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때 진해 웅천 가마터서 빼앗아간 ‘찻사발’ 日국보로 대접”
  • 부산경남취재본부 김완식 기자 (sisa512@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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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인, 해마다 정유재란때 일본에 끌려간 웅천도공 125명 추모행사
복원‧체험공간 확보 관광자원으로 개발로 도예인‧차인 ‘성지’ 삼아야

“일본 교토의 다이토쿠지(大德寺)에 보관 중인 ‘기자에몬 이도다완’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 곳 웅천 도자기 가마터에서 빼앗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진상한 찻잔입니다. 현재 일본 국보 제26호로 봉인돼 있습니다. 조선 찻사발의 가치와 그 아름다움이 부각된 것은 우리나라에서가 아니라 차(茶)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라니 기막힌 일입니다.”

지난 11월9일 창원시 진해구 두동 보배산 기슭 옛 가마터에서 진행된 ‘웅천 선조 도예인 추모제’를 진두지휘한 ‘웅천 찻사발 전승 보존연구회’ 최웅택 회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올해 20회를 맞은 추모제는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인 1598년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간 진해 웅천의 도공 125명을 추모하고, 웅천 찻사발 전통문화의 맥을 잇기 위해 해마다 해오고 있다. 

웅천 선조 도예인 추모제에서 망국의 혼이 된 선조 도예인을 위로하는 려무용단의 헌무를 스님들이 지켜보고 있다. ©시사저널 김완식
웅천 선조 도예인 추모제에서 망국의 혼이 된 선조 도예인을 위로하는 려무용단의 헌무를 스님들이 지켜보고 있다. ©시사저널 김완식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추모행사는 정치인과 유명연예인, 관광객 등이 대거 참석해 거창하게 진행됐으나 이번 행사는 도예인과 스님, 예술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진행됐다. 진혼곡으로 시작된 추모제는 해원사 해암스님과 일월암 혜광스님, 간음사 혜광 스님의 추모의식에 이어 망국의 혼이 된 선조 도예인을 위로하는 무용단의 헌무와 지역 차인들의 헌다, 헌화로 넋을 기렸다. 

 

임란 당시 조선 백자 ‘다완’, 작은 성 하나와 거래될 정도 인기

사기장(沙器匠‧사기그릇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인 최 회장은 “억울하게 일본으로 끌려가 불귀의 혼이 된 125명의 도공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론 선조 도공들이 작업한 현장에서 찻사발을 재현해보는 것을 남은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선 다도(茶道)가 유행해 다이묘 사이에선 질 좋은 조선 백자 다완(茶碗·찻잔)이 조그마한 성(城) 하나와 거래될 정도였다. 조선 도공(陶工)이 임진왜란 때 납치 표적이 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인 지난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령을 받은 히라토 영주 마츠우라 시게노부 등은 웅천현 보배산 기슭의 웅천가마터 일대에서 도자기를 굽던 사기장과 그 가족을 포함해 125명이 일본 히라토 섬으로 납치했다.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1600도 이상의 불을 지펴 도자기를 굽는 기술이 없어 조선에서 끌려간 사기장들이 일본에 그 기술을 전수했다. 그러면서 메이지유신 이후 문호를 개방한 일본이 도자기를 해외에 팔아 국부를 쌓으면서 주변국 침략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 2002년 이곳 웅천도요지를 발굴 조사한 결과 모두 6기의 가마터가 확인됐으며 분청사기와 회청사기, 백자, 옹기, 이도류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이 가운데 이도류는 도요토미가 가져간 이도다완의 원류라고 최 사기장은 설명했다. 

최 회장은 “웅천 찻사발의 재조명은 우리 선조 도예인들을 통해 오늘날에 전해 내려오는 전승 기법을 계승하고, 이를 발판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도예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웅천선조도공추모제’와 ‘웅천 찻사발 축제’를 통해 웅천도요지와 웅천 찻사발이 세상에 더욱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웅천도요지 전시관’은 최근 들어 새로운 역사·예술·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지만 1단계 사업에 거치고 있어 2, 3단계 연계사업이 따라야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6‧7대 경남도의원을 지낸 김종열 전 도의원(진해구)은 “웅천도요지 개발전 일본 도예 사학자인 하야시세이죠 국립박물관 관장 등 일본의 유명 도예 사학자들이 웅천가마터를 찾아 관심으로 보이면서 가마터를 방치하고 있는 것을 지적해 낯이 뜨거웠다”면서 “웅천의 조선도자기를 체계적으로 발굴‧복원해 후손에 넘겨줘야한다는 필요성이 가슴을 강하게 파고들었다”고 회상했다.

웅천도요지 사업은 2001년에 국·도비 123억 원의 예산확보하면서 본격화 됐다. 김 전 도의원은 웅천가마터 복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중앙정부를 향해 웅천도요지 복원과 개발을 줄기차게 요구한 결과였다. 문화관광부도 웅천도자기 가마터가 아시아 도자기의 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고, 웅천가마터를 발굴하면 한국과 일본의 도자사의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본 것이다. 

사기장인 최웅택 웅천 찻사발 전승 보존연구회장이 ‘웅천 선조 도예인 추모제’에서 헌다를 하고 있는 모습. ©시사저널 김완식
사기장인 최웅택 웅천 찻사발 전승 보존연구회장이 ‘웅천 선조 도예인 추모제’에서 헌다를 하고 있는 모습. ©시사저널 김완식

웅천도요지 개발사업 1단계에서 멈춰…“관광자원 활용 경쟁력 충분”

그 후 통합 창원시는 2011년 11월에 복원 사업을 완료하고, 1단계 사업으로 웅천도요지 전시관을 개관했다. 전시관은 지상 2층, 건축면적 1015㎡ 규모에 1층은 영상·전시실과 뮤지엄숍이, 2층에는 수장고와 사무실 등이 있다. 또 야외 체험시설은 전시관 인근에 관광객 체험동, 건조장, 장작적치장, 재현 가마 등 4곳의 야외 체험시설과 전통 막사발 재현 가마 1개소도 운영 중이다. 

김 전 의원은 1단계에 이어 2, 3단계 사업으로 두동 보배산 기슭의 웅천 가마터를 중심으로 20만평(약 660만m²)을 500여년 전 조선시대 도예인과 서민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개발하자는 사업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진해시가 창원시로 통‧폐합 되고 김 전 도의원도 진해시장으로 나서는 바람에 웅천도요지 관련사업이 추진동력을 잃어버렸다. 통합창원시는 2012년부터 민간 투자자 공모를 거쳐 도예촌 조성 등 2단계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민간 투자자가 나서지 않고 있고, 진해시가 창원시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업무 연속이 없어지고 자료가 사라지는 등의 이유로 2단계 사업이 진행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김 전 도의원은 “수많은 일본의 학계와 조선 도공의 후예 일본인을 비롯한 차인, 관광객들이 웅천도요지를 찾고 있는데, 개발사업은 멈춰섰다”고 지적하면서 “지금부터라도 경남도가 중심이 돼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도자 교류 역사를 이해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웅천의 조선도자기의 우수성은 일본에서도 증명된 만큼 도자기 복원‧체험공간을 확보하고, 보배산 기슭을 개발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창원시 진해구 두동면에 위치한 웅천도요지 전시관. ©창원시
창원시 진해구 두동면에 위치한 웅천도요지 전시관. ©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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