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 신드롬’의 의미 좀 알아주세요 부장님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9 12: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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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는 펭수, 선에 갇힌 2030 열광할 수밖에

‘펭수’라는 이름의 2m10cm 거대 펭귄 캐릭터가 신드롬을 일으켰다. 펭수의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는 구독자 수 40만 명을 돌파했다. 펭수 팬사인회까지 열린다. EBS 캐릭터인데 타 방송사까지 진출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SBS 《정글의 법칙》, SBS 라디오 《배성재의 텐》, MBC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 등에 출연했고, KBS PD들은 펭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tvN 드라마 유튜브 채널 운영자도 방송사 간 기회 균등을 내세우며 펭수에게 드라마 출연을 요청했다. 초유의 ‘방송 대통합’ 실현이다.

원래는 초등학생용 기획이었다. 그런데 2030 세대에서 터졌다. 어린이들이 모이던 EBS 캐릭터 행사에 어른들이 출몰하고 인터넷에서 절대적 지지 발언이 쏟아진다. 펭수는 연기자가 거대한 인형옷을 입고 연기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아무도 그 실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마치 아이들이 캐릭터 자체를 살아 있는 실체로 인식하는 것처럼 어른들도 펭수를 실존하는 펭귄으로 인식한다. 누군가가 펭수의 실체를 궁금해하는 댓글을 쓰면, ‘펭수는 펭수다!’ ‘펭수에게 별도의 실체는 없다’ ‘펭수의 속을 궁금해하지 말라’라면서 펭수 판타지를 지키려 한다.

펭수를 기획한 EBS 이슬예나 PD는 올 2월에 펭수를 만났다고 주장한다. ‘우주 대스타’가 되기 위해 한국으로 헤엄쳐온 열 살짜리 남극 펭귄을 그때 만나 EBS 연습생으로 영입했다는 것이다. 올 2월에 이런 스토리를 기획했다는 얘기다. 3월에 방송을 시작했고, 4월부터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거기에서 떴다.

펭수가 10세인 이유는, 이 PD는 실제로 열 살이라서 열 살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소구 대상이 열 살이기 때문이다. EBS의 고민은 기존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연령대가 유아층에 한정돼 있다는 점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EBS 캐릭터와는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펭수의 나이를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접어드는 열 살로 정하고, 초등학생이 좋아할 법한 언행을 하도록 했다.

귀여운 펭귄 뽀로로에서 불량 펭귄 펭수로

이 PD는 요즘 초등학생이 고학년만 돼도 어른들이 보는 예능을 똑같이 보면서 즐긴다고 분석했다. 유치원 시절의 마냥 착하고 순수한 이야기가 아닌, 좀 더 솔직하고 자유분방하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EBS 사상 최초로 ‘불량’ 캐릭터인 펭수가 탄생한 것이다. 귀여운 펭귄 ‘뽀로로’에서 불량 펭귄 ‘펭수’로의 변화다.

그런데 소구층 연령대 상향 조정이 생각보다 너무 가팔랐다. 과녁이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는데 2030 세대에 꽂혔다. 그래서 부랴부랴 방송시간대도 조정했다. 원래 오후 6시대에 방송되는 《보니하니》의 한 코너였지만 별도 프로그램으로 독립시켜 금요일 오후 8시30분으로 옮겼다. 프로그램 속의 설정도 을의 노동환경처럼 어른용이 나타났다. 본격 성인예능으로 바뀐 것이다. 자칫 ‘초통령’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결국 펭수의 바람대로 ‘우주 대스타’의 길로 접어들었다.

펭수 기획이 생각보다 높은 쪽으로 가기도 했지만, 2030 세대의 취향이 내려온 측면도 있다. 과거엔 어른이 되면 미성년 취향과는 작별하고 어른의 취향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아동기의 취향을 일부 유지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어른이(키덜트)’ 현상이다. 그래서 귀여운 캐릭터가 인기다.

게다가 누리꾼 문화에선 유희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것을 희화화하고 직설적인 언행을 즐긴다. 누리꾼들이 스스로 즐길 만한 캐릭터를 발굴하는 것도 유행한다. 그래서 ‘4딸라’ 김영철, ‘타짜’ 곽철용 같은 캐릭터가 뒤늦게 뜬 것이다. 그런 누리꾼에게 펭수는 딱 맞는 유희 소재였다. 펭수를 진짜 펭귄으로 대우하는 거대 상황극에 모두 동참하며 즐기게 됐고, 펭수는 기꺼이 그런 기대에 맞는 ‘떡밥’을 제공했다.

요즘은 B급의 시대다. 점잖고, 수준 높고, 정제된 A급보다는 조악하고, 직설적이고, 자극적이고, 비주류스러운 B급이 뜬다. 펭수의 우스꽝스럽고 조악한 모양새부터 불량한 언행까지 모두 B급의 전형이었다. 거기에 펭수 인형옷을 입은 연기자의 발성과 입담이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2030 세대에게 재미와 위로를

펭수의 인기엔 사회상도 반영됐다. 펭수 신드롬의 출발은 ‘EBS 아육대’였다. 뽀로로, 짜잔형, 번개맨, 뚝딱이 등 EBS 캐릭터들이 운동회를 연다는 설정이었는데, 순수하기만 했던 EBS 캐릭터들이 여기선 선후배 위계질서를 따지며 현실적인 모습을 보였다. 펭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항의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이 전복적인 쾌감을 주면서, 막 사회에 진입한 2030 세대가 공감했다.

사회에 처음 진입하면 비로소 위계질서의 공고함을 실감한다. 어렸을 땐 그냥 우스운 ‘꼰대’라고 여겼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그들이 무서운 ‘갑’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장님은 쳐다보기도 힘든 하늘 같은 존재다. 그 수직적 질서 속에서 세상 무서운 걸 알고, 순응을 배워가는 세대가 2030이다. 넘어선 안 되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회적 선을 배워가는 것이다.

그런데 펭수는 선을 넘나든다. 하늘 같은 PD를 로드 매니저처럼 부린다. 노동 조건이 마음에 안 들면 즉시 PD를 질책한다. 펭수 하극상 행각의 결정판은 사장 호출이다. “참치는 비싸, 비싸면 못 먹어, 못 먹을 땐 김명중”이라는 식으로 EBS 김명중 사장을 돈줄 취급한다. MBC에 가선 “최승호 사장님. 밥 한 끼 합시다”라고 했다. EBS에서 잘리면 KBS로 가겠다고 엄포도 놓는다. 이렇게 선을 넘는 불량함이 이제 막 선의 무서움을 알게 된 2030 세대에게 통쾌한 대리만족을 준 것이다.

위아래 구별 없는 펭수의 언행이 2030 세대의 수평적 의식과 맞아떨어졌다. 요즘 2030 세대는 사회 기득권에 짓눌려 있지만 동시에 앞세대보다 자신감도 크다. “못하는 걸 못 한다”는 펭수의 자신감이 2030 세대와 공명했다. 또 펭수는 “나는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고 하지 않습니다. 힘든데 힘내라면 힘이 납니까?”라는 식으로 위로의 말도 전해 준다. 불량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따뜻한 언행이 2030 세대를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펭수는 올해 최대 신드롬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이다. 잘 만든 유튜브 캐릭터가 스타의 파괴력을 넘어서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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