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김경수 지사, 1조 경제혁신특별회계 공약 사실상 폐기
  • 부산경남취재본부 이상욱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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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제조업은 부진…내년 확장 재정으로 지방채 2570억 발행

박성호 경남부지사가 11월7일 경남도청 브리핑룸에서 "내년 예산안 9조4748억원을 편성해 도의회에 제출했다. 올해보다 1조2181억원이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다"고 말했다. 예산 편성 실무 책임자인 부지사가 '증가'와 '역대 최대'라는 말을 겹쳐 사용했지만, 경제혁신특별회계 조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1년 전에도 그랬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연합뉴스
김경수 경남도지사 ©연합뉴스

김경수 경남지사의 '2호 공약'으로 불리는 1조원 경제혁신특별회계 조성이 사실상 폐기됐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지만, 김 지사가 경남의 제조업을 살리겠다면서 집중 홍보했다는 점에서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2018년 이 공약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김 지사가 일단 취임하면 경남의 제조업이 회생할 것으로 예견했었다. 김 지사는 선거 출정식에서 '경남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히며 "위기에 빠진 경남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제조업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 지사 임기 동안 경제혁신특별회계 1조원을 조성해 경제혁신사업에 투입한다"고 확언했다. 당선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도 "4년간 조성하는 1조원 경제혁신특별회계는 연간 2500억원을 기존 예산과 별도로 확보한다"고 했다. 지사 직속의 경남경제혁신추진단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이 공약은 경남도의 검토 단계에서 유야무야 돼버렸다. 그 돈을 일반회계에서 만들면 된다는 경남도의 답변만 돌아왔다.

그렇다면 김 지사가 선거 중에 발표한 1조원 경제혁신특별회계 조성 공약은 어떻게 되는가. 지난해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이 공약은 김 지사가 승리한 결정적 배경의 하나로 꼽힌다. 야당도 표심에 영합하느라 경제살리기 공약을 내걸었지만, "힘있는 여당을 밀어줘야 한다"는 김 지사의 외침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조원 경제혁신특별회계 조성을 안 하는 게 경남도 방침이라면, 김 지사의 말을 믿고 찍어준 유권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최근 경남의 제조업은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3분기 제조업에서 일하는 창원의 근로자 수는 10만8398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11만814명)과 비교해 2416명 줄었다. 비율로 따지면 1년 새 고용인원이 2.2% 줄어든 것이다. 분기별로 살펴보면 작년 4분기 11만1201명을 기록한 이후 3분기 연속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부터 분기당 1000여명씩 줄어들고 있다. 전년 동기 대비 감소율도 0.7(1분기)~2.2%(3분기)로 상당히 가파른 편이다.

또 지난 8월 중 경남의 중소기업 평균가동률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9% 하락했다. 8월 제조업생산능력 지수는 전년대비 6.9% 감소했다. 8월 제조업 설비투자실적 BSI는 92로 전월에 비해 1포인트 하락했다. 경남 경제의 핵심인 제조업의 생산 기반이 광범위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경남도는 확장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내년에 지방채 2570억원을 발행한다. 만약 김 지사가 공약대로 1조원 경제혁신특별회계 조성했다면 "내년 지방채를 발행하더라도 경남도의 채무비율은 약 8%로 재정건전성이 전국 시·도 중 최상위 수준이다"란 발언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공약은 유권자들에게 한 약속으로, 후보를 지지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1조원 경제혁신특별회계 조성은 지난 경남도지사 선거 때 유권자들의 표심을 상당히 자극한 공약으로 꼽힌다. 그래서 공약은 지켜야 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국가재정 등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지킬수 없다면 폐기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룰은 지켜야 한다. 경남 도민들이 공약을 폐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선거공약으로 채택할 때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 있는 인사가 사과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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