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제도는 어떻게 로또가 됐나
  • 홍춘욱 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3 08:00
  • 호수 156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잣집 막내아들을 위한 신혼부부 특별공급

최근 30대의 주택 매수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8월25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연령별 월간 아파트 매매자료’에 따르면 8월 서울 전체 아파트 매매(8586건) 중 30대 거래량은 2608건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4개월간 1위를 지켜왔던 40대의 거래 건수는 이달 2495건에 그쳐, 30대에 밀려났다.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201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시장에서 50대 이상의 장년·노년층이 주된 매수 세력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이 작성한 ‘최근 5년간 연령대별 아파트 구입자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아파트 구입자 중 60세 이상은 11만2036명으로 2011년(7만1254명)보다 57.2% 급증했다. 이 같은 통계는 60대 이상 연령층은 노후생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갖고 있던 주택을 대거 매도해 주택 가격을 끌어내린다는 기존 주장을 뒤집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저금리’ 때문이다. 정책금리가 1%대로 떨어짐에 따라 은퇴 연령에 도달한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가 부동산을 처분해 예금에 가입하는 식의 노후 설계가 어려워졌다. 따라서 상당수 베이비붐 세대는 주택을 처분하기보다 보유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중소형 주택을 구입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즉 이자소득자가 아닌 임대사업자가 되는 길을 선택한 셈이다.

현재의 청약제도는 평범한 30대가 사실상 원천 배제됐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 시사저널 고성준
현재의 청약제도는 평범한 30대가 사실상 원천 배제됐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 시사저널 고성준

30대가 아파트 매입 주역으로 변신한 이유

베이비붐 세대가 주택 매수자로 떠오른 두 번째 이유는 ‘주택 구입 부담의 하락’ 때문이다. 2010년 이후 서울 등 핵심지역 주택 가격의 조정이 나타난 반면, 대출금리의 하락이 출현함으로써 장년·노년층의 임대용 주택 구입 부담을 낮추었다. 실제로 주택금융공사가 측정하는 ‘주택구입부담 지수’는 2015년을 전후해 역사적인 저점 수준에 도달한 바 있다.

주택시장의 주된 매입 세력이던 장년·노년층을 대신해 30대가 대거 아파트 매입에 나선 것은 청약제도를 통한 주택 마련의 어려움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무주택자의 당첨 확률을 높이고자 투기과열지구 내 전용 84㎡ 이하 중소형 면적에 대해 100% 가점제를 시행하면서 부양가족 수가 적고 무주택 기간이 짧은 30대의 당첨 확률이 현저히 낮아졌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10월31일 당첨자를 발표한 서울 동작구 ‘이수 스위첸 포레힐즈’의 당첨자 평균 최저 가점은 58.5점을 기록했다. 반면 3인 가족 기준, 30대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가점은 52점에 불과하다. 청약 가점은 무주택 기간(32점), 부양가족 수(35점), 청약통장 가입기간(17점) 등 총 84점으로 구성된다. 무주택 기간은 만 30세 전에 결혼한 경우를 제외하면 만 30세부터 산정된다. 3인 가족 기준으로 만 30세부터 무주택자인 경우 통장에 가입해 만점을 받아도 52점을 넘어설 수 없다.

결국 최근 30대가 주택시장에서 주된 ‘매수 세력’으로 변신한 것은 현재의 청약제도가 지닌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민간택지도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며 앞으로 주택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늘어난 것도 30대의 주택 매수 열기를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즉, 기약 없는 신축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구축 아파트 시장으로 이동하는 30대가 늘어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부가 그토록 붙잡고 싶어 하는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멈추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품은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결혼한 지 7년이 안 된 30대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이하 ‘특공’)이라는 ‘대안’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신혼부부 특공은 경쟁률이 세 자릿수에 달할 뿐만 아니라, 조건도 비현실적이어서 항간에서는 ‘부잣집 막내아들 특공’이라고 부른다.

신혼부부 특공은 우선 혼인신고한 날로부터 만 7년 이내의 부부 중 전 세대원이 무주택자이면서 부부 합산 소득이 전년도 기준으로 도시 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00%, 맞벌이의 경우 120% 이하를 충족해야 신청할 수 있다. 2018년 3인 이하 가구의 평균 소득은 세전(稅前) 540만1814원(맞벌이 648만2177원)이니 연봉으로 계산할 경우 외벌이는 약 6500만원, 맞벌이는 합산해 약 7600만원 이상이면 신혼부부 우선공급을 신청할 수 없다.

그런데 현재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 연봉이 평균 3200만원 정도이고, 요새 결혼들을 늦게 하니 결혼할 당시의 연봉은 당연히 더 올랐을 것이다. 결국 대졸자들끼리 맞벌이를 하면 소득 구간을 훌쩍 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최근 분양하는 아파트 가격은 아무리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한다 해도 꽤 높다.

예를 들어 7억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는다고 가정하고, 결혼과 동시에 만 7년 동안 열심히 벌어 아이도 한 명 낳고 부부 합산 소득이 월 600만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치자. 소득의 절반만 쓰고 7년을 모은다 해도 자산이 2억600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럼 7억원짜리 아파트에 청약하려면 얼마나 대출받아야 할까? 그리고 대출은 어떻게 갚아 나갈 수 있을까?

제도의 취지를 생각할 때 상식적이지 않은 설계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결국 이 제도로 누가 혜택을 볼 수 있을까?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자산이 있는 부잣집 아들이나 혜택을 보는 특공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주택 공급 확대가 현실적 대안

이제 마지막으로 해결책에 대해 살펴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결책은 청약 가점제의 비중을 줄이는 한편, 추첨제를 확대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로또 아파트’ 광풍이 불 수 있기에, 오히려 부동산 매수 열기를 더욱 높일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현실적인 대안은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뿐이다. 주거용 건축물 착공은 2015년을 고비로 급격히 줄어듦으로써 ‘신축주택’이 날이 갈수록 희소해질 것이라는 전망을 높이고 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서울 등 핵심지역에 임대주택을 건설하고, 재건축 및 재개발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전환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