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반환점 돈 文] ‘청와대 정부’는  계속된다
  • 유지만·구민주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1 08: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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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반환점 돈 문재인 정권 집권 후반기엔 암초 더 많아
“지금 청와대에는 김현종·윤건영밖에 안 보인다” 쓴소리

“국민의 요구는 제도에 내재된 합법적인 불공정과 특권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내자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지도층일수록 더 높은 공정성을 발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공정’을 강조했다. 얼마 전까지 국정 전반을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사태에 대한 입장으로 해석됐다. 한편으로는 집권 후반기에 정국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사회 ‘공정’의 가치를 완성하려면 결국 개혁 과제를 성공시키는 것밖에는 없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승리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한 지 벌써 2년6개월이 지났다. 지지율은 예전같지 않다. 한때 80%를 웃돌았던 국정수행 지지율은 임기 절반에 다다른 현재 40%대로 떨어졌다. 출범 당시 워낙 이례적으로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반 토막이 난 셈이다. 집권 초기부터 추진했던 개혁 동력을 잃은 것 아니냐는 걱정도 곳곳에서 나온다.

문재인 정부 집권 전반기를 표현할 때 ‘청와대 정부’가 곧잘 회자된다. 청와대가 사실상 당정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만기친람형’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다 챙기다 보면 정부 실무 부처와 청와대 참모들은 가려지게 되고, 여당은 대통령 뒤에 숨게 된다. 임기 절반을 소화한 문재인 정부의 집권 후반기 상황은 과연 달라질까.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함께할 파워 엘리트로는 어떤 인물들이 떠오르고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당시부터 ‘공정’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위기도 결국 이 말에서 비롯됐다. 임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정권 최대의 부담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사태에서 비롯됐다. 조 전 장관의 임명에는 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8월7일 조 전 장관을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한 뒤 여러 의혹이 불거지면서 진보진영 일각에서조차 조 전 장관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상당히 고심했지만, 결국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이 문제는 주변의 선택이 아니었다.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최적임자로 조 전 장관을 선택했다. 대통령의 뜻이 확고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임종석 실장보다 더 존재감 없는 노영민 실장

결과적으로 조 전 장관은 법무부 장관에 앉긴 했지만, 거듭되는 가족에 대한 수사 상황을 견뎌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조 전 장관은 검찰 개혁을 위한 신속 과제를 선정한 직후 법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결과적으로 국민 사이에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다”는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

조 전 장관의 임명과 사퇴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문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평소 주변의 얘기를 경청하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지만, 특정 문제에 있어서는 유독 고집스럽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노무현 정부 시절 문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문 대통령에 대해 “고집스러운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조 전 장관 사퇴 후 법무부 장관은 아직까지 공석이다. 현재 검찰 개혁과제는 문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다. 문 대통령은 조 전 장관 사퇴 직후 장관 직무대행인 김오수 법무부 차관과 이성윤 검찰국장을 불러 검찰 개혁 추진 상황을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의 의지는 10월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드러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경제’를 29번, ‘공정’을 27번 언급했다. 국정과제의 최우선 순위는 경제문제에 있지만, 공정을 이루기 위한 개혁 작업도 놓칠 수 없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하반기 국정운영도 결국 청와대가 주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 한 관계자는 “물론 총선 결과가 중요하겠지만, 청와대가 사실상 국정 전반을 리드하는 상황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청와대는 곧 문 대통령을 의미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현재 청와대 내에 사실상 국정운영을 주도적으로 이끌 인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은 문 대통령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 후임인 노영민 비서실장은 당초 청와대 조직 관리 측면에서 주목됐던 인사였다. 하지만 사실상 ‘그림자’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며,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실제 이번 조국 정국에서 노 실장의 존재감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나마 ‘기강 잡기용’이라는 평가조차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버럭’한 강기정 정무수석의 돌출행동으로 머쓱해지고 있다. 

 

실세로 통하는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의 총선 출마설

대야(對野)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강기정 정무수석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개혁과제를 추진하려면 야당과의 협상은 필수적인데, 이를 조율해야 할 정무수석이 오히려 전면에 나서 야당과 싸움을 하는 형국을 만들며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 급기야 이낙연 총리가 나서 강기정 버럭 사태에 대해 사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김광진 정무비서관 임명에 대해서도 뒷말이 많다. 강성 이미지에 국회의원 경력이 짧은 김 전 의원을 정무비서관에 임명하면서, 여당 내에서도 “정무라인을 가동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권력기관을 총괄하는 민정수석에도 비검찰 출신인 김조원 수석이 앉으면서 역시 존재감 ‘제로’인 상태가 됐다. 김 수석은 청와대에서 임명 제안이 있을 때 몇 차례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출신도 아닌 데다 감사원 외에는 사정기관 관련 경력이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최근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업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여당 내 중진의원실 관계자는 “민정라인은 청와대의 척추나 다름없는데, 기능 자체가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이래서야 어떻게 청와대의 의지가 부처에 전달될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권 후반기에도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당과 정부가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 내에서는 일하는 사람, 나서는 참모가 없는 형국이다.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에도 국정운영의 고삐를 바짝 조이려고 하지만, 힘 있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인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야당 내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불통이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설득 없이 개혁과제를 진행하려는 문 대통령의 고집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재 청와대나 집권여당은 야당을 제대로 대우조차 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협치를 논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지금의 청와대에서 주목되는 인물은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과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이다. 현재 정부와 청와대 요직 중 큰 교체 없이 가는 보직이 바로 외교·안보 분야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은 모두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교체 없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실세는 이들 3인이 아닌,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김현종 2차장이 꼽힌다. 통상 전문가가 안보를 담당하는 안보실로 자리를 옮긴 데는 경제와 통상 분야에 더욱 힘을 실어주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 특히 한·일 무역갈등 과정에서 김 차장의 주장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대미(對美), 대일(對日) 외교 등에서 자주성을 강조하는 강성이었다. 다소 직설적인 성격으로 강 장관과 마찰을 빚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능력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자타 공인 최고의 인물 중 하나라는 평가다. 김 차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임도 상당히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광흥창팀’의 실무를 담당했던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은 정부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청와대에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국정기획상황실장 자리가 원래 청와대 각 부처 실무자들의 소통 창구 역할인 탓에 임종석 전 비서실장 때도 실세는 윤건영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문 대통령 핵심 측근으로 통하는 3철(이호철·전해철·양정철) 등 장외 친문 인사들과 문 대통령을 연결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문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 두텁다 보니 당정은 물론 청와대 내부에서도 오히려 다른 사람 눈치는 안 봐도 윤 실장 눈치는 본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최근 윤 실장의 총선 출마설이 불거졌다. 2016년 총선 때 불출마 선언을 했던 그는 이번에는 출마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반기 대통령 측근·친인척 비리 조심해야”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임기 후반 국정운영의 가장 큰 장애는 측근과 친인척 비리가 될 수 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집권 후반기에 측근 비리와 대통령 일가 관련 비리 의혹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는 문민정부였던 김영삼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모두 다르지 않았다.

아직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 역시 대통령 측근에 대한 수사라는 점에서 현 정권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최근 검찰에서는 조 전 장관의 청와대 민정수석 재임 시절과 관련된 의혹까지 전방위적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 전 장관이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권력을 행사한 사안이 나온다면, 또다시 국정운영은 차질을 빚게 된다. 국회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후반기인 데다 선거 국면이 있기 때문에 어디서, 어떤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인 것은 맞다”고 걱정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을 통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 비리를 방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박근혜 정부 이후로 청와대 특별감찰관이 아직 공석이라는 점에서 부패 감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그나마 도덕적 우월성은 인정받았는데 ‘조국 사태’로 그것마저 무너졌다”며 “앞으로 인사 문제 등에서 또 문제가 생긴다면 정말로 해 질 녘에 산길에 들어서는 형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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