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간 日 수출규제에 취약한 산업·무역구조 극복 못한 게 문제”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0 10:00
  • 호수 157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이창민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

“이번 기회에 정부나 우리 국민들은 아주 차가워질 필요가 있다. 불매운동이 가슴을 뜨겁게 할 수는 있어도, 속은 시원하게 할지 몰라도 일본에 타격을 주는 방법은 아니다. 또 사실 일본에 타격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 사안의 핵심이 아니다.”

열변을 토할 거라 예상했던 젊은 학자는 아주 차분했다. 신중한 답변 속에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짚어볼 수 있는 ‘적임자를 제대로 찾아왔다’ 싶었다. 이창민 교수는 일본 도쿄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의 한 대학에서 조교수를 거쳐 지금의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에 둥지를 틀었다. 《아베 시대 일본의 국가전략》(공저) 등의 책을 썼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그 효과를 어떻게 보나.

“불매운동 그 자체는 명백히 효과가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매운동의 주요 대상은 맥주, 자동차, 유니클로 그리고 관광 등이다. 하나씩 정리해 보자. 한국은 일본 맥주 수출시장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큰 시장인데, 수출규제 이후 수입이 90% 이상 감소했다. 문제는 일본 맥주의 내수 규모다. 상위 5개 맥주회사의 일본 내 매출액은 연간 3조 엔 이상이다. 반면 수출액은 130억 엔에 그친다. 수출액이 내수의 0.5% 정도도 되지 않는 것이다.”

몰랐던 사실이다. 다른 부분은 어떤가.

“일본 자동차는 작년 8월 한국에서 3200대가 팔렸는데 올해 8월에는 1400대 정도로 줄었다. 무려 1800대가 줄었다. 문제는 일본 자동차회사들이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완성차가 매년 3000만 대(국내 1000만 대, 해외 2000만 대)에 달한다는 점이다. 한국 수출의 의미가 일본 입장에서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이다. 일본 여행도 분명 눈에 띄게 줄었다. 한 달에 60만 명씩 가던 흐름이 수출규제 이후 30만 명 수준으로 절반이 줄었다. 특히 규슈처럼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곳은 타격이 크다. 그런데 일본을 찾는 다른 나라 관광객은 늘었다. 중국인이 대표적이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한국인이 1인당 7만~8만 엔 정도 쓴다면 중국인은 1인당 25만 엔 이상 지출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불매운동이 일본의 전체 여행수지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불매운동이 일본 경제에 유의미한 변수가 아닐 수도 있겠다.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일본한테 무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본의 무역관계에 있어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불매운동이 일본의 수출과 관광수지 등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있었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하나씩 보자. 일본은 원래도 내수 중심의 국가였지만 과거보다 무역의 중요성은 더 감소하고 직접투자 비중은 늘어났다. 최근 일본은 무역수지 적자가 고착화되는 상황임에도 경상수지는 항상 흑자를 기록한다. 엄청난 규모의 소득수지 흑자가 있다는 뜻인데, 이는 일본이 해외순자산 세계 1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즉 일본 기업들은 현재 수출보다 적극적인 해외 진출, 특히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직접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러한 해외 생산 거점에서 벌어들이는 소득, 즉 배당과 로열티 등이 소득수지 흑자로 일본으로 다시 들어오고 있다.”

일본 무역에서 한국은 얼마나 중요한가.

“한국은 일본에 있어 수출상대국 3위(7.1%), 수입상대국 5위(4.3%)다. 주요국 중 하나다. 하지만 중국과 미국 두 나라가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일본의 무역상대국으로서 중요도가 굉장히 크다고 보기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일본에 한국은 수입보다 수출시장이라는 측면이 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불매운동의 효과를 잘 따져봐야겠다.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재화의 대부분은 중간재와 자본재다. 90% 정도를 차지한다. 소비재는 10% 미만이다. 결국 맥주와 자동차, 유니클로 등은 10% 이하의 소비재 중 몇몇 제품이다. 불매운동의 효과가 크려면 중간재나 자본재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중간재와 자본재를 불매하면 우리의 피해가 더 클 것이다. 결국 현실적으로 할 수 있고, 또 가시적인 효과도 큰 소비재 불매운동을 한 것인데 전체 규모 면에서 일본 경제에 타격을 줄 정도가 아니라는 게 제 결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냉정하다 못해 정말 차가운 계산을 해야 한다. 문제는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55년 가까이 이런 취약한 산업·무역 구조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일본과 극적인 화해를 이끌어낸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 경제에 큰 의미를 갖지 않는 산업구조와 기술력,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한·일 관계에 있어 일본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한다. 명분 싸움이나 자존심 대결, 국내 여론에 휘둘린 감정적 대응은 자제하고, 또 정치적 타협으로 적당히 상황을 정리해서도 안 된다.”

정부가 핵심 소재와 부품 등을 일본에 의존한 일명 ‘가마우지 경제’ 구조를 탈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수출규제와 관련해 가장 큰 소득이 있다면 기업들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경쟁력 제고에 나서는 확실한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높은 기술력으로 소재·부품·장비를 만들어 중국이나 동남아에 수출하고 더 나아가 우리 기업들이 직접투자를 통해 유럽과 미국, 일본의 시장에 진출해 해외 생산 거점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은 적절했다. 무엇보다 기업들에 좋은 학습기회를 제공해 줬다.”

경제자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제일 필요할까.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한국은 공급사슬 관점에서 주요 산업이 필요로 하는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하고, 이를 수출산업화해야 하는 단계다. 중장기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글로벌 강소 전문기업을 만드는 일이다. 작지만 강한 기업이 국내 대기업에 소재·부품·장비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할 수 있는, 그런 기업들이 생겨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소재·부품산업을 고부가가치 기술집약형 산업으로 전환·육성하려면 규제완화가 핵심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20년 만에 소재·부품·장비 특별법을 전면 개정하는 것은 매우 반길 만한 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