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항마” 선언한 블룸버그의 난관은 본선 아닌 ‘예선’
  • 김원식 국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21 16:00
  • 호수 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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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발 들인 억만장자 블룸버그 바라보는 민주당 내 우려
자칫 혼란만 초래하고 모두 패배자 될 수도

“트럼프에 대한 해독제(antidote)” vs “혼란(panic)만 초래하는 패배자”.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뉴욕 시장을 역임한 마이클 블룸버그(77)가 최근 뒤늦게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 발을 들이자, 정치 평론가들이 각종 매체에 기고한 찬반의 핵심 내용이다. 10여 명에 이르는 대선 예비후보가 난립하는 와중에 블룸버그가 민주당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면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하지만 그의 출마가 가져올 결과를 놓고는 전망이 판이하게 갈린다.

올해 3월만 해도 2020년 대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블룸버그가 다시 레이스에 발을 담근 이유는 명확하다. 현재 민주당 대선 레이스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선두를 유지한 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그 뒤를 추격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들 세 후보가 내년 본선에서 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결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각종 가상 여론조사에서 가까스로 앞서곤 있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현 대통령에 대한 프리미엄과 트럼프 지지자들의 결집으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9월12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3차 TV토론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왼쪽부터)이 참석했다. ⓒ AP 연합
9월12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3차 TV토론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왼쪽부터)이 참석했다. ⓒ AP 연합

‘본선 경쟁력’과 ‘치명적 약점’ 상존

민주당은 원래 진보적인 화두가 이슈를 장악한다. 샌더스와 워런 상원의원의 추격 바람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도 지지율 1위는 여전히 중도 성향이 강한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키고 있다. 중도 외연을 확장해야 하는 본선에 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진보를 앞세우는 샌더스나 워런 상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가능성이 그만큼 작아지는 셈이다. 그렇다고 체질이 약한 바이든 후보가 공화당 지지자들의 표까지 가져올 가능성도 희박하다. 바로 여기에 블룸버그의 등장 공간이 존재한다. 트럼프는 따라올 수도 없는 약 62조원의 막강한 자산을 가진 성공한 사업가이자, 3선이나 뉴욕 시장을 역임한 그가 바로 현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수 있는 대항마라는 것이다. 즉, 본선에서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가 블룸버그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블룸버그의 등장이 오히려 민주당에 해악만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블룸버그는 뒤늦게 레이스에 발을 담그면서 초기 경선 지역은 포기하고 가장 규모가 큰 이른바 ‘슈퍼 화요일’(2020년 3월3일)로 불리는 지역부터 후보 등록을 시작했다. 그가 아이오와·뉴햄프셔·네바다·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바이든 전 부통령과 기존 후보들이 판세를 장악한 지역은 포기하고 ‘슈퍼 화요일’ 지역인 앨라배마와 아칸소에 후보 등록을 한 이유다. 이들 지역에서 승리해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그의 도박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블룸버그의 대선 출마 의지가 알려진 후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그는 민주당에서 단 4%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치며 6위에 머물렀다. 5위권에도 들지 못한 셈이다. 물론 아직 그가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았고, 초기 여론조사이기에 반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의 가상대결에서는 43%를 얻어 37%의 트럼프를 6%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샌더스 의원(5%포인트)이나 바이든 전 부통령(4%포인트)에 비해 근소하지만 그래도 더 센 본선 경쟁력을 확인한 셈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민주당 내에서 비호감도가 25%로 가장 높다는 점이다. 이는 진보적인 색채를 띠는 민주당의 ‘늙고, 백인이며, 남성 백만장자(old, white, male billionaire)’인 그에 대한 거부감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미 언론들은 분석한다. 쉽게 말해 블룸버그가 가진 본선 경쟁력이 오히려 민주당 내부 경선에서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와의 대결은 고사하고 그 전에 민주당 내부 경선에서 승리를 차지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 ⓒ AP 연합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 ⓒ AP 연합

‘슈퍼 화요일’ 경선 결과가 관건

블룸버그의 등장을 바라지 않는 민주당 전략가들은 더욱 심각한 문제로 중도를 표방하는 바이든 전 부통령과 지지층이 겹쳐 결국 표가 나뉘게 될 것을 우려한다. 바이든도 겉으로는 블룸버그의 출마 의지를 “환영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가장 비상이 걸린 곳이 바이든 대선 캠프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이럴 경우 오히려 바이든과 블룸버그는 동반 탈락하고 워런이나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를 자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샌더스가 “선거는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워런도 “내야 할 세금을 계산해 놓으라”면서 억만장자인 블룸버그와 차별성을 내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칫 트럼프와의 본선 경쟁력을 내걸고 등장한 블룸버그가 결국 민주당 내에서 막대한 혼란만 초래하고 그 자신도 패배자(loser)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뉴욕 시장 경력만이 아니라 유력 언론사인 블룸버그통신도 소유하면서 능수능란한 사업가 기질을 보여준 블룸버그도 나름대로 이러한 판세를 읽으면서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를 보인다. 그는 아직 2020년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공식 선언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지난주 앨라배마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등록 신청한 데 이어 11월12일에는 아칸소주에도 전용기를 타고 직접 방문해 대선후보 등록을 마쳤다. 일부에서는 그가 대선 출마는 공식 선언하지 않고 뒤늦게 몇 개 주에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등록만 하면서 이른바 ‘간 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후보 등록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여론을 떠본 다음 승산이 없는 것이 확인되면 바로 발을 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블룸버그 측근들이 대선 캠프에 참가할 전문가들 모집에 나섰다면서 그의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는 분위기다. 블룸버그 역시 본인이 직접 아칸소주로 날아가 후보 등록 신청을 한 다음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반드시 트럼프를 패배시켜야 한다”면서 출마 결심을 더 분명히 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 경선이 진행되면서 현재 예비후보들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승리할 수 없다고 경고해 왔다. 선거 분석가들은 막강한 재력을 가진 블룸버그가 공식 출마 선언에 이어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선다면, ‘태풍의 눈’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또 내년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도 승리를 자치한다면, 2020년 대선판은 크게 출렁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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