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반환점 돈 文] 역대 정권들 후반기 어땠나
  • 차윤주 정치전문 프리랜서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1 08: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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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반 토막 난 임기 반환점 지지율…역대 정부 실패 극복하려면

‘전고후저(前高後低)’.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재임 중 국정 지지율 추이를 보면 집권 전반기와 후반기에 나타난 이런 패턴에는 예외가 없었다. 역대 어떤 대통령도 집권 후반기 들어 지지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11월9일로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이제 남은 임기 2년6개월을 시작하는 새로운 지점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앞둔 10월 다섯째 주(29~31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전주 대비 3%포인트 올라 44%를 기록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지지율 조사(한국갤럽 2017년 6월 1주 조사)에서 역대 최고 기록인 84%로 임기를 시작했다. 문 대통령의 현재 임기 반환점 국정 지지율은 역대 정부와 비교해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하락폭이 어느 정부보다 크고 반등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다.

그간 등락 추이에서 보듯 북핵을 위시한 한반도 정세와 민생경제 분야가 지지율 반등 요인인데, 딱히 모멘텀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미국과의 관계는 물론, 중국·일본과의 외교 상황이 엄중하고, 마땅한 경제 성장동력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조국 사태’에서 확인한 인사 난맥상은 커다란 숙제로 남았고, 지지층의 검찰 개혁 요구도 거세다. 다음 총선에서 여당 의석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국정운영 동력이 급격히 꺾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3월 취임 첫 조사에서 비교적 낮은 42% 지지로 국정운영을 시작했다. 그해 9월 G20 정상회의 참석 직후 기록한 67%(9월 2주)가 집권기간 최고치다. 박근혜 정부 전반기는 정상외교 성과와 북한 도발에 단호한 대처를 보일 때 호의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특히 2013년 4월 북한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 맞서 공단 폐쇄를 결정한 뒤 국정 지지율이 50%(2013년 5월 1주)로 오르며 반등을 기록했다.

朴 반환점 지지율 36%, MB는 49%

그러나 취임 2년 차 세월호 참사(2014년 4월)로 지지율이 40%대로 주저앉은 뒤 이후 회복하지 못했다. 국무총리 연쇄 낙마 파동에 이어 2015년 초 ‘정윤회 문건’으로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이 처음 불거졌고,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덮치면서 지지율은 30%대로 곤두박질쳤다. 임기 반환점인 2015년 2분기 당시 국정 지지율은 36%를 기록했다.

박근혜 정부는 역대 어떤 정부보다 임기 반환점을 의식한 일정이 많았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6월말~7월초 4차례 ‘핵심개혁과제 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했고, 8월6일 ‘경제재도약을 위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최우선 국정과제였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고삐를 쥐고, 노동·금융·교육·공공 분야에서 ‘4대 개혁’을 완수하겠다며 임기 후반 국정 장악력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임기 반환점 당일인 8월25일엔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을 찾아 경제 살리기 의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후반기의 국정운영은 이런 의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결국 2016년 4월 20대 총선이 여당인 새누리당의 패배로 막을 내리며 권력 누수가 본격화됐다. 탄핵 결정을 앞두고 마지막 국정 지지율 조사(2016년 12월)에서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한 국민은 12%뿐이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실체가 드러난 뒤에도 폐쇄적인 통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국민 다수가 등을 돌리고, 이는 결국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으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3월 취임 후 첫 지지율 조사에서 52%로 과반을 조금 넘긴 채 시작했다. 하지만 임기 초반 각종 돌발 악재에 시달렸는데, ‘미국산 소고기 파동’이 대표적이다. 취임 1년 차 2분기 지지율이 21%를 기록하며 다른 정부의 임기말 수준에 근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발 경제위기가 터졌고,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사건으로 극심한 혼란이 이어졌다.

초반 악재가 워낙 많았던 탓인지 오히려 임기 반환점 상황은 비교적 평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교적 무난히 극복했다는 평가로 국정 2기를 앞둔 지지율은 취임 당시 수준으로 올라섰다. 임기 반환점인 2010년 2분기 지지율은 49%로 역대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 중 가장 높다. 임기 4년 차인 2011년 상반기까지 40%대 지지율이 유지됐지만, 역시 임기말 하락세엔 속수무책이었다.

집권 후반기, 한반도 대운하에서 ‘4대강 살리기’로 이름을 바꿔 추진한 정부 핵심사업 논란이 커지고, 지지율 상승을 견인했던 자원외교 허상이 차츰 드러나기 시작했다. 친형 이상득 의원 등 한나라당 내 친위부대였던 친이계 정치인들이 몰락하고,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현직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레임덕이 본격화됐다. 집권 4년 차 저축은행 사태 등과 맞물린 친인척·측근 비리, 내곡동 사저 논란 등으로 이 전 대통령은 지지율 23%로 임기를 마무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국정 지지율 출렁임이 가장 심했다. 역동적인 선거 과정을 거쳐 새로운 대한민국의 여망을 안고 출범했지만, 임기 내내 극심한 정쟁으로 격랑이 몰아쳤다. 참여정부 취임 첫해인 2003년 1분기 지지율은 60%로 무난한 출발이었다. 하지만 2분기 지지율 40%, 3분기 29%, 4분기 22%로 1년 만에 급전직하했다. 여소야대 구조에서 의회와의 갈등이 유례없이 컸는데, 친정인 민주당마저 대통령의 우군이 되지 못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취임 6개월 만인 2003년 9월 민주당을 탈당했다. 임기 1년 만인 2004년 3월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는 사태를 맞았다.

노무현 정부, 탄핵소추·연정 등 격랑 거치며 60%→34%

야당인 한나라당의 탄핵 시도는 역풍을 몰고 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신생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제1당으로 만들었고 국정 지지율도 회복세를 보인다. 하지만 그해 10월 신행정수도 건설 위헌 판결과 함께 부동산 가격 폭등, 북핵 위기, 금융시장 불안 등 혼란은 계속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대연정’ 제안으로 또 한 번 승부수를 띄웠지만 정치권의 논쟁만 키웠다. 임기 반환점 지지율은 34%로 좋지 못했고, 이후에도 큰 폭의 변동을 보이다 퇴임을 앞둔 마지막 지지율은 27%로 끝났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한 국정 지지율 마지노선을 30%로 본다. 역대 정부를 보면 임기 반환점에 이미 상당히 지지율이 떨어지고, 집권 후반기 임기 종료 시점에는 그보다 더 낮아지는 지지율을 막지 못했다. 즉 임기 반환점 시점에서 보이는 새로운 국정운영에 대한 청사진이 국민들의 공감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하는 패턴을 반복한 셈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정 지지율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락하기 마련이고, 문재인 정부도 40%대 박스권을 유지하다 (후반기에) 필연적으로 더 하락할 것”이라며 “그래도 역대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심기일전해 국민적 요구를 다시 귀담아듣고 시대 과제를 완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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