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화려한 외교, 구태의연한 국내 정치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8 16: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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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집권 전반기를 설명하는 두 키워드

한 병당 5000유로(약 640만원)를 호가하는 세계적 와인 로마네 콩티 1978년산, 프랑스 최고 품질의 샤를레종 등심, 피카소의 미술작품까지 중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1월4일 중국 상하이를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안긴 선물이다. 르몽드지는 시진핑과 중국을 ‘유혹’하기 위한 프랑스의 ‘소프트 파워’라고 평가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화려한 ‘이벤트 외교’가 또 한 번 등장한 것이다.

같은 날, 프랑스 본토에선 총리가 내놓은 ‘노동 이민 쿼터제’ 발언으로 정치권과 언론이 갑론을박에 휩싸였다. 내년 선거를 앞둔 이 시점에 집권여당에서 단골 이슈인 ‘이민 정책 카드’를 정면으로 들고나온 것이다. 이 두 장면은 11월5일로 임기 절반을 채우며 반환점을 돌아선 마크롱의 집권 전반기를 설명하는 두 가지 키워드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화려한 외교’와 ‘전형적인 구(舊)정치’다.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된 나이는 불과 39세였다. 나폴레옹보다 어린 나이에 권좌에 올라섰다는 평가와 함께 외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영어로 담화문을 발표하는가 하면, 강대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며 유럽을 넘어 전 세계 새로운 리더로 부상했다.

4월25일(현지시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란 조끼’ 시위 관련 대국민담화에 참여하고 있다. ⓒ EPA 연합
4월25일(현지시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란 조끼’ 시위 관련 대국민담화에 참여하고 있다. ⓒ EPA 연합

마크롱, 지방선거 후보 내리꽂기 등 구태

취임 한 달 만에 G7 회담은 물론 유럽의회 국제행사까지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마크롱은 트럼프와의 ‘악수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국제무대에 각인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베르사유로 초대하는가 하면, 트럼프와의 만찬 자리를 이례적으로 에펠탑 2층에 마련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의 외교력의 정점을 찍은 것은 지난 8월 비아리츠에서 있었던 G7 정상회담이었다. 무역분쟁으로 껄끄러웠던 미국과의 관계를 금세 우호적인 분위기로 반전시켰고, 이란의 외무부 장관을 불러들이는 모험수까지 보였다. 그의 치밀하고 과감한 기획력은 다시 한번 호평을 받았다.

국제무대에서의 화려한 외교술로 견인한 지지율을 이내 국내 정치에서의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야금야금 깎아먹었다. 임기 초 대통령 경호원의 시민 폭행 스캔들부터 장기화된 ‘노란 조끼 시위대’ 국면까지 ‘새 정치’를 표방한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정치 경험 부재’라는 한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중도를 표방하며 좌우 세력을 평정했지만, 각종 사안에서 나타난 권위주의적인 태도와 분명치 않은 정책 로드맵은 마크롱과 여당의 지지층을 빠르게 와해시켰다.

새 정치를 외친 마크롱 정부를 무색하게 만든 구정치적 행보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엘리제궁(대통령궁)의 입김으로 후보들이 낙점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내리꽂는 후보가 아닌 공정한 경쟁을 통한 후보 선출을 약속해 온 것과 달리, 가장 상징적인 파리 시장 후보 자리에 엘리제궁 대변인이던 벤자맹 그뤼보를 앉혔다. 여당인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LREM) 후보로 나서려 했던 수학자 출신 세드리크 빌라니 의원은 대통령의 내리꽂기에 즉각 반발했고, 이내 여당은 양분됐다. 이로써 야당 소속의 경쟁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권에 한발 더 다가섰다.

11월5일 총리에 의해 제기돼 정가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노동 이민자 쿼터제’ 논란도 과거의 정치 공식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민 정책의 통제권을 되찾겠다”는 선언과 함께 발표된 총리의 갑작스러운 발표는 선거를 의식한 이슈화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프랑스 정치권에서 ‘쿼터제’란 단어는 입 밖에 내는 것조차 매우 조심스러운 사안 중 하나다. 과거 우파였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정도만이 대놓고 주장해 큰 반발을 샀다. 우파 중에서도 강성의 정치인들만이 들고나왔던 이슈를, 지난 대선에서 ‘이민자 쿼터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던 마크롱 정부에서 들고나온 건 프랑스 국민들을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마크롱 정부에서 총리를 필두로 이민 강경책을 들고나온 것은 전날인 11월4일 발표된 차기 대선후보와 관련된 여론 동향에 기인한 바가 크다. 2022년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대표가 28%로 마크롱을 1% 남짓 앞지른다고 나온 것이다. 다급해진 정부와 여당에선 보수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해 지나치게 강한 우파적 정책들을 급하게 들고나오고 있다.

8월24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G7 정상회의가 공식 개막하기 전 예정에 없던 ‘깜짝’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 AP 연합
8월24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G7 정상회의가 공식 개막하기 전 예정에 없던 ‘깜짝’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 AP 연합

사르코지보다 낮은 중간 지지율

프랑스 언론과의 관계도 마크롱 대통령에겐 불편한 대목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언론과의 스킨십보다는 대중을 직접 만나거나 SNS를 통해 소통하는 것을 선호해 왔다. 엘리제궁 내 기자실을 외부로 이전한 것도 마크롱 집권 직후였다. 대통령 경호원이 시민을 폭행한 ‘베날라 스캔들’ 당시 언론 보도를 두고 마크롱은 언론들에 “심판관처럼 행세하지 말라”며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프랑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이폽(Ifop)’이 11월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크롱의 국정운영에 지지를 나타낸 응답자는 36% 선이었다. 이 수치는 전임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올랑드가 기록한 16%의 지지율보다는 높지만, 그 전임인 시라크 전 대통령(52%)과 사르코지 전 대통령(39%)보다 낮은 수치다. 최근 세상을 떠나며 다시금 국민적 지지도를 실감케 했던 시라크 전 대통령의 경우 당시 이라크전 반대라는 굵직한 이슈가 지지율을 견인했다는 점에서 객관적인 비교 대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임기 내내 각종 논란을 안고 있던 사르코지 대통령보다 낮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좌파, 우파를 넘어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고 나선 젊고 신선한 대통령 마크롱이었기에 이 수치는 더욱 그렇다. 대선 때 얻은 66%의 득표율에서 반 토막 난 기록이기도 하다.

화려한 외교 그러나 구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내 정치.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에도 전반기와 같은 이 두 개의 키워드로 임기를 연명해 갈까. 마크롱의 방향타가 어느 쪽으로 향할지는 알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차기 대선까지 염두에 뒀을 때, 극우 정당의 마린 르펜을 제외하곤 아직 뚜렷한 ‘적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프랑스 정계를 양분해 온 전통적인 좌파 사회당과 우파 공화당이 모두 스스로 지리멸렬하고 있어 프랑스 유권자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마음 둘 곳 없는 ‘정치적 고아’가 돼 있다. 마크롱이 과연 프랑스 정가에 닥친 이 불행에 대한 단순한 반사이익 이상의 호감을 얻을 수 있을지, 그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기대와 우려가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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