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을 때 포털 뉴스에서는 세월호 사건 때, 즉 2014년 4월16일 오후에 한 익수자를 구출했는데 선상에 누워 있는 그 학생(세월호 사건 때 희생당한 단원고 학생)을 내버려둔 채 구조 헬기는 해경청장들이 타고 가버렸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할 수 없이 여러 번 구조 함정과 경비정을 옮겨 다니느라 시간이 지체돼 결국 숨지고 말았다는 끔찍한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헬기로는 20분 걸리는 거리를 4시간 넘게 배로 이송하는 바람에 숨이 붙어 있던 그 학생은 결국 죽었다고 세월호 특조위(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밝혔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이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개최됐다 ⓒ 시사저널 박승봉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이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개최됐다 ⓒ 시사저널 박승봉

하마터면 비명이 새어나올 뻔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을 팽개친 채, 그들이 업고라도 뛰어야 할 처지에 학생을 버려 놓고 청장이라는 자들이 두 명씩이나 헬기를 타고 갔단 말인가? 도저히 인간의 탈을 쓴 사람들이 아니다. 더군다나 헬기를 탄 사람은 재난에 대해 국민들을 구호해야 할 경찰이 아니더냐. 이들은 중범죄자다. 아니 살인자들이다.

필자는 세월호 때문에 세워진 4·16재단의 이사장이다. 속으로는 이들을 백 번 천 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책 출판기념회에서 선거제도 개혁에 동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누구인가? 갑자기 자괴감이 밀려왔다.

이들의 천인공노할 이런 처사는 그들이 ‘악의 자식’들인가, 아니면 단지 국가적인 시스템의 잘못인가? 아니면 한나 아렌트가 말한 대로 임무에만 충실한 ‘악의 평범성’에 지나지 않는가? 필자로 하여금 오만 가지 생각을 들게 했다.

해경청장을 모시는 보좌관이 헬기 옆에 있다가 “청장님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저쪽 헬기를 타시면 됩니다” 그때 옆에서 학생을 구조하던 해경대원이 “아니 이 학생이 더 급한데…” 어느 쪽이 이기겠는가? 다 권력의 불평등이 만들어낸 사회적 참사다.

사회구조는 알게 모르게 권력의 그물망으로 촘촘히 짜여 있다. 학연·지연·혈연으로 정말 속된 말로 ‘빡세게’ 그 그물은 촘촘하다. 일상적으로 평범한 우리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관계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평등의 작은 그림으로 풀어 나가야 할 때가 아닌가?

학연·지연·혈연은 험한 세상을 살다보면 이리저리 기대고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미풍양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이러한 연분을 권력의 작동에 이용하는 정치세력들이 있게 마련이다. 소위 기득권 세력들이다.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들고 아무한테나 험한 말을 내뱉는 무리들을 보라. 심지어는 세월호 사건으로 큰 상처를 입은 가족들에게까지 침을 뱉지 않았는가.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세월호 사건 당시 학생들에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고 명령을 내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세력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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