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공농성 형제복지원 피해자 “법 국회 통과될 때까지 안 내려갈 것”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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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 농성 2년째 최승우씨 “정부 바뀌어도 변한 거 하나 없어”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강제노역과 학대로 5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인 최승우씨가 6일 국회 앞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내일(7일)이면 국회 정문 앞 천막 농성 정확히 2년째를 맞는 최씨는 “이대로 20대 국회마저 끝나버리게 놔둘 수 없다”며 국회 앞 국회의사당역 에스컬레이터 지붕으로 올라갔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입법 통과를 촉구하며 천막 농성중이던 피해자가 6일 오후 국회의사당역 지붕에 올라간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입법 통과를 촉구하며 천막 농성중이던 피해자가 6일 오후 국회의사당역 지붕에 올라간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부터 13여 년간 장애인·무연고자 등 시민들을 불법감금, 강제노역, 암매장한 국내 대표적인 인권 유린 사건으로 한국판 아우슈비츠라 불려왔다. 이 사건은 1987년 복지원을 탈출한 일부에 의해 만행이 알려졌지만, 가해자인 박인근 형제복지원 이사장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는 데 그쳐 피해자들은 십수 년째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2014년 19대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끝내 통과되지 못했고, 2016년 과거사법 개정안에 담겨 다시 발의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오랫동안 계류 중이다.

지붕에 오른 직후인 6일 오후 최씨는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시위 8년, 여기 국회 앞에서 2년째 매일 목소리를 내왔지만, 누구도 관심의 시선을 보이지 않았다. 혼자 싸우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국회에 3년째 계류돼있는 형제복지원 진상규명과 관련한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가겠다고도 밝혔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입법 통과를 촉구하며 천막 농성중이던 피해자가 6일 오후 국회의사당역 지붕에 올라간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입법 통과를 촉구하며 천막 농성중이던 피해자가 6일 오후 국회의사당역 지붕에 올라간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왜 지붕에 올라가게 됐나.

“20대 국회가 5개월 정도밖에 안남았는데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도 이대로 끝나게 둘 수 없다는 생각에 결단을 하게 됐다. 지금 법안이 계류돼 있는 법사위 위원장이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이잖나. 제대로 논의가 더 안 될 것 같은 걱정도 있었고, 이대로 법안이 또 폐기돼버리면 새 국회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암담했다.”

국회 정문 앞에서 오래 농성을 이어왔는데.

“오늘(6일) 729일째, 내일이면 정확히 2년 된다. 다른 곳에서 농성을 시작한 건 8년 됐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 정부, 국회, 시민단체 여러 지식인에게 너무 화가 난다. 그냥 쳐다만 보고 지나가는 무관심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냥 절박한 심정에서 올라왔다.”

날이 점점 추워질 텐데 걱정은 없나.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생각 없고 그냥 법 통과가 될 때까지 잘 버티다가 통과되는 모습 보고 내려가고 싶다.”

법 통과로 인해 가장 원하는 건 무엇인가.

“진상규명이다. 공권력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놨는데 진상규명이 제대로 돼야 국가가 제대로 사과할 텐데. 난 동생도 죽고 사랑하는 사람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가족이 몰살되는 피해를 입었다. 국가로 인한 피해자가 이렇게 버젓이 있는데 국회도 정부도 가만히 있는 게 어이가 없지 않나.”

다른 피해자들은 고공농성 결단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나.

“얘기 안 하고 시작했다. 걱정하겠지.”

도와주는 단체는 따로 없나.

“시민단체들도 이제 거의 다 손을 놓고 있다. 언론에서도 우리를 부랑민으로 칭하는데, 혹 부랑민이더라도 그렇게 잡아가서 인권을 유린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인가. 지금은 다른 한 피해자랑 나랑 둘이 농성하고 있고 다른 몇몇 피해자들도 개인 단위로 따로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현 정부에 기대하는 바가 있었던 것 같은데.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가 과거사 청산이었다. 그중 하나가 형제복지원 사건이었다. 과거 추진됐던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이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과거사법 개정안 안에 한 항목으로 포함돼 법안이 추진 중인 상태인데 이조차 진전이 없으니 힘이 빠진다. 법 내용이 너무 포괄적이라 걱정도 된다. 법안을 가장 발목 잡는 한국당도 밉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도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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